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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낫 밤 행사에서 사용하는 싱싱한 식재료
▲ 푸드 낫 밤 푸드낫 밤 행사에서 사용하는 싱싱한 식재료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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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큰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푸드 낫 밤(Food Not Bomb)' 행사에 갔다. 푸드 낫 밤은 미국에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60개국으로 퍼진 무정부주의자 운동이다. 미국에만 500개의 푸드 낫 밤 모임이 있다. 푸드 낫 밤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요리를 하고, 길거리에 음식을 들고 나가 아무에게나 나눠주는 조직이다. 언뜻 들으면 노숙인을 돕는 봉사단체 같지만, 분명 다르다.

1980년 5월 25일, 미국 보스턴에서 8명의 사람이 자본주의의 억압, 핵 발전소 투자에 반대하는 의미로 노숙인들과 야채수프를 나눠 먹었다. 음식을 나눈 장소는 보스턴 은행의 주주 회의가 열리던 빌딩 앞이었다. 은행 주주들이 핵 발전소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동안 푸드 낫 밤 활동가들은 '우리의 세금을 전쟁, 무기, 핵발전에 쓰지 말고 공평한 음식분배, 교육 등 시민을 위해 써라'라고 주장했다.

동물 단백질은 절대로 쓰지 않는 푸드 낫밤

음식을 나누며 무정부주의적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푸드 낫 밤을 미국 정부는 '미국의 가장 하드코어 한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푸드 낫 밤을 진행하는 봉사자들이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  

푸드 낫 밤에서는 육류, 해산물, 유제품 등 동물 단백질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축산 산업의 폭력성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푸드 낫 밤에 참여하는 봉사자 대부분은 채식주의자다. 푸드 낫 밤에 사용되는 음식은 전부 공짜로 얻는다. 지역 농산물 직거래 행사에서 당일 팔리지 않은 음식, 마트에서 팔리지 않아 처분하려는 음식을 기부받는다. 상한 음식, 유통기한이 다 된 음식이 아니라, 미처 팔리지 못한 음식들이다. 새로운 음식을 돈으로 사기보다 팔리지 않은 음식을 기부받는 이유는 미국의 음식 낭비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한해 72억 톤의 음식이 낭비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에서 푸드 낫 밤 행사에 참여했다. 로스앤젤레스 행사는 일요일 오후 3시부터 저녁 8시까지였다. 자원봉사자 집 뒷마당에 15명의 사람이 모여 카레, 쌀, 샐러드, 콩죽을 요리했다. 디저트로 사과도 준비했다. 모임을 주도하는 크리스가 샐러드에 알록달록한 식용 꽃을 뿌렸다. 노숙인을 위한 요리인데 식용 꽃까지 넣냐 놀라서 묻자 "우리는 그냥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니에요. 노숙인도 사람입니다. 우리는 노숙인들에게 우리가 당신들을 존중하고, 신경 쓴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예요. 노숙인도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입니다"라고 했다.

푸드낫밤 음식. 멜론, 콩패티가 들어간 샌드위치, 샐러드, 콩죽, 쌀
▲ 푸드낫밤 푸드낫밤 음식. 멜론, 콩패티가 들어간 샌드위치, 샐러드, 콩죽,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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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행사
▲ 푸드낫밤 포틀랜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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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음식을 들고 로스 엔잴레스 도심의 퍼싱 스퀘어로 향했다. 음식을 차리고 준비하자 수십 명의 노숙인들이 줄을 섰다. 더 음식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아무 제한 없이 더 음식을 줬고, 이가 부실해 사과 하나를 다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조각난 사과를 줬다.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는 노숙자가 콜라를 섞은 럼주를 달라고 막무가내로 나와도 짜증 내지 않고 "우리는 술은 제공 하지 않아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음식을 나눠 준 후, 자원봉사자들도 배식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자원봉사자들끼리 따로 앉지 않고, 노숙인들과 같이 앉아 음식을 먹었다. 나도 음식을 받아 들고 어느 노숙인 옆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 노숙인은 우쿨렐레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쿨렐레 소리를 들어보니 튜닝이 전혀 돼 있지 않았다. 튜닝만 문제가 아니라 사실 군데군데 갈라지고, 부러지기 일보 직전의 싸구려 악기였다. 나는 우쿨렐레를 3년 연주했기 때문에 튜닝 정도야 쉽게 할 수 있다. 밥을 먹다 말고 노숙인의 우쿨렐레를 튜닝도 하고 연주하며 노래도 불렀다.

서울에서 노숙인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지만 같이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른 은 없었다. 배식이 끝나면 봉사자들은 자기들끼리 몰려 따로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푸드 낫 밤은 배식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공짜 음식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푸드 낫 밤은 노숙인뿐 아니라 정말로 길 가던 사람 아무나 와서 음식을 받아갔다. 미션 스트리트의 지하철역 근처에서 쌀, 샐러드, 베이글, 콩죽, 민트 차 배식을 시작하자 근처 노숙인뿐 아니라 경찰, 사원증을 목에 걸은 직장인,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 등이 모두 줄을 섰다. 비노숙인이 노숙인들과 한데 줄을 서서 길에서 배식을 받는 풍경이 꽤 낯설었다.

봉사한 지 3년이 됐다는 마이카에게 왜 푸드 낫 밤에 계속 나오는지 물었다.

"난 이기적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노숙인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은데, 그렇다고 종교 단체에서 봉사하긴 싫어. 난 종교를 증오해. 종교 단체의 봉사는 봉사자들과 노숙인들이 공급자와 수혜자 역할로 구분돼. 푸드 낫 밤은 노숙인이 사람이라는 이유로 돕는 거야. 노숙인뿐 아니라 시민들끼리 서로 돕는 거지. 뭘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아. 우리는 단지 공짜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니야, 우리는 사람들에게 미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음식을 낭비하고 있는지 알리고, 미국 사회의 불공정함을 고발하는 거야."

샌프란시스코 행사
▲ 푸드낫밤 샌프란시스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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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나눔을 자선 아닌 체제 저항 방식으로 여기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 푸드 낫 밤에서는 당일 요리한 음식뿐만 아니라 식자재와 냉동 음식도 나눴다. 포틀랜드는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노숙인 비율이 낮다. 행사에는 노숙인 없었고 대학생, 구직자, 시민 단체 활동가들이 많았다. 메뉴는 콩 패티 채식 햄버거, 콩죽, 현미밥, 샐러드, 멕시코 음식 타코, 포도, 베이글 등 여태까지 가본 푸드 낫 밤 행사 중 가장 풍성했다. 30명 정도의 참가자들을 위해 7가지가 넘는 음식을 만들고도 식재료가 한가득 남았다. 베이글은 1인당 3개씩 챙겼고, 냉동 타코는 1인당 4개씩 가져갔다.

단 한 번도 푸드 낫 밤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실망한 적이 없었다. 메뉴는 항상 4가지 이상이었고, 식재료는 대게 유기농이었다. 두세 번 배식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음식이 모자란 적은 없었다. 이 모든 음식이 공짜이며 낭비될 뻔한 음식이라는 게 매번 놀라웠다.

푸드 낫 밤이 줬던 가장 큰 충격은 음식 나눔을 자선이 아닌 체제 저항의 방식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푸드 낫 밤을 알려준 미국인 친구, 헤이워드는 "세상에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 많아. 노숙자들은 미국 대도시마다 산재하고, 많은 사람이 푸드 스탬프라는 빈민 구제 프로그램을 신청해. 그들은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음식을 사지 못해. 그런데 대형마트 쓰레기통을 열어보라고. 멀쩡한 음식들이 그냥 썩어가고 있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우리는 항상 경제적 이익만 앞세우지. 돈 없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비인도적 생각이야"라고 했다. 

푸드 낫 밤은 여태까지 가봤던 자원봉사활동과는 아주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자선 활동 같았지만,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무정부의자, 히피, 활동가였다. 헤비메탈을 틀어 놓고 요리를 했고. 부엌에는 무정부주의자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무료 음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메뉴가 다양했고 재료는 신선했다. 버려질 뻔한 음식을 사용해 배고픈 이들에게 나눠주며 세상을 뒤집겠다는 푸드 낫 밤의 아이디어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태그:#푸드낫밤, #세계일주, #무정부주의,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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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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