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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하시지 않게 쉬어가면서 일하시구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급식 너무 맛있어요! 아! 그리고 제대로 된 대우 받으시면서 일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말은 '중2병'이라 부르는 사춘기 소녀가 학교 급식 종사원들에게 쓴 편지 일부이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에 위치한 장흥여자중학교. 1966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총 268명의 학생에 전체 교직원은 36명인데, 그중 영양사와 조리원이 5명이다. 그리고 이 5인조 급식실 팀이 매일 300여 명의 건강을 책임진다.

13일 오전 11시 30분쯤, 2학년 1반 학생들이 우르르 급식실로 왔다. "뭔 일이야? 급식 시간도 안 됐어." 급식 배식을 위해서 서둘러 식사를 하던 급식실 팀은 갑작스러운 아이들 방문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난데없이 에너지 드링크 음료를 건네며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커다란 종이에 각자 쓴 러브레터까지 건네며.

7월 13일 장흥여중 2학년 1반 학생들이 급식실에 찾아와 편지와 에너지 드링크 음료로 급식 종사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 장흥여중 급식 종사 선생님들과 학생들 7월 13일 장흥여중 2학년 1반 학생들이 급식실에 찾아와 편지와 에너지 드링크 음료로 급식 종사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장흥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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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주 선생님, 강미인 선생님, 박복례 선생님, 조지영 선생님, 한만례 선생님 사랑합니다 ♡"

"항상 맛있는 급식 감사드립니다! 지금 날씨 너무 더운데 정말 고생하시잖아용. 몸 상하시지 않게 쉬어가면서 일하시구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급식 너무 맛있어요. 아! 그리고 제대로 된 대우 받으시면서 일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급식 선생님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집에서 먹는 밥보다 더 맛있어서 행복해요! 감사합니당."

"밥 안남길께여."

"중학교 와서 신세계를 경험했어요. 가장 즐거운 시간이 급식시간이에용.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세용."

7월 13일 장흥여중 2학년 1반 학생들이 급식 종사 선생님들에게 쓴 편지이다.
▲ 장흥여중 학생들의 손편지 7월 13일 장흥여중 2학년 1반 학생들이 급식 종사 선생님들에게 쓴 편지이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장흥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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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사로 근무하는 강미인 선생님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장흥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다. 강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반장이 아이디어를 내서 자기들끼리 준비한 것.

담임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더니, "저도 이런 것은 안 받아 봤다"라며 좋아했단다. 강 선생님은 기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애들이 너무 이뻤다. 밥 먹여 키운 보람이 있다. 감동했다"라며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누군가 권유나 그런 거 아니라 놀랍다. 아이가 지금 이 시대 상황을 보고 있다. 이런 아이들도 있다. 우리를 위로하려고 온 것 같다. 단순히 자랑을 하려고가 아니라 위로해주고 싶었다. 우리 비정규직 '밥하는 아줌마'의 아픔에 대해서...", "애들이 우리를 위로해 주려고 하는구나. 이언주, 너는 봐라. 이게 아이들 마음이다. 아이들도 아는 걸 너는 모르냐." 이 뜻밖의 선물에 감동하여 사진을 찍어서 지부에 올렸고, 알음알음으로 기자도 보게 되었던 것.

강 선생님이 이곳에서 조리사로 근무한 지는 7년째다. 다른 세 명의 조리원도 15~16년째 일하며, 13년 경력의 영양사는 순환근무로 작년부터 합류했다. "애들이 적어놓은 걸 보면, 일부러 꼭꼭 누구 선생님 누구 선생님 썼다. '아줌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불러주었다."

이에 기자가 "급식하는 분들의 이름을 알기도 어려운데, 너무 기특하다", "오래 근무해서 책임감도 남다르겠다"라 말했다. 그러자 흐뭇한 목소리로 "십몇 년씩 일하다 보니, 내 집 같고, 내 아이들 같고, 애착이 있다", "애들이 대놓고 이야기한다. 저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밥 먹으러 왔다. 메뉴를 오려서 단어장처럼 가지고 다닌다. '공부를 그렇게 하라' 하니, 저희는 밥 먹으러 와서 메뉴를 외우고 다닌다 말하더라 (웃음)"고 대답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 식단을 보았다. 일주일 식단표가 실제 제공된 사진과 함께 공개되며, 에너지, 단백질, 칼슘, 철분까지 표시되어 있다. 초복인 12일은 닭죽, 불고기 브리또, 오이 부추 무침, 열무김치, 블러드오렌지파인쥬스 ... 14일엔 친환경 쌀밥, 순두부 찌개, 고등어 고구마줄기 조림, 브로컬리 초고추장, 오꼬노미 스테이크, 배추김치, 자몽푸딩.

이 정도이니, 기자도 급식을 먹으러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강 선생님은 비결을 말해주었다. "어느 파트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영양적으로 잘 맞춰야 하지만, 조리도 그에 맞춰 잘해야 하고, 팀 호흡이 잘 맞아야 양질의 급식이 나올 수 있다. 메뉴를 정하는 것은 영양사 고유 업무이나 그 과정에서 조리사들과 소통을 한다."

학교 급식 종사자들은 35도 되는 곳에서 근무한다. 불 앞에 고무장갑까지 착용하니 체감온도는 더하여, 급식 종사자가 쓰러진 사건도 발생했다. 방학 때는 근무한 일수로 받는다. 방학이 있어서 휴가는 별도로 없고, 소득이 없으니 다른 알바를 해야 생계를 꾸린다. 이게 진실이다.

앞서 지난달 29일과 30일, 급식 조리원 등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중심이 되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한 막말로 시끄럽다. 주요 포털사이트 실검 1, 2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연일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결국, 이 의원이 10일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반응은 차갑다. 14일 오전 11시에 한국조리사협회 중앙회는 이언주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오후 4시 부산에서는 부산여성단체와 급식 종사원들이 국민의당 부산시당 앞에서 사퇴를 촉구했다. 

이 의원의 블로그를 보면 소개 글에 "경기 광명(을) 국회의원 이언주입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야무진 정치, 따뜻한 정치"라 명시했다. 유튜브에 직접 게재한 "나는 왜 국민의당을 선택했는가"란 동영상에 의하면, 정치에 입문하게 된 이유는 모친이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병으로 고생하다 2011년에 사망한 것에서 정치를 통해 바꾸고 싶어서였다. "경제적 고통을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고, 사람과 수명과 관련된, 사람의 수명이 평등한 것인가? 사람과 생명과 관련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평등권을 갖고 있는가?"

하지만, 그 엄마의 마음과 따뜻한 정치, 생명과 관련한 평등권은 "그 아줌마들이 뭔데? 그냥 동네 아줌마거든요. 그냥, 사실 옛날 같으면 그냥 아줌마들 이렇게 해가지고 조금만 교육 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돈 좀 주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란 발언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10대 학생도 아는 진실을, 변호사까지 한 국회의원이 모른다.

"뭣이 중헌디."


태그:#장흥여중, #급식종사자, #이언주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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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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