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군주> 포스터.

MBC <군주> 포스터. ⓒ MBC


여기 한 명의 맛 칼럼니스트가 있습니다. 그가 사는 동네에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그 식당이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처음 가 본 그 식당은 음식 맛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직원들이 무척 친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그 식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들의 맛이 그가 기대하던 맛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에 대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 식당은 손님들로 붐볐고, 자신과 같은 맛 칼럼니스트도 종종 찾아오는데 달라진 음식 맛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여러분은 그런데도 달라진 음식 맛에 대한 식당 주인에게 말을 할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달라진 음식 맛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포기할 것입니까? 저는 '그런데도' 말을 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런데도' 말을 하고 싶은 대상은 사실 식당이 아니라 지난 7월 13일 종영한 MBC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 제작진입니다.

<군주>는 14%라는 동시간대 1위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시청률이 1위라는 것은 많은 시청자가 그 드라마를 택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 드라마만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 몇 개월간 고생했을 배우들을 생각하면 <군주>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여전히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군주>가 시작되던 때와 달리 극 후반부로 가면서 본연의 맛을 잃었다는 제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군주>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세자 이선이 어린 시절 아픔을 딛고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세자 이선은 보부상 두령이 되기도 하고 극 중 악의 세력인 편수회 대목이 조폐권을 가지지 못 하게 하는 등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세자 이선을 움직이는 힘은 분명 '백성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극 초반부 주인공 세자 이선은 분명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향해 순조롭게 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극이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세자 이선의 모습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모습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에서 멀어질 수록 멋있는 이선

 MBC <군주>의 한 장면.

MBC <군주>의 한 장면. ⓒ MBC


세자 이선이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모습과 멀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에서, 묘하게도 그는 굉장히 멋있습니다. 적에게 잡혀 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러 가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알면서도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 참으로 멋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라는 단어를 '지도자'로 바꾸었을 때도 그럴까요? 저는 이 대답을 지난 5월 16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의 한 장면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역적>에서 주인공 홍길동(윤길상 분)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가령(채수빈 분)에게 활을 쏩니다. 홍길동이라고 해서 가령을 구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가령을 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백성들의 정신적 기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무너지는 순간, 두려움을 무릅쓰고 폭군에게 대항하고 있던 백성들이 구심점을 잃고 힘없이 쓰러질 것이라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군주>에서도 주인공 세자 이선은 드라마 속 악의 무리인 편수회를 이기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만약 죽는다면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부상 두령이고 거상들도 움직일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변방의 강력한 군사력까지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가 산전수전 다 겪은 보부상들의 두령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집단의 두령이 될 정도면 얼마든지 지혜를 발휘해 사랑하는 여인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서야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지도자라면 그가 나중에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처해 갈 지도자로서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왕이 되어 악의 무리인 편수회 대목을 물리친 이선도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쉽게 확답하기 어렵다는 것이 달라진 음식 맛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편수회 대목이 없어진 후에도 이선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입으로는 백성을 말하지만, 실제 판단 기준은 사랑하는 여인 선가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군주> 마지막 회에서 왕이 된 이선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한가은을 중전으로 맞을 수 없게 되자 신하들에게 왕위에서 물러나리라는 것을 행동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충분히 추측 가능합니다. 입으로는 백성을 위해서라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이토록 사랑하는 여인 '한가은'을 향해 있는 지도자. '남자'로서 멋있을지는 모르나 분명히 훌륭한 지도자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드라마 속이 실제 세상이라면 주인공 이선이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세자 이선. 그가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바랐으나, 이제는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 안타까움이 듭니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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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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