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신태용 감독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월드컵 진출에 모든 것을 매진하겠다"는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신태용 감독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월드컵 진출에 모든 것을 매진하겠다"는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믿을만한 스트라이커는 누구일까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골 넣는 스트라이커를 만나본 지 참 오래됐다. 이정협과 석현준이 최전방 공격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기대가 확신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최전방에는 늘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은 차범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은 최순호, 1994 미국 월드컵은 황선홍이 있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부상을 당하며 대회에 나서지 못했지만, 김도훈과 최용수라는 든든한 대체 자원들이 버티고 있었다.

준비 과정에서 골 결정력에 대한 고민이 컸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황선홍과 안정환이 최전방을 든든하게 지키며, 꿈같은 4강 신화를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6 독일에서는 '헤딩 천재' 조재진이 이름값을 증명했고, 2010 남아공에서는 '축구 천재' 박주영이 사상 첫 원정 16강에 한 몫을 담당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도 걱정이 없었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박주영의 부상 공백을 완벽하게 메운 지동원이 빛났고,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와 당당하게 득점 능력을 겨루던 박주영도 돌아왔다. 이들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까지 따내면서, 2014 브라질 월드컵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2012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김신욱과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최전방을 담당하던 손흥민까지 등장했다. '노망주'(노장+유망주)란 단어를 탄생시킨 이동국과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근호도 건재했다.   

한국 축구에 사라진 스트라이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처참했다. 뻥 뚫린 중원, 상대 공격수를 전혀 막지 못하는 수비, 기본적인 방어 능력을 상실한 골키퍼 등 후방이 너무나도 허술했다.

그렇다고 공격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던 박주영이 최전방을 책임졌지만, '원 따봉, 원 비행기'라는 굴욕만 남겼을 뿐이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몸 상태와 결정력을 지녔던 손흥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독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근호가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전에서 멋진 중거리 골을 터뜨렸고, 김신욱이 3차전 벨기에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 이상의 희망을 주지는 못했다.

그때부터 한국 축구에 스트라이커가 보이지 않았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이정협이 등장했고, 석현준과 이종호, 김승대 등이 국가대표팀 최전방에 나섰지만, 확신을 주지 못했다. 신체적인 조건뿐 아니라 발기술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신욱도 확고한 믿음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들이 제대로 뛰지 못하는 환경 변화 때문이다. 축구 천재라 불린 박주영은 세계적인 명문 구단 아스널에 도전했고, 셀타 비고와 왓포드 등을 거쳤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아시아에서는 정상급 선수로 불릴지는 모르지만, 세계에서는 흔한 선수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포르투갈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체코 원정에서 승리를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석현준 역시 FC 포르투로 이적한 이후에는 자취를 감췄다. 그 역시 소규모 구단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세계적인 재능이 득실거리는 곳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기량 유지는커녕,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퇴보를 피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이 유럽이 아닌 국내에 머물거나 J리그(일본)에 진출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고, 발전은 아니더라도 기량 유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도전하게 됐고, 발전보다는 정체 혹은 퇴보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그뿐만 아니라 막대한 연봉을 보장하는 중국이나 중동 진출이 많아지면서, 기량 유지조차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겼다. 국내 최정상급 재능들이 AFC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횟수를 자랑하는 K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무대로 떠나면서, 국가대표팀 최전방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수준급 선수들을 무조건 유럽으로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럽 내 경쟁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중동으로의 이적을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답이 없는 문제 때문에 국가대표팀은 차선책을 찾게 됐고, 그 선택이 확신을 주기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가대표팀 최전방 공격수는 스트라이커의 개념을 바꿔버렸다. 득점이 장기가 아니라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압박이 장점인 선수가 주전 자리를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손흥민과 구자철 등 2선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졌고, 상대 수비는 우리의 최전방 공격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신태용 감독은 진짜 스트라이커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신태용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 축구의 운명을 가늠할 2연전만이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사라진 스트라이커를 하루빨리 되살려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이 손흥민에 대한 활용법을 갖고 있다지만, 그는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측면 자원이다. 측면에 위치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가 골게터의 의미를 바꿔버린 시대에 살고 있지만, 카림 벤제마나 루이스 수아레스가 없다면 메날두(메시+호날두)가 지금처럼 신으로 불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만큼 스트라이커는 여전히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정조국과 올 시즌 득점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양동현, 팀이 필요한 순간 득점포를 가동하는 박주영, 발기술에 대한 미련이 남는 김신욱 등을 편견 없이 시험해봐야 한다. 이들이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환경과 전술을 만들어내는 것도 신태용 감독의 몫이다.

한국 축구에 골 넣는 공격수가 필요하다. 상대 수비를 분산시킬 수 있는 듬직한 스트라이커가 절실하다. 중원의 기성용과 2선의 손흥민만 막으면 실점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대에게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이 사라진 스트라이커의 가치를 되살려야만, 손흥민과 구자철 등 2선 자원이 살아날 수 있고, 절망적인 한국 축구에 희망이 꽃 필 수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스트라이커 신태용 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