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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의 봄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다. 매일 분주한 삶 속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기만 해도 설렘은 시작되는데, 3박 4일의 여행 기간 동안 그 설렘은 현실의 행복과 커다란 쉼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캘리포니아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 사이에 놓인 395번 국도를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며, 신기한 자연과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 환상적인 호수들, 그리고 4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폭설과 해발 11,000 피트(3,300미터) 까지 올라가는 케이블 카까지 다양한 것을 보고 느꼈다. 아이들은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의 하이킹을 즐겨하다가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손으로 만지며 마음껏 행복해했다. 

캘리포니아의 Alabama Hills에 있는 도로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또 백여편의 영화도 이 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 알라바마 힐스의 길 캘리포니아의 Alabama Hills에 있는 도로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또 백여편의 영화도 이 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 고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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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읽다가, 터널 이야기에 문득 이번 여행길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터널이 뚫리면서 꼬불꼬불 몇시간에 걸쳐 넘어가던 고개길을 이제는 쉽게 지나갈 수 있다는 글을 읽고, 적어도 9년 동안 내가 다녀본 캘리포니아에서는 터널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발 고도 12,000피트(4000미터)에 달하는 산맥도 차로 꾸역꾸역 운전해서 올라갔다가 내려 가야 하고, 그것도 6~8월까지만 가능하고, 그 나머지 기간 동안은 "겨울"이기 때문에 도로를 차단하여 일반인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는 길에 터널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395번 도로를 북쪽으로 달리다가 모토 레이크(Mono Lake)에 거의 도착했을때 좌회전을 하면, 요세미티 국립 공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그 길도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가야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요세미티 국립 공원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도 터널은 없다.

자동차의 천국인 미국에서, 적어도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그렇게 높은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도 왜 터널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운전자들을 위해서 터널을 뚫어 놓으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로, 그리고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지나 라스 베이거스(Las Vegas)까지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터널을 뚫지 않은 것은,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보다 주변을 둘러보며 시선이 닿는 곳들을 만끽하라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요즘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것이 슬로 라이프의 단면이 아닐까 싶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목적지향적인 삶 보다는, 서울로 가는 길에 뭐가 보이는지 천천히 보며 음미하며 사는 삶이 슬로 라이프가 아닐까. 미국에 살면서 항상 미국 살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속도 지향적인 삶보다는 조금은 느긋하고 여유를 가진 삶이 나의 한국인의 성향을 조금은 상쇄시키는 것 같다. 그나저나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태그:#시에라 네바다, #여행, #미국, #39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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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Biola University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몇몇 대학/대학원에서 교육관련 강의를 하며, 은빈, 은채, 두 아이가 성인으로 맞이하게 될 10년 후를 고민하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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