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재순 박사는 한국신학연구소에 근무하던 지난 1981년 '한울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혐의로 야만적 고문을 거쳐 10년 구형에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무고한 그에게 이런 징역형을 선고한 판사가 한때 대통령후보들이었던 이회창(대법원)과 이인제(1심)였다. 한울회 사건은 기독교 청년 30여명이 수양회를 가지면서 공산사회건설을 주장하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던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80년 대 중반, 당시 나는 20대 중반 그는 30대 중반으로, 퀘이커(종교친우회) 여름수양회에서였다. 그때 그는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고 나는 그의 진지한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그 후 지난 2000년부터 7 년 동안 나는 그와 함께 함석헌이 1970년에 만든 잡지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또 씨알사상연구원의 그는 초대회장으로 나는 초대총무로 '환상의 콤비'로 일했다.

<다석 유명모> 책표지
 <다석 유명모> 책표지
ⓒ 홍성사

관련사진보기

내가 아는 박재순 박사님은 함석헌(1901-1989)과 유영모(1890-1981)에 미친 사람이고 그 분들의 삶을 온 몸으로 따라 사는 분이다. 그가 최근 <다석 유영모: 동서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철학자>를 펴냈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8년 기출간 된 내용에서 그가 뒤바뀐 각주와 오류들을 바로잡고, 줄였던 내용을 되살렸으며, 다석의 삶과 사상의 변화 과정을 더 깊이 진전시킨, 즉 '업그레이드' 된 책이다. 다음은 지난 4일부터 박재순 박사와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가 한국사상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이라고 평가하시는가?
"비토리오 회슬레는 플라톤철학을 계승하며 서구 이성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2008년 세계철학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그는 한국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문화만으로 봤을 땐 종교적 다양성이 흥미롭다. 유교·불교·샤머니즘이 공존할 뿐 아니라 기독교적 전통도 강하다. 일본과 다른 측면이다. 이런 한국적 토양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종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한국근현대의 역사가 민의 주체적 자각과 동서정신문화의 만남으로 전개되었다고 본다. 이미 한국근현대 민중의 삶과 정신 속에서 동서의 사상과 문화가 합류해 왔다. 다석은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동서의 사상과 정신의 융합을 추구하고 실현해왔다. 다석은 한국인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서구정신문화를 깊고 넓게 받아들여 동서정신문화의 회통(會通)에 이르렀다. 다석은 한글과 한국정신문화 속에 담긴 한국사상을 깊이 탐구하여 유불도와 기독교, 민주, 과학사상과 결합하여 한국근현대의 정신으로 닦아냈다."

"다석사상을 아는 것은 한국근현대 사상을 아는 것"

박재순 박사
 박재순 박사
ⓒ 박재순

관련사진보기

- 오늘 젊은 세대가 다석에 대해 아는 일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다석은 민의 주체적 자각(민주화)과 동서문화의 만남으로 전개된 한국근현대의 철학을 깊게 제시하였다. 다석사상을 아는 것은 한국근현대 사상을 아는 것이고 한국근현대의 사람인 젊은 세대 자신의 정체와 뿌리, 사명과 과제를 아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젊은 세대는 앞으로 전혀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지식 중심의 교육, 공장산업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 생명과 공동체문화, 정신과 영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미래사회에서 지식과 기술은 인공지능의 몫이고 개성과 창의는 인간의 몫이다. 유전자 편집으로 유전자의 개변조가 가능하면 자연생명을 넘어서 정신문화의 정체성이 중요해진다. 이미 인간은 자연생명의 유전자 진화에서 정신문화의 진화로 옮겨왔다. 물질, 생명, 정신, 얼을 통합하고 깊이 파는 다석 철학과 정신은 미래의 삶을 살 젊은이에게 꼭 필요한 철학이다.

인공지능과 기계에 예속되지 않으려면 주체적이고 개성적이며 창의적인 정신을 가져야 하고 물질과 기계, 돈과 제도를 넘어선 가치체계와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인공지능(컴퓨터)과 기계의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가치와 효율성을 넘어선 생명과 정신의 공동체적이고 영적인 가치와 목적을 확립해야 한다. 다석은 물체도 물질의 주체라면서 물질의 존재론적 깊이와 신비를 말하고 과학적, 이성적인 생각을 강조했지만 인간존재의 깊이와 자유를 탐구했다."

- 함석헌 사상과 다석 사상의 가장 큰 유사점과 또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함석헌 사상을 연구한 후 다석 사상을 연구하면서 두 분이 정신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두 분이 보여주는 언어와 정신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근현대의 사상을 공유했다.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운동, 삼일혁명의 정신을 공유하면서 기독교정신과 동양종교사상의 회통에 이르고 철저한 민주(씨알)정신을 가지고 있다. 두 분은 동서고금의 사상의 회통에 이르고, 깊은 영성을 가지면서 한국정신과 이성적 과학적 사유를 강조하는 대종합의 사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20세기의 다른 한국철학가들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함석헌과 유영모의 사상적 차이도 뚜렷하다. 두 분의 기질, 경향적 차이가 확연하다. 유영모가 금욕적, 내면적, 정적이라면 함석헌은 활달하고 열정적, 역동적이다. 유영모는 종로에서 태어나서 북한산 기슭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사상과 인격은 높은 산에 비길 수 있다. 하늘을 그리워하고 우러르며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다석의 정신은 높은 산처럼 장엄하고 흔들림 없고 우뚝 솟아 있다. 함석헌은 평안북도 서해 바닷가 해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정신은 깊고 큰 바다와 같다. 깊고 큰 바다처럼 함석헌의 철학은 역동적이고 출렁이며 변화무쌍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다."

다석사상의 핵심, '솟아올라 나아감'

- 다석사상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정리 할 수 있을지?
"다석사상의 열쇠 말은 '솟아올라 나아감'이다. 솟아오름은 정신의 내적초월을 나타내고 나아감은 생명진화와 역사의 진보를 나타낸다. 솟아오름은 땅의 물질에서 하늘의 얼과 신에게로 초월하고 고양되는 것이다. 솟아오름은 땅과 생명(인간)과 하늘(天地人)의 합일을 뜻하고 나아감은 생명의 진화와 역사의 진보를 뜻한다. 이것은 생명진화와 천지인합일을 통합한 것이며 서로 다른 주체들이 전체 하나로 돌아가는 귀일(歸一)을 지향한다.

생명진화와 천지인합일의 중심과 주체는 사람, 민(씨알)이다. 생명진화와 천지인합일이 이루어지는 사람 속에서 창조와 혁신이 일어난다. 하늘과 땅의 중심과 주체인 사람은 나라의 주인과 주체다. 그래서 다석은 '민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모시라'(씨알어뵘)고 했다."

- 오랫동안 함석헌사상을 연구하셨는데 다석사상의 어떤 면에 특히 매료가 되어 다석 사상을 연구하시게 되셨는지?
"함석헌사상을 연구하면서 사상의 뿌리가 다석사상에 있고 함석헌과 다석의 사상적 뿌리는 민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독립운동과 삼일운동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함석헌사상은 다석사상을 모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함석헌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석사상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석은 한국근현대의 사상을 자신의 삶과 정신 속에서 완성한 이, 한글, 우리 말 글로 철학한 첫 사람이었다. 근현대의 철학사상인 실학, 동학,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의 경전들도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자어로 되어 있다. 다석은 우리말과 글로 철학하는 전범을 보였다. 민주정신에 사무쳤던 다석은 가장 겸허하고 정성스럽게 민을 섬기고 받든 이였다. 햇볕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을 진리의 최고경지인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로 됨)이라 하였다.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 살면서 남에게 심부름 시키지 않고 남 탓하지 않고 제 속에서 제 소리를 하고,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생각하며 더불어 사는 길을 열었던 다석에게서 나는 민주정신과 철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다석은 생명, 정신, 영성의 관점과 언어로 생각

- 민중신학자 고 안병무(1922-1996) 박사는 생전에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 "다석은 사회구조적으로 사물을 보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이런 안병무 박사의 다석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다석에 대한 안박사님의 평가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다석이 계급관계와 계급투쟁의 언어로, 사회구조적으로 사회과학적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철저히 민주적으로 생각했으나 생명과 정신과 영성의 관점과 언어로 생각하고 표현했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약육강식, 부국강병, 입신양명의 국가주의 이념과 철학을 부정하고, 지배권력, 출세지향의 기득권, 부와 권력을 철저히 비판하였다. 다석은 억눌리고 수탈당하는 민의 심정과 처지에서 역사의 바닥에서 민과 더불어 살면서 민의 삶 속에서, 민의 주체를 깊고 높이 세우기 위해 생각하고 살고 행동했다.

그가 일찍이 일본 유학을 갔다가 권력과 출세를 지향하는 대학공부를 포기하고 농민 속으로 들어가 살기로 결단한 것은 민중과 더불어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를 추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저히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생각하고 살았다는 점에서 다석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을 능가한다. 사회구조적으로 생각한다면서 한국역사와 사회를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으로 재단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회과학자나 역사학자보다 다석이 역사와 사회의 구조적 진실을 잘 드러내고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살았다고 본다.

그는 자신만 대학공부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자녀들까지 대학공부를 시키지 않고 농사지으며 살도록 이끌었다. 일제의 식민제국주의가 통치하던 시절에 대학공부를 하고 출세하면 하나님과 민중의 미움을 산다면서 적어도 3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다석은 노동복 입고 다닐 수 있어도 부자 옷 입고는 못 돌아다닌다고 했다. 노동자 농민이 오늘의 예수이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여인들이 엘리트 지식인 귀족들의 더러움과 때를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했다. 다석의 사상은 민중신학과 생태환경철학의 선구이며 귀감이다."

"예수는 신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드러낸 이"

- 다석의 기독교관 혹은 예수관과 한국주류 기독교인들의 기독교관 혹은 예수관이 어떻게 다르다고 보시는지?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신격화하여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고 천당 간다고 생각한다. 다석은 역사의 인간 예수를 신으로 믿지 않고 예수가 깨닫고 실천한 사랑과 진리, 생명과 정신을 믿었다. 예수가 믿고 증언한 하나님은 오늘 민중의 삶과 정신 속에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 나(민중)의 삶 속에서 예수를 이어 예수의 정신과 혼으로 살자고 했다.

그에게 예수는 신이 아니라 삶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드러낸 이다.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살았던 신은 오늘 여기 우리와 함께 있다. 지금 여기의 현재는 2천 년 전의 과거보다 나아간 시대이고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보다 나아야 한다. 주류 기독교는 역사의 청년 예수를 신으로 믿고 절대화한다. 2천 년 전의 한 인간을 절대화 하는 것은 역사의 발전과 진보,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역사는 미래로 나아갈 뿐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는 죽은 것이다. 예수, 성경,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은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자는 구호이지 실제로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 예수, 진리도 지금 여기 나의 삶 속에서 찾고 만나야 한다. 과거의 역사, 인물, 경전, 교리를 강요하고 거기 매이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억압하고 거스르는 것이다. 본능(식욕과 성욕)에 충실한 파충류는 현재에 충실히 살고 기억과 감정에 의존해 사는 포유류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에 충실히 산다. 지성과 영성을 가진 인간은 과거와 현재를 비판하고 넘어서 미래를 계획하고 창조하며 산다.

과거의 경전과 교리를 오늘의 인간에게 강요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계획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본성과 사명을 해치는 것이다.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들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예수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석은 예수만이 아니라 예수처럼 '참 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모시고 참된 주체로서 사는 사람에게서 길이 열리고 진리가 생겨나고 생명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 다석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석에게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 사랑과 진리의 가르침이다. 20세기 가장 진보적인 신학이론은 비신화화(루돌프 불트만), 비종교화(디트리히 본회퍼), 탈케리그마화(프릿츠 부리)다. 비신화화는 교리에서 신화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인간의 참된 실존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비종교화는 신화와 교리뿐 아니라 예배의식과 관행, 성직제도와 체계, 신학전통과 종교문화까지 벗겨내고 사랑과 정의와 기도를 통해 참된 삶과 행동에 이르자는 것이다. 탈케리그마화는 기독교의 핵심어인 십자가, 부활까지 벗겨버리고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살리는 진리만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다석은 이런 신학이론을 공부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사상은 비신화화, 비종교화, 탈케리그마화를 온전히 실현한 것이다. 다석사상은 종교와 철학, 신앙과 이성을 통합한 살림의 철학이다.

민주적, 영성적인 생활철학의 관점에서 그는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동서고금의 정신과 문화를 회통하려고 했다. 그는 평생 동양문명(유불도)의 뼈에 서양문명(기독교와 민주정신)의 골수를 심으려 했다. 동양의 관점에서 서양을 보거나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본 것이 아니라 동서문명을 '서로 주체'로 보았다. 동양경전만을 아는 동양사람보다 서양경전을 아는 서양사람이 동양경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서양경전만을 아는 서양사람보다 동양경전을 아는 동양 사람이 서양경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참 사람의 귀감이었던 예수는 구약성경(히브리경전)의 핵심과 뜻을 누구보다 깊이 파악했지만 구약성경의 내용과 문자에 매이지 않았다. 그는 대담하게 '모세(율법)는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경전의 내용과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여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민중이 삶과 역사, 나라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로 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려면 마땅히 예수, 다석, 함석헌처럼 경전을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해야 한다."

'동쪽에는 이승훈, 서쪽에는 함석헌'

함석과(왼쪽)과 유영모(오른쪽)
 함석과(왼쪽)과 유영모(오른쪽)
ⓒ 함석헌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 독재정권이나 불의한 정권에 대해 다석은 어떤 입장을 취했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삼일운동을 주도한 이승훈의 신임을 받은 다석은 삼일운동 자금 5천원을 맡아서 보관한 일이 있다. <성서조선>에 글을 썼다가 잠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승만 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중국 국방장관 팽덕회의 인해전술 발언을 비판했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청년학생들에 대한 찬사를 거듭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복이 있어서 해방과 4.19혁명 같은 좋은 일을 두 차례나 보는지 모르겠다며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다석은 직접 정치적인 저항운동을 하지는 않고 민주생활철학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했다. 만일 함석헌과 결합되었다면 인간과 사회를 쇄신하는 운동을 함석헌과 함께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함석헌은 민주화운동으로 나아가고, 유영모는 더욱 은둔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었다. 함석헌이 한창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1964년 말에 유영모는 잡지 인터뷰에서 '동쪽에는 이승훈, 서쪽에는 함석헌'이라는 두 개의 벽 사이에 둘러싸여서 자신이 살았다고 고백했다. 다석의 정신과 사상은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독립운동, 삼일혁명과 함석헌의 민주화운동 사이에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 다석이 극복하지 못한 것 혹은 다석의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정신의 거대한 금맥이 다석사상 속에 묻혀 있지만 다석은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체계화한 저서가 없다. 심오하고 방대하나 난해한 글과 문자 속에 숨겨졌다. 또한 그의 사상은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엄격하다. 특히 성(性)에 대해 금욕적이다. 이런 금욕적인 자세는 그의 고매하고 진지하고 치열함을 보여주지만 대중의 일상생활과 거리가 있다. 그의 사상은 대중에게 보다 자유롭고 활달하고 친근하게 다가서고 대중이 쉽게 읽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구되고 정리되고 새롭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내가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운동과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체계적이고 대중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갈 길이 멀다. 민주생활철학으로서 다석의 씨알사상이 대중화 하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실천되려면 쉬운 말로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재형성되고 새롭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유영모 함석헌의 사상은 단순히 이론적인 철학이 아니라 민주적인 삶과 실천을 위한 철학이다. 씨알운동의 조직론, 수행론도 체계화 되지 않았다. 이것은 앞으로 연구자들의 몫이다."

* 박재순(朴在淳 1950~) 박사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선화초등학교, 한밭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를 마친 후 한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봄에 함석헌 선생을 만나서 성경과 동양고전을 배우며 씨ᄋᆞᆯ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으로 일했다.(1980~1985) 한신대와 성공회대에서 연구교수와 겸임교수로 1992년에서 2006년쯤까지 가르쳤다. 씨알사상연구회 초대회장(2002~2007), 씨알재단 상임이사(2007~2014), 씨알사상연구소장(2007~) 평생 민주생활철학인 씨알사상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안창호와 이승훈, 유영모와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면서 한국근현대의 민주정신과 사상으로서 씨ᄋᆞᆯ사상을 정립하고 알리려 한다. 중요 저서로는 <씨알사상>, <다석 유영모>,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생명의 길 사람의 길>,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이 있다.


태그:#박재순, #김성수, #다석, #유영모, #함석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