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NBA의 옛날 기록들을 찾아 보면 현대 농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신기한 기록들이 많다. 특히 윌트 체임벌린의 한 경기 100득점은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꼽힌다. 특히 체임벌린의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51.1%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한 경기 100득점을 달성했기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당시엔 고의 반칙작전 같은 건 하지 않았던 '낭만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6회 우승과 파이널 MVP 6회 수상 역시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 중 하나다. 현역 시절 조던을 넘어서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코비 브라이언트(은퇴)조차 우승은 5번이나 했지만 파이널 MVP는 2번에 불과(?)했다. '전설의 4대 센터'를 비롯해 각 포지션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군웅할거를 이루던 1990년대 NBA에서도 조던은 단연 돋보이는 선수였다는 뜻이다.

196cm의 가드였음에도 불구하고 1961-1962 시즌 30.8득점 12.5리바운드 11.4어시스트로 시즌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오스카 로버트슨의 기록도 현대농구에서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17년 '구시대의 유물'이라 여겨지던 로버트슨의 시즌 트리플-더블 기록을 재현한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슈퍼 거북이' 러셀 웨스트브룩이 그 주인공이다.

넘사벽 피지컬과 운동능력 앞세운 신개념 포인트가드

카림 압둘 자바, 레지 밀러 등을 배출한 캘리포니아의 농구 명문 UCLA 출신의 웨스트브룩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됐다. 하지만 2007-2008 시즌을 마지막으로 연고지가 오클라호마시티로 바뀌면서 웨스트브룩은 (구)절친 케빈 듀란트(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달리 오클라호마시티 유니폼을 입고 NBA에 데뷔했다.

190cm의 신장을 가진 포인트가드 웨스트브룩은 날카로운 시야와 경기 운영 능력의 크리스 폴(LA클리퍼스) 같은 유형도 아니고 사기에 가까운 외곽슛 능력을 가진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같은 유형도 아니다. 대신 포지션 대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피지컬과 엄청난 운동능력, 그리고 무시무시한 돌파력을 바탕으로 상대 코트를 휘젓는 신개념의 '닥돌(닥치고 돌파)형' 포인트가드다.

입단하자 마자 듀란트라는 최고의 콤비를 만난 웨스트브룩은 입단 2년 차였던 2009-2010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11-2012 시즌에는 NBA 입성 4년 만에 파이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잘하면 영웅, 못하면 역적'이 되는 웨스트브룩의 플레이는 마이애미 히트와의 파이널에서 하필이면 하향 곡선을 그렸고 오클라호마시티는 마이애미에게 1승4패로 패했다.

프로 데뷔 후 5시즌 연속 전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건강한 몸을 자랑하던 웨스트브룩은 2013-2014 시즌 무릎부상으로 36경기에 결장하며 상승세가 한 풀 꺾였다. 하지만 듀란트가 부상으로 55경기에 결장했던 2014-2015 시즌 웨스트브룩은 본격적으로 '탐욕'을 부리기 시작하며 28.1득점으로 생애 첫 득점왕에 올랐다(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웨스트브룩의 분전에도 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던 오클라호마시티는 2015-2016 시즌 우승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듀란트가 없는 사이 득점에 치중하던 웨스트브룩이 포인트가드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리 수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부상을 이겨낸 듀란트는 28.2득점으로 득점3위에 올랐다. 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서부컨퍼런스 결승에서 골든스테이트에게 3승4패로 패하며 역대 2번째 파이널 진출이 좌절됐다.

'전설' 로버트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시즌 트리플-더블 작성

오클라호마시티는 골밑에서 점점 존재감이 작아지는 서지 이바카(토론토 랩터스)를 트레이드하며 새 시즌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영원히 오클라호마시티의 전설로 남을 거라 생각했던 듀란트가 우승반지를 찾아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골든스테이트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오클라호마시티는 '본의 아니게' 웨스트브룩의 원맨팀이 되고 말았다.

시즌이 개막하기 전 구단으로부터 3년 857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선물 받은 웨스트브룩은 이번 시즌 최고의 활약으로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웨스트브룩은 정규리그 2경기를 앞둔 현재 오클라호마시티가 치른 80경기에 모두 출전해 31.9득점 10.7리바운드 10.5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잔여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역대 2번째 '시즌 트리플-더블'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한 것이다.

웨스트브룩은 지난 10일(한국시각) 덴버 너게츠와의 원정경기에서 3점슛 5개를 포함해 50득점16리바운드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즌 42번째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이는 로버트슨이 1961-1962 시즌에 세웠던 트리플-더블 41회를 뛰어 넘는 한 시즌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이다. 웨스트브룩은 이번 시즌 50득점 이상을 동반한 트리플-더블을 3번이나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도 NBA 기록을 새로 썼다.

웨스트브룩은 지난 시즌까지 587경기에서 통산 37개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는데 이번 시즌에만 80경기에서 42회의 트리플-더블을 추가했다. 만약 웨스트브룩이 다음 시즌에도 이 같은 트리플-더블 행진을 이어간다면 2017-2018 시즌이 끝나기 전에 제이슨 키드(밀워키 벅스 감독, 107회)를 제치고 통산 트리플-더블 순위 3위로 오를 수 있다. 다른 선수에겐 한 시즌에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은 트리플-더블이 웨스트브룩에게는 '일상'인 셈이다.

잔여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서부 컨퍼런스 6위가 확정된 오클라호마시티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3위 휴스턴 로케츠와 대결을 펼친다. 휴스턴은 웨스트브룩의 MVP 라이벌 제임스 하든이 이끄는 팀이다. 웨스트브룩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하든 역시 이번 시즌 29.2득점 8.1리바운드 1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황당한 시즌을 보낸 '괴인'과 '털보'의 맞대결은 2017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의 최고 빅매치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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