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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낙성대역 근처에서 칼부림 소동이 났다. 한 50대 노숙자가 에스컬레이터 반대편에 있던 20대 여성을 쫓아갔다. 자신을 무시하듯 째려봤다는 게 이유였다.

무차별 폭행이 이어졌고 살려달라는 여성의 비명에 근처에 있던 남성들이 나섰다. 몇몇 고등학생과 40대 남성이 노숙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는 흉기를 꺼내 들었다. 40대 남성은 복부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린 채 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아수라장이었던 2호선 낙성대역의 '의인'인 데일리게임 편집부장 곽경배 기자. 9일부터 그가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가해자인 노숙자에게 병원비를 청구하기 어렵고 아직 의사자 지정이 나오지 않아 실제 보상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이에 온라인에선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됐다. 범죄 현장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피해 여성은 자리를 피해 아직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몇몇 네티즌들이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을 저버리고 자리에서 도망간 김치녀"라는 악성 댓글을 기사마다 달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현장에서 바로 빠져나온 것, 그래서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지 못한 것, 혹은 행적을 감춰 의사자를 돕지 않은 것이 도의적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허나 묻지마 폭행의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본인에게 먼저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현상은 정당할까. 의사자의 상황이 열악하다고 해서 피해자가 그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는 걸까.

기사 하단마다 '이래서 여자는 도움만 받고 내뺀다','최소한 미안하다, 고맙다 말은 해야지','튀는 거 김치녀 종특'이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달아야만 속이 시원한 걸까. 분명 비슷한 사건에서도 도의적 책임에 대한 비판은 비슷하게 등장하지만 왜 이 기사에서만 유독 피해자가 여성인 것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올까.

이왕이면 사건 피해자인 그녀가 잘 추스르고 의사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길 개인적으로도 바라는 바다. 하지만 범죄 사건에서 비롯된 모든 불합리가 마치 잠수 탄 피해자 때문인 것처럼 여겨지는 여론이야말로 무책임한 게 아닌지, 정말 의사자를 위하는 반응인지 돌아봐야 한다.

다행히 엔씨소프트문화재단에서 곽 기자의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제도로 삶의 모든 구멍을 채울 수 없다고 믿기에 사회 구성원 각자의 선의와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허나 모든 것에 앞서 피해자의 도리를 언급하며 공격하는 건 혐오여론의 재생산만 부추긴다.

오히려 피해 당사자가 더 움츠러들고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마저 엄습한다. 김치녀까지 운운하며 열을 내는 분노가 문제 해결에 무용하다고 느낀다. 아무쪼록 의사자의 자가부담이 줄어들고 가해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길 기대하며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겠다는 게 내 입장이다.


태그:#낙성대, #묻지마 폭행, #피해자, #의사자, #김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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