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팝아트홀에서 열린 Mnet <댄싱9> 프레스콜에서 MC인 오상진 아나운서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방송인 오상진. 지난 2013년 7월, 프리선언 후 Mnet <댄싱9> 진행을 맡을 당시 모습. ⓒ 이정민


그땐 소위 방송사의 간판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때였다. 공채를 거쳐 뽑힌 신입 아나운서들은 예능, 교양 프로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이후 보도국 앵커를 맡는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얼굴'로 명실공히 인정받곤 했다. JTBC 손석희 보도본부사장 역시 그런 시절을 거쳤다.

공정언론, 독립성 사수를 위한 투쟁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바로 수년 전에도,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투쟁은 자본과 권력의 '세련된 결합'으로 인해 투쟁의 주체가 밥줄까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인 파업에 회사가 콧방귀를 낄 수 있는 건 그들을 대체할 말 잘 듣는 대체 인력을 언제 어디서든 싼값에 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자본과 권력을 멀리하며 그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정론 언론사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중략) 개인적인 마음은 여러분들은 일상을 열심히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며, 다만 저희의 이번 일을 잊지만은 마셨으면 좋겠어요."

5년 전 MBC 파업에 동참한 오상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한 발언의 일부다. SNS 인터뷰를 통해 나온 짧은 말이었지만 여기엔 일상을 사는 시청자에 대한 배려와 동시에 어쩌면 언론인들의 몸부림이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깔려있었다.

그리고 5년 뒤 오상진은 '전 직장'을 찾았고, 울었다. 울었다는 간단한 단어로 담을 수 없는 회한이 1분여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에게서 충분히 느껴졌다. 프리랜서 선언 이후 공식적으로 MBC를 처음 방문한 그는 마무리 발언 무렵 "(퇴사 이후) 상암동을 떠돌면서"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홍진영 등이 "우는 것도 고급스럽다"며 재치 있게 응수했지만, 그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분들 만나면서 인사를 드리며..."라던 그는 "고향에 와서 일하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고 '어렵게' 말을 맺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라디오스타> 속 그의 발언은 2013년 당시 회사에 사표를 내면서 "휴식은 길지 않을 것"이라는 소감과 연결된다. 당시 그의 발언엔 사표를 내긴 하지만 회사가, 그리고 언론지형이 곧 정상화 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방송사의 간판에서 자연인이 되기까지

 5일 방송된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5일 방송된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오상진은 프로그램 중 눈물을 보였다. ⓒ MBC


오상진은 MBC의 간판 중 하나였다. 이 세속적인 표현이 적확해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그가 선보인 전천후 활약에 기댄 외부의 평가로선 꽤 맞다고 할 수 있겠다. 2005년 공채 24기로 입사 후 <불만제로>(2006) <뉴스 투데이>(2007) <일밤-경제야 놀자>(2008) <환상의 짝궁>(2010) <위대한 탄생2>(2011) 등 교양·예능·보도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고, 자사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MB정권 시절 낙하산처럼 떨어진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눈 밖에 나지만 않았어도 그는 지금쯤이면 사내 어떤 요직을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른 상황이었다. 그는 2008년 미디어법 개악에 따른 언론노조 총파업에도 동료 아나운서들과 함께 참여했으며, 노조원으로서 행사 때마다 대부분 참여해왔다.

2013년 퇴사 직후 그를 만났다. 첫 소속사를 정했을 무렵이었다. "사람이 소속감이라는 게 참 중요하더라.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만에 찾아갔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며 "퇴사 이후 제 모습이 <섹션TV>에 나왔는데 담당 PD에게 연락해서 고맙다고 했다. 열심히 내 일 하다 보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라고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이때만 해도 복직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전종환, 이하정, 최은정 등 동기들이 나가지 말라고 가장 붙잡았었고, 1년 후배인 허일후 아나운서도 매우 서운해했어요. 사실 퇴사에 대해 그들과 거의 상의하진 않았거든요. 정답은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서였어요. 그래서 퇴사를 말했을 때 다들 놀랐던 거죠. 많이들 아쉬워했고, 그때 참 그들 사이에서 전 행복하게 지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의 선택은 지극히 순수했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한선교, 종합편성 채널에서 여전히 활동 중인 정은아 등 1세대 선배들은 퇴사 당시 나름의 비책들이 있었다. 그들이 외주 제작사 등에 자신들의 이후 행보를 확인받거나 선택지를 마련하고 결정했다면 오상진은 말 그대로 '대책 없이' 사표를 냈다. 이에 대해 오상진은 "선배들처럼 그런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파업 여파로) 동료들이 엉뚱한 부서에 가 있는 그런 상황에서 내 살길을 찾아놓는다는 게 후회될 것 같았다"며 "처음부터 다 내려놓고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고 답했다. 그렇게 그는 '자연인'을 선택했다.

<라디오스타>가 놓친 맥락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아나운서로서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4년 전 <오마이스타>와 인터뷰 당시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 모습. ⓒ 이정민


예능 프로 특성상 한 인물의 모든 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순 없지만 5일 방송된 <라디오스타>에서 오상진의 눈물은 다분히 개인의 회한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그렇게 읽는다면 오독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오상진이 선택한 맥락엔 공영방송사의 위기와 권력의 세련된 통제, 언론인들 사이에 만연해진 보신주의가 담겨있다. 단순히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난 한 직장인의 아픔이 아닌, 비판과 감시가 의무인 언론인에 대한 사회 차원의 구조적 폭력이 담겼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본래 5일 방송의 주제는 '행사, 어디까지 가봤니'였다. 마무리 멘트 중 "장윤정, 홍진영, 그리고 신영일 선배와 달리 전 행사의 신도 아니고"라던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오상진은 어제 초대 손님 가운데서 조금은 특별하다. 예능에서 지워진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예능프로를 보며 웃고 즐기다 오상진을 통해 어쩌면 최일구, 문지애, 박혜진 등 파업 이후 퇴사를 택한 'MBC 사람들'과 YTN, OBS 등 숱한 해직 언론인들이 떠오를 법하다. 아니 떠올려 봐야 한다. 상식과 비상식의 구도에서 어떤 선택을 했던 사람들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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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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