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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일 도매상이다. 그는 시장 상인들 중에서 가장 호탕하고 지나치게 활발 해서 능글 맞은 인상까지 준다. 언제나 사과 한 개를 물고 시장을 누비며 모든 상인들(특히 여자손님들)과 가벼운 농담과 인사를 교환할 정도로 그는 오지랖이 넓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한량 캐릭터 정도로 이 자를 프로파일링 한다면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과일 장수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잠자리로 유혹해 넥타이로 목을 졸라 죽이는 넥타이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이미 몇 차례 정도 살인을 한 상태고 영화는 이 넥타이 연쇄살인에 과일장수 범인이 아닌 다른 무고한 남자 (주인공) 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시작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
▲ 프렌지 포스터 (이미지 1)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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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히치콕이 할리우드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스타감독으로 군림하다가 결국 본래 자신의 나라인 영국으로 돌아가 만든, 히치콕의 전체 커리어를 두고 볼 땐 후기 작품이고 그가 영국으로 돌아간 것을 놓고 볼 때는 귀향 이후 첫 작품인, <프렌지>(Frenzy, 1972) 다. 

왜 수많은 영화 팬들의 우상이며 천재 예술가인 히치는 살인자를 캐릭터화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 중, 사과를 사용 했는가. 모든 미장센 하나하나를 강박증에 가깝게 완벽하게 도식화했다는 히치콕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이는 절대 랜덤일 수 없다. <프렌지>에서 왜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자신의 살인의 재물이 될 여자(전 부인)를 유혹하는 이 살인범의 모습이 유난히도 음탕하고, 탐욕스러워 보이는가.

사과가 아닌 다른 과일이었으면 어땠을까. 포도를 하나씩 따 먹으며 천박하며 씨까지 뱉어내면 그의 이미지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좀 노골적이긴 하지만 남근의 상징 (Phallic symbol)으로 더 명확할 수 있는 바나나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먹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애당초 과일장수인 본인이 밤낮으로 보는 사과를 그렇게도 수시로 먹어야만 했을까. 아마도 히치콕은 사과가 품고있는 다층적인 상징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사과라는 열매는 그 문학적인 활용의 계보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누구나 아는 메타포를 꼽아보자면,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어서는 안 되는 열매가 선악과, 즉 사과였으며 1800년대에 이르러 그림 형제에 의해 백설공주가 먹고 거의 죽다  (오랜 잠으로) 살아나게 된 것도 사과, 빌헬름 텔이 그 지역 공작에게 밑보여 사람 머리 위에 과녁 삼아 올려 화살로 맞춰야 했던 것도 사과다. 

그렇다면 왜, 사과여야 했는가. 흔하디 흔한 사과가 뭐길래, 이 열매는 욕망의, 호기심의, 금기의 상징이 되었는가. 사전을 훑어보면 사과가 가진 대부분의 레퍼런스가 종교적인 것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구약에 등장하는 선악과가 사과라는 기록은 없으나, 속이 하얗고 겉이 빨간 특성을 가진 이 과일에 많은 예술가들이나 문학가들이 금기와 반전의 메타포로 사과를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적으로 흡수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든 어브 이든 (에덴의 정원)
▲ The Garden of Eden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든 어브 이든 (에덴의 정원)
ⓒ web gallery of art 웹 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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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으로 사과의 계보를 따져 볼 수 도 있는데, 라틴어로 apple은 악, evil을 뜻하는 malum 이라는 단어와 동음이어라고 하니, 사과를 죄악의 근원으로 차용했던 문학가들이나 화가들이 그 언어적인 유래를 의식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apple이라는 단어가 여타 다른 과일이나 채소의 원래 이름에도 쓰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토마토가 처음에 유럽에 전파되었을 때 "love apples"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고, 중세 영어에서 오이는 "earth apples," 오렌지는 "golden apples" 라고 불리었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과는 식량이 될 만한 열매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통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한국 고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4) 에 등장한 사과가 그런 맥락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의 사과의 등장은 앞서 언급한 성적(sexual) 이거나 악마적인 메타포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주인공 영자는 부푼 꿈을 안고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다. 그러나 자신이 식모로 일하던 집에서 주인 아들에게 강간당하고 쫓겨나고 만다. 결국 그녀는 지인의 집에서 얹혀살며 미싱공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데 그녀가 야근 후,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적우적 씹는 음식이 사과다. 

대강의 상황만 봐도, 영자의 사과는 서양의 그것들처럼 에로틱하거나 혹은 금기의 상징을 갖고 있진 않다. 이 장면에서 영자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골방 한 칸에 비스듬히 누워,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는 사과를 주머니에서 꺼내 동물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굶은 것처럼 사과를 '물고 뜯는' 먹는 영자의 모습은 흡사 야생동물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이 야생적 행위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클로즈업으로 처리된다. 사과를 먹는 이 장면에서, 벌어진 그녀의 앞니가 화면 정중앙에 보여진다고 하면 대충 '클로즈'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롱 테이크로 사용되면서 그녀의 동물성은 더욱 더 부각되고 이 장면에서 영자는 그저 가난하고 배고픈 하류층 여성일 뿐이다. 이 영화 에서의 사과는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아닌 생명을 보전할 수단, 즉 무산 계급이 재화 없이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열매인 것이다.

나는 과일 중 사과를 가장 싫어한다. 수도 없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억지로 먹었더니 물려버렸다. 다만 그 자태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금기나 욕망의 상징이든, 노동자의 가난한 한끼 식사든, 사과는 정말 예쁘다. 이미 동요에서도 증명되었듯이.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과가 미인인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겹겹의 다의(多義)와 미스터리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비영리 계간지, 어.슬렁에 게재하였던 글입니다.



태그:#사과, #인문학, #영자의 전성시대,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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