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울산 현대는 급작스럽게 2017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 참가하게 됐다. 2016년 '아시아 챔피언' 전북 현대가 2013년 심판 매수 사건에 대한 징계로 2017 ACL 출전 자격이 사라지면서 생긴 결과다. 울산은 겨울 휴식기를 마치고, 3월 리그 개막에 맞춰 훈련을 시작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울산은 2017 ACL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긴급히 훈련 일정을 조정했고, 예정에 없던 연습 경기를 통해 일찌감치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야 했다. 여기에 전북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ACL 출전권 박탈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울산은 혼란 속 훈련을 이어가야 했다.

지난 3일 CAS의 판결에 따라 울산의 2017 ACL 플레이오프 출전은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울산의 2017년 본래 일정에는 없었던, 조급함과 혼란이 섞인 훈련의 성과가 대단할 수는 없었다.

    7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7 ACL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와 키치 SC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터뜨린 김성환(가운데)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7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7 ACL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와 키치 SC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터뜨린 김성환(가운데)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AFC(아시아축구연맹)


울산 현대, 승리가 '당연한' 경기를 치른다는 것

울산은 7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7 ACL 플레이오프 키치 SC(홍콩)와 경기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다. 

경기는 예상 밖이었다. 아무리 울산의 준비 시간이 짧았다고 할지라도, 아시아 축구에서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홍콩의 키치를 맞이해 어려운 경기를 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울산의 승리는 당연했고, 몇 골 차 이상으로 승리할 것이냐가 대다수 축구팬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울산은 키치의 두 한국인 선수, 김동진과 김봉진이 이끄는 상대 스리백 수비를 쉽게 뚫어내지 못했다. 미드필드진의 짧은 패스를 통해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종호를 활용하려 했지만, 패스의 정확도가 너무 떨어졌다. 전반 중반 이후에는 긴 패스를 활용해 공격을 진행했지만, 키치 선수들의 수비력만 돋보였다.

그럼에도 울산은 선취골을 뽑아냈다. 전반 추가 시간 막판 페널티박스 부근 혼전 상황에서 상대 수비수 김봉진이 걷어낸 볼이 김성환의 발에 맞고 슈팅으로 이어지며 골망을 갈랐다. 좀처럼 보기 힘든, 행운이 따른 득점이었다.

그런데 울산은 후반 시작과 함께 동점골을 내줬다. 후반 1분 왼쪽 측면 프리킥 상황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공격에 가담한 김봉진이 날카로운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울산의 골망을 갈랐다. 울산 선수들은 전반 막판 득점으로 방심한 탓인지, 김봉진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놓치며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후 키치의 공격이 거세졌다. 오른쪽 측면 공격을 담당한 람카와이의 순간 침투와 슈팅이 울산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중앙 미드필드 바도츠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울산은 후반 20분 김승준 대신 스피드가 장점인 김인성을 투입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측면 크로스의 정확도는 너무 떨어졌고, 중원부터 이루어지는 짧은 패스 역시 부정확했다. 울산 '에이스' 코바는 패스보다 자신의 드리블 능력을 우선시하는 무리한 플레이로 공격에 힘을 더하지 못했다.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울산은 조급해졌다. 어떻게든 득점을 만들기 위해 공격에 힘을 실어봤지만, 유효 슈팅을 만들기도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울산은 연장 전반 8분 키치의 역습 상황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 산드로에게 허용한 슈팅이 골대를 강타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장전에서도 득점에 실패한 양 팀은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냈다. 큰 점수 차 승리를 예견했던 울산팬들은 가슴을 졸이며 페널티킥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울산의 2번째 키커 이기제의 실축을 김용대 골키퍼가 선방으로 만회하면서 팀에 승리를 가져왔다.

'당연한' 승리는 없다는 교훈을 남긴 경기였다. 상대가 아무리 약할지라도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충분히 패할 수도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실제로 키치는 충분히 승리할 수도 있는 경기를 선보였다. 울산과 달리 시즌 중이었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조직력을 앞세웠고, 짜임새 있는 공격으로 상대를 패배 위기로 몰아넣었다.    

반면 울산은 큰 기대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 사죄해야 할 만한 경기를 보여줬다. 아무리 준비가 짧았다고 하지만, 최소한 프로라면 돈을 내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경기력은 보여줬어야 했다. 이날 울산은 경기 속도, 패스와 슈팅 정확도 등 모든 부분이 프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좋지 못했다.

울산은 이날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날을 기억하고, 오는 3월 개막하는 K리그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힘겹게 출전 자격을 따낸 ACL 무대에서는 돌풍을 일으켜 울산팬들에 큰 기쁨을 선물해야만 한다. '당연한' 승리는 없다는 것을 키치를 통해 느꼈듯이, 이번에는 울산이 아시아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교훈을 전해줄 필요가 있다. 이것만이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 사죄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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