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다. 여자프로농구(WKBL) 3위 경쟁 이야기다. WKBL의 독재자 우리은행 위비가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가운데 2위 삼성생명 블루밍스도 3위그룹과의 격차를 3경기 차이로 벌리며 안정권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공동 3위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KEB하나은행(이상 11승16패), 그리고 공동5위 KB스타즈와 KDB생명 위너스(이상 10승17패)의 승차는 고작 1경기에 불과하다.

평화(?)를 찾아가는 듯 했던 중위권 구도를 혼란스럽게 만든 팀은 역시 KB스타즈였다. 시즌 중반까지 4연패 한 번과 5연패 한 번으로 일찌감치 순위 경쟁에서 이탈하는 듯 했던 KB는 올스타전 이후에 열린 6경기에서 4승2패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3위와의 승차가 단 1경기로 좁혀진 만큼 남은 8경기에서 선전을 이어가면 충분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 수 있다.

KB상승세의 일등공신은 단연 '거물 루키' 박지수다. 박지수는 올스타전 이후에 열린 6경기에서 평균 15득점 14.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KB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수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시즌 초반에도, 코트에 적응하지 못해 부진할 때도, 물 오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현재도 언제나 변함없이 KB를 이끌고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KB의 에이스이자 주장 강아정이다.

세계 대회 득점왕 출신의 격이 다른 유망주

 프로 입단 후 꾸준히 경험을 쌓은 강아정은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성장했다.

프로 입단 후 꾸준히 경험을 쌓은 강아정은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성장했다. ⓒ KB 스타즈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거나 전국 대회에서 재능을 보인 유망주들이다. 하지만 강아정은 그 중에서도 남다른 경력을 가진 특별한 유망주였다. 동주여고 시절부터 대선배 변연하(은퇴)의 뒤를 이을 대형 슈터 유망주로 주목을 받던 강아정은 2007년 19세이하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8위에 머물렀지만 강아정은 평균 24.9득점을 올리며 미국과 유럽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했다.

강아정은 그 해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1순위로 국민은행 세이버스(현KB스타즈)에 지명됐다. 강아정은 루키 시즌 평균 18분을 소화하며 5.38점 3점슛 성공률 33%를 기록했다. 강아정은 대선배이자 멘토가 된 '변코비' 변연하가 합류한 2008-2009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해 평균 10득점을 기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돼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강아정이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2011-2012 시즌이었다. 강아정은 2011-2012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36분42초를 소화하며 12.93득점(13위) 3.73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5.6%(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강아정은 유독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입단 초기에는 '레알 신한'이라 불리던 신한은행이 있었고 신한은행의 시대가 끝난 후에는 우리은행이 독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KB는 변연하와 강아정이라는 위력적인 쌍포를 보유하고도 안정적인 포인트가드와 듬직한 센터의 부재로 언제나 중위권에 만족해야 했다(KB에서 박지수를 지명했을 때 유달리 기뻐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14-2015 시즌 KB는 플레이오프에서 신한은행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해 챔프전 1차전을 승리했지만 우리은행에게 내리 3경기를 내주며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강아정은 챔프전 4경기에서 평균 9득점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5-2016 시즌 노장 변연하가 가드로 나서면서 강아정은 공격에서 역할이 더욱 커졌고 평균 11.97득점 4.8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3.5%를 기록했다. 특히 다소 약하다고 평가 받았던 수비가 몰라보게 좋아지면서 스틸 부문 1위(1.83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연하가 어시스트 1위, 강아정이 스틸 1위를 차지하며 고군분투한 시즌에도 KB는 플레이오프에서 외국인 선수(첼시 리)가 한 명 더 뛴 하나은행의 벽을 넘지 못했다.

득점, 경기조율에 수비까지, KB상승세의 주역

 박지수의 빠른 적응도 있지만 강아정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KB의 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지수의 빠른 적응도 있지만 강아정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KB의 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KB스타즈


강아정은 시즌이 끝난 후에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해 거의 매 경기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대표팀 세대교체의 기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강아정은 시즌을 열흘 앞두고 연습경기에서 과거 수술을 받았던 오른쪽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당했다. 변연하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박지수의 팀 합류가 늦어진 상황에서 강아정마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다면 KB에게는 사실상 희망이 사라진다.

이번 시즌 KB의 새로운 주장이 된 강아정은 투혼을 발휘하기로 했다. 강아정은 이번 시즌 KB가 치른 27경기 중 단 한 경기만 결장한 채 26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특히 득점(13.38점)과 어시스트(3.00개)는 데뷔 후 최고 기록이고 38분26초의 평균 출전시간은 6개 구단 선수 중 단연 1위다. 그냥 출전을 이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심하게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민은행 상승세에도 강아정의 활약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3일 2차 연장까지 가는 대혈전을 벌인 우리은행전에서 강아정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17득점3리바운드10어시스트3스틸을 기록했다. 홍아란의 임의탈퇴로 확실한 가드자원이 부족한 KB에서 강아정은 득점뿐 아니라 경기를 조립하는 역할까지 수행한 것이다.

강아정은 순위싸움에 커다란 분수령이 된 6일 신한은행전에서도 22득점 2리바운드5어시스트2스틸을 기록했다. 강아정은 이번 시즌 공격에서뿐 아니라  스틸8위(1.46개), 굿수비(상대의 턴오버를 이끌어낸 수비) 2위(1.54개)에 올라 있을 만큼 수비에서도 공헌도가 높다. 리그에서 가장 오랜 시간 코트에 머무르며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는 선수가 바로 강아정이다.

사실 강아정은 2010-2011 시즌부터 여섯 시즌 연속 경기당 33분 이상 출전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시즌엔 발목 부상까지 당했다. 조금은 아프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상황에서 강아정은 오히려 스스로를 다그치며 더욱 부지런히 코트를 누비고 있다. 이제 강아정은 자신을 챙겨 줄 선배보다 자신이 챙겨야 할 후배가 더 많은 KB스타즈의 캡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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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KB 스타즈 강아정 득점왕 출전시간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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