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한 장면. 이윤혁씨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에 정식으로 빛을 보게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한 장면. 이윤혁씨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에 정식으로 빛을 보게 됐다. ⓒ 프로덕션 미디어길


지난 1일 개봉한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아래 <뚜르>)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자전거 대회 '투르드프랑스'를 완주한 고 이윤혁씨의 도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윤혁씨가 '투르드프랑스'에 참여했던 2009년에 제작 및 촬영에 들어갔지만 2015년 제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영화는 이윤혁씨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에 정식 개봉이 이뤄진다.

'투르드프랑스'에 도전할 당시 이윤혁씨는 이미 희귀암 말기 판정을 받았었다.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자전거대회에 참가하겠다는 암환자를 선뜻 지원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윤혁씨의 사연을 듣고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은 전일우씨의 진두지휘하에 이윤혁씨의 투르드프랑스 도전을 돕는 팀이 만들어진다.

이 영화의 감동이 유독 큰 이유

말기 암 환자가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지옥의 레이스를 완주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뚜르>는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지 않고 페달을 밟는 말기 암 환자의 담대한 도전과 노력 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윤혁씨의 아름다운 도전은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이윤혁씨의 레이스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기도 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 프로덕션 미디어길


'투르드프랑스' 도전을 결심한 이윤혁씨는 자신의 레이스를 도울 사람들을 모집한다. 레이스 기간 이윤혁씨를 수행할 인원도 많았고, 보통 '투르드프랑스'에 참여하는 레이서들이 21일 만에 완주를 하지만, 이윤혁씨는 건강 문제상 50일로 레이스 여정을 잡는다. 이윤혁씨를 포함 총 10명이 수십일 이상 체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숙식문제부터 레이스 구간 찾기 등 어느 하나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 더군다나 이윤혁씨의 온전치 않은 건강상태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다. 급기야 스태프들 간에 감정싸움으로 번진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만약에 <뚜르>가 방송 다큐멘터리가 선호하는 평범한 휴먼다큐, 즉 말기 암을 극복하고 지옥의 레이스를 완주한 이윤혁씨가 선사하는 감동만 고려했다면, 이윤혁씨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 위주로, 그가 힘들어 지쳐 하는 모습 하지만 레이스를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응원에 힘입어 끝내 레이스를 완주한다는 걸로 이야기를 완성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와 정반대로 시종일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스태프들과 대비되는 이윤혁씨의 의연한 면모를 극적으로 강조하는 구성 방식도 있다. 하지만 '이윤혁의 인간극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윤혁의 49일간의 투르드프랑스 여정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둔 <뚜르>는 레이스 기간 있었던 주요한 사건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이윤혁의 '투르드프랑스' 여정이기 때문이다.

"암세포가 나에겐 기회였어요. 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또 꿈을 꾸고 있어요."

극 중 이윤혁씨는 암에 걸렸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소망했던 '투르드프랑스' 도전을 실행할 수 있었다고 종종 말한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아도 삶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는 이윤혁씨의 밝은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윤혁씨의 성공적인 레이스를 위해서 뒤에서 묵묵히 서포트를 해준 9명의 스태프가 있었기에 윤혁씨의 꿈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윤혁씨의 '투르드프랑스' 첫 도전 이후에도 '투르드프랑스'에 출전한 한국인이 없다고 하는데, 비상한 사이클 실력과 강철 체력을 가진 이들도 쉽게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지옥의 레이스를 보여주는 '투르드프랑스'가 가진 악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전·체류 비용도 무시 못 한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현실

이윤혁씨 같은 경우에는 그를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영화 제작팀이 3명 정도 더 붙긴 했지만, 한 선수가 '투르드프랑스'에 출전하려면 최소 4~5명의 스태프가 필요해 보인다. 레이서가 경기를 펼칠 때마다 보조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선수 곁에 있어야 하는 스태프들의 비용 또한 온전히 선수가 감당해야 한다.

몇몇 기업으로부터 스폰을 받아 출전 비용을 마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주류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가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그를 위해 선뜻 투자금을 건네는 기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김연아, 박태환 정도로 스타성을 갖추고 있어야 스폰이 들어올까 말까이다. 하물며, 유럽에서는 FIFA 월드컵과 버금가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한들, 한국에서는 사이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야 안다는 대회에, 우승권도 아닌 선수가 기업의 투자를 받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 정도의 빽이 있지 않고는 어렵다.

어렵게 스태프는 구했으나 윤혁씨 또한 누군가의 스폰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넉넉하지 못한 여비로 팀을 꾸리게 된 이들은 침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숙소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가, 그것도 몸이 온전치 못한 레이서가 최적의 컨디션 속에서 레이스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태프들 간에 잡음이 발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갈등을 뒤로하고 이윤혁씨의 완주를 끝까지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머나먼 프랑스까지 달려온 윤혁씨 때문이었다. 9명의 스태프는 오직 이윤혁씨의 완주를 위해 모였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을 잘 알아도 윤혁씨의 성공적인 투르드프랑스를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 윤혁씨의 몸 전체에 퍼진 암세포가 윤혁씨 포함 10명의 스태프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로 묶고 윤혁씨의 꿈을 이루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 셈이다. 말기 암에 걸렸음에도, 강인한 정신력을 앞세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룬 이윤혁씨. 그리고 윤혁씨 뒤에서 든든한 서포터가 돼준 스태프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 작품의 감동은 이윤혁씨 개인에게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그 감동이 배가 된다.

이 작품의 감동은 이윤혁씨 개인에게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그 감동이 배가 된다. ⓒ 프로덕션 미디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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