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UNLV의 파워포워드 래리 존슨을 지명한 샬럿 호네츠는 이듬 해 센터의 명가 조지타운대학에서 알론조 모닝을 영입했다. 샬럿은 존슨과 모닝이 뭉친 첫 시즌 팀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물론 그 시절 샬럿에는 켄달 길, 먹시 보그스, 델 커리 등도 있었다). NBA팬들은 힘과 기술을 겸비한 존슨과 모닝 콤비가 장차 NBA무대를 뒤흔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존 스탁턴과 칼 말론,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처럼 영혼의 콤비가 될 거 같았던 존슨과 모닝 콤비는 3년 만에 해체됐다. 두 선수 모두 독보적인 1인자가 되기엔 조금 부족했고 그렇다고 2인자에 머물기엔 자존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닝은 마이애미 히트로, 존슨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며 각자의 길을 걸었고 1998년 다른 유니폼을 입고 만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살벌한 난투극을 벌이며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휴스턴 로케츠의 제임스 하든과 드와이트 하워드 역시 2013-2014 시즌부터 3년 동안 호흡을 맞췄지만 팬들이 기대한 시너지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하워드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애틀랜타 호크스로 떠나면서 하든은 휴스턴의 외로운 에이스로 남게 됐다. 하지만 이번 시즌 휴스턴은 승률 .763(29승9패)로 서부 컨퍼런스 3위를 달리며 하워드가 있던 시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포인트 가드로 변신하며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에이스 하든 덕분이다.

휴스턴 이적 후 에이스로 등극했지만 하워드와 엇갈린 호흡

 수염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지만 하든은 아직 만27세의 젊은 청년이다.

수염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지만 하든은 아직 만27세의 젊은 청년이다. ⓒ NBA.com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출신의 하든은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지명됐다. 블레이크 그리핀(LA클리퍼스)와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이 하든의 드래프트 동기다. 하든은 오클라호마시티 시절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돌파력과 외곽슛을 두루 갖춘 뛰어난 공격수였지만 수비에서는 불안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을 오래 가지고 공격을 풀어 나가는 유형으로 주전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과 동선이 겹치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하든이 NBA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NBA 입성 후 꾸준히 출전 시간과 평균득점을 늘린 하든은 자신의 3번째 시즌이었던 2011-2012시즌 16.8득점 4.1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클라호마시티의 파이널 진출에 큰 기여를 했고 2011-2012 시즌 식스맨상을 받았다. 어느덧 하든은 오클라호마시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고 케빈 듀란트(골든스테이트)와 웨스트브룩 체제를 지켜야 했던 오클라호마시티는 2012년10월 하든을 휴스턴으로 보냈다.

휴스턴 이적 후 식스맨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하든은 이적 첫 해 78경기에 출전해 25.9득점 4.9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데뷔 후 첫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다(하든은 2013년을 시작으로 4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하고 있다). 2013-2014 시즌 하워드가 가세한 후에도 득점력을 유지하며 리그 정상급 슈팅가드로서의 위용을 과시한 하든은 2014년 농구월드컵에 출전해 가드와 포워드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 도전을 위한 승부수로 영입한 하워드가 부상과 슬럼프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지난 두 번의 시즌에도 하든의 기록은 점점 더 좋아졌다. 2015-2016 시즌에는 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리그에서 가장 많은 38.1분을 소화하며 평균29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하워드가 루키 시즌 이후 가장 낮은 13.7득점에 그치면서 휴스턴은 41승41패로 2005-2006 시즌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휴스턴에 193승을 가져다 준 케빈 맥헤일 감독이 시즌 초반에 해임되고 하워드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휴스턴은 점점 하든의 원맨팀이 됐다. 시즌 중반에 영입된 조쉬 스미스나 마이클 비즐리(밀워키 벅스)도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결국 존재감이 작아진 하워드는 자신의 고향이자 전성기를 보낸 동부 컨퍼런스의 애틀랜타 호크스로 훌쩍 떠나버렸다. 이제 누가 뭐래도 휴스턴은 하든이 홀로 이끌어 가야 할 팀이 됐다.

포인트 가드 변신 후 개인과 팀 성적 모두 잡은 '털보 에이스'

 고든은 이번 시즌 '하든효과'를 가장 가까이서 누리고 있다.

고든은 이번 시즌 '하든효과'를 가장 가까이서 누리고 있다. ⓒ NBA.com


휴스턴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과거 피닉스 선즈의 화끈한 공격농구를 이끌었던 마이크 댄토니 감독을 영입했다. 여기에 슈터 애런 고든과 스트레치 포워드 라이언 앤더슨, 브라질 출신의 빅맨 네네 히라리오 등을 보강했다. 하지만 모두 부상과 수비, 나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주전 포인트가드 패트릭 베벌리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 하든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댄토니 감독은 해법을 찾아냈다. 바로 하든의 포인트 가드 변신이었다. 휴스턴 이적 후 꾸준히 어시스트가 늘긴 했지만 리그 정상급 슈팅 가드를 포인트가드로 변신시킨 것은 분명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하든은 자신의 역할을 120% 이상 수행하고 있다. 하든은 휴스턴이 치른 38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해 27.9득점 8.2리바운드 11.9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어시스트 부문에서는 웨스트브룩, 존 월(워싱턴 위저즈), 크리스 폴(LA클리퍼스)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하든이 득점보다는 경기 조율에 신경을 쓰다 보니 동료들의 경기력도 덩달아 살아나고 있다. 2010-2011 시즌 이후 매 시즌 부상으로 실망스런 활약을 펼치던 에릭 고든은 이번 시즌 17.8득점에 41.9%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고든이 이번 시즌에 적중시킨 144개의 3점슛은 커리(139개)를 능가하는 리그 1위 기록이다. 앤더슨 역시 41.5%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 중이고 3년 차 센터 클린트 카펠라는 데뷔 후 가장 많은 평균 8개의 리바운드를 기록중이다.

6일(이하 한국시각)에 있었던 친정 오클라호마시티와의 경기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하든의 희생정신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 하든은 49득점을 쏟아 부은 웨스트브룩과 자존심 경쟁을 벌이는 대신 차분하게 경기를 조율하며 12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했다(그 와중에도 26득점을 올렸다).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네네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 준 선수 역시 하든이었다. 휴스턴은 7일 올랜도 매직까지 100-93으로 꺾으며 파죽의 7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다.

사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 휴스턴의 예상 성적은 플레이오프 하위 시드 경쟁 정도였다. 하든을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스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리그 반환점을 앞둔 현재 휴스턴은 슈퍼스타 하든을 중심으로 댄토니 감독 특유의 닥공 농구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평균득점 114.3득점, 2위). 이번 시즌 휴스턴의 성공은 듬직한 에이스의 마음가짐과 실천이 팀과 동료들을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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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휴스턴 로케츠 제임스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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