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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마리의 소가 거리를 뛰쳐다니고 사람들은 사육장에서 투우경기장까지 약 825m를 뛰어다닌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때문에 부상자만 2백여명이 넘고 간혹 사망자도 발
1988년생, 헌혈 88회, 800km 순례길, 헌혈증 88장 기부 순례길여행

팜플로나 시내
▲ 팜플로나 팜플로나 시내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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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찾은 팜플로나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3일째,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들을 넘어 처음으로 도착한 큰 도시다. 하지만 나는 이번이 두 번째다. 생장(St.Jean)으로 가기 위해 팜플로나에서 버스를 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오후 한 시쯤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더 걸을 수 있었다. 더 걸어서 다음 마을로 이동할지 팜플로나에서 멈출 것인지 고민하다가 종원이와 함께 팜플로나에서 멈추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몸 상태도 괜찮아 몇 시간 더 걸어도 괜찮았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도시이고 대도시에서는 볼 것도 많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먼저 걷던 해인, 승현 그리고 상효는 팜플로나를 지나서 다음 마을까지 갔다고 나중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아직 본 지 이틀 정도지만 타지에서 만나서 더욱 반가웠다. 어제 하루종일 같이 걸은데다 행복한 저녁식사 덕분에 금방 친해졌다. 오늘은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직 남은 길이 많으니 또 만나게 되리라 생각했다.

팜플로나 스포츠용품 가게
▲ 팜플로나 팜플로나 스포츠용품 가게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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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종원이, 카일과 함께 도시 중심부를 구경하면서 스포츠 용품 가게에 가기로 했다. 종원이가 빌려준 스틱 덕분에 비오는 산길에서도 잘 걸을 수 있었다. 계속 폐를 끼칠 수는 없어서 스틱을 구매하기로 했고 종원이도 더 구입할게 있는지 같이 가기로 했다.

5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매장 문에 적혀 있다. 영업시간 전까지 근처 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공식적인 시에스타(낮잠)가 없어졌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많은 가게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세 명이 바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카일은 종원이와 함께 걸으면서 만나고 안면을 튼 외국인 순례자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 카일이 29살이라고 말해서 동갑내기 외국인 친구를 만들게 됐다고 들떴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보다 2년 먼저 태어난 형이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보다는 나이에 대해서 관대하니까 말이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혼자 살며 아웃도어 활동 가이드를 한다고 말했다. 운동과 여행을 좋아해 산티아고 순례길도 왔다고 했다. 나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외국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즐긴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를 외국인을 만나 사용하면 배운 것을 적용하는 재미가 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간혹 신비로울 때도 있다.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5시쯤 다시 우리는 스포츠용품 가게로 걸어갔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5시간도 채 걷지 않아서 몸 상태도 좋았다. 짖궂은 날씨는 지나갔다. 앞으로 봄이 올 테니 더 기대됐다. 걷기 시작한지 삼일째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생각했다.

스포츠용품점에서 10유로에 스틱 하나를 샀다. 다시 한 번 스틱을 빌려준 종원이에게 감사했다. 구매 후에는 약국에서 칫솔을 샀다. 이렇게 대도시에서는 시내도 구경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며 재충전하기로 했다.

투우경기장
▲ 팜플로나 투우경기장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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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르민 축제

지나가다가 투우경기장을 봤다. 아직 초봄이라 그런지 운영은 안하는 것 같았다. 팜플로나는 한국인들에게 여행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순례길 코스 중 거치는 도시로 알고 있다. 책이나 티비에서 산페르민(San Fermin)축제 장면을 본 기억이 있어 도시 이름은 친숙했다.

아쉽게도 내가 걷던 3월에는 볼 수 없었지만 매년 7월 6일~14일 도시의 수호성인인 산 페르민을 기리는 종교축제가 열린다. 3세기 무렵 팜플로나 출신으로 기독교 포교 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페르민 성인을 기리는 이 축제는 16세기에 7월 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현재 스페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톨릭(약 77%)을 믿지만 15세기까지 기독교(구교, 신교)와 이슬람이 공존했다.

축제 기간 동안 종교행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그 중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논란을 일으키는 행사가 '엔시에로'(Encierro)다. 축제 첫날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에 산 페르민 성당의 종이 울리며 산토 도밍고 사육장에서 소를 풀어놓는다.

14~16마리의 소가 거리를 뛰쳐다니고 사람들은 사육장에서 투우경기장까지 약 825m를 뛰어다닌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때문에 부상자만 200여 명이 넘고 간혹 사망자도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축제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다. 문화가 달라 신기한 행사다. 소를 피해 뛰어다닐 자신은 없지만 색다른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도신데 시기가 달라 아쉬웠다.

팜플로나 시청
▲ 팜플로나 팜플로나 시청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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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의 저녁
▲ 팜플로나 팜플로나의 저녁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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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만찬

축제를 보지는 못하지만 아직 경험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 먼저 맛있는 음식이다.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 아직 삼일째고 경비를 아낄 때다. 만들어 먹거나 마트에서 간단히 구입해서 배를 채울 계획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대도시고 맛있는 빠에야 가게가 있다고 들어서 종원이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남은 길을 잘 걷기 위해 배를 든든히 채우기로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한국분들과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팜플로나 시내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아직 친하지는 않았지만 타지에서 우리나라사람들끼리 저녁을 먹으니 편하고 즐거웠다.

변호사시험을 마치고 온 사람,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 엔터테인먼트계열에서 일하시는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8명이 모여서 피자와 빠에야를 주문했다. 축제 기간이 달라 아쉬웠지만 이 때 먹은 빠에야는 최고였다. 또 사람이 여러 명이니 적은 돈으로도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목적이 있는 여행이다.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타지에서 이야기 나누고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스페인 전채요리 간식으로도 먹으며 이쑤시개나 작은 접시에 간단히 먹는 음식
▲ 타파스 스페인 전채요리 간식으로도 먹으며 이쑤시개나 작은 접시에 간단히 먹는 음식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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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전통 쌀 요리
▲ 빠에야(Paella) 스페인 전통 쌀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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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팜플로나를 배경으로 한 소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동상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팜플로나를 배경으로 한 소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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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팜플로나'

다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숙소를 이용하는 분들과 길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중 헤밍웨이의 동상을 봤다. 미국작가의 동상이 왜 여기에 있는지 숙소에 들어와 찾아봤다.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주배경이 팜플로나였다. 실제 헤밍웨이가 오랫동안 팜플로나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산 페르민 축제가 묘사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팜플로나를 알게 되는데 헤밍웨이가 기여했다고 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읽은 적이 없지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청소년 때 몇 번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만난 어니스트 헤밍웨이. 신기하게도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할아버지 이름이 산티아고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고기잡는 어부다. 그는 84일째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40일은 한 소년이 같이 있었으나 소년의 부모가 소년을 구슬러 그 이후 소년은 다른 배를 탔다. 그 소년을 제외하고는 마을에서 모두 산티아고를 놀리지만 산티아고는 조금도 화를 내거나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다시 배를 끌고 바다로 향한다. 드디어 하늘도 그의 노력에 감동했는지 어느 날 거대한 청새치가 그의 낚싯바늘에 걸린다. 그리고 고기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틀 밤낮에 걸쳐 싸움에서 이기지만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이 청새치를 다 뜯어 먹는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항구에 도착한다. 노인의 배에 많은 어부들이 모여 뼈만 앙상한 고기의 길이를 재보니 16피트(약 4m88cm)였다. 산티아고는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바다라는 광활하고 예측불가능한 곳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싸우는 모습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습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소 흉내를 내는 종원이
▲ 팜플로나 소 흉내를 내는 종원이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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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6시 종원이와 나는 알베르게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식사를 하고 준비 후 걷기 시작했다. 떠들썩 하던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참 고요했다.

다시 한 번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성과 없는 날들을 이겨내고 또 다시 그의 전쟁터인 바다로 나가 청새치를 잡았다. 결국에는 빈손으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허망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나 또한 홀로 순례길 800km를 걷기 시작했다. 버스로 2시간이면 올 도시에 3일 동안 걸어서 다시 찾았다. 바다만큼 변동이 심한 것은 아니지만 순례길 또한 예측이 불가하다. 만나는 사람,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날씨. 좋은사람을 만나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또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누군가는 말한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산티아고는 말한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아침 8시 고요한 도시 팜플로나에서 눈을 맞으며 다시 발걸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 걸음 걸음을 누군가 같이 걷기 시작했다.

팜플로나 시청
▲ 팜플로나 팜플로나 시청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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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으로 기부할 수 있는 어플 '빅워크'
▲ 빅워크 걸음으로 기부할 수 있는 어플 '빅워크'
ⓒ 빅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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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Larrasona - > Pamplona 11.3km
팜플로나 9개 알베르게

산페르민 축제 매년 7월6일~14일

팜플로나
10C~16C 나바라 왕국의 수도



태그:#산티아고순례길, #스페인, #팜플로나, #투우, #산페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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