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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하면서 많은 분들이 새해 인사를 보내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덕담은 '지난해 못 이룬 일을 올해 꼭 이루시기를 기원한다'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지난해 하고 싶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일 중 하나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해 첫날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은 80%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직위에서 물러난 후에는 '반드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 역시 월등합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저는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박근혜 사퇴와 특검 외치며 산화한 이남종

지난 2013년 12월 31일 오후 5시 29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이남종(40, 광주광역시)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두 플래카드를 내건 채 몸에 불을 붙였다. 사진은 분신 직후 상황으로, 고가도로 위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찍어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이다.
 지난 2013년 12월 31일 오후 5시 29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이남종(40, 광주광역시)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두 플래카드를 내건 채 몸에 불을 붙였다. 사진은 분신 직후 상황으로, 고가도로 위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찍어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이다.
ⓒ @cantaloup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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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의 일이었습니다. 하늘이 희뿌옅게 내려앉고 있었던 오후 5시 30분께,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라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극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고가 위 남자가 '박근혜 사퇴'와 '특검 실시'라는 글귀가 각각 써 있는 현수막을 난간 밑으로 내린 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이남종 열사입니다. 이남종 열사는 이날 부정선거로 권력을 장악한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사퇴와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이들의 염원에도 다음날인 1월 1일 오전 8시 30분께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남종 열사의 분신 충격보다 더 슬픈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련의 왜곡 행위였습니다. 가장 앞장 선 집단은 경찰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선거 당선을 위해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한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원의 댓글 공작은 사실임에도 경찰은 2012년 12월 16일 오후 11시, 이례적인 한밤중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국정원 직원의 댓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합니다.

그랬던 경찰이 이번에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며 항거하자 그의 희생을 폄하하는 왜곡 발표를 또다시 합니다. 당시 이남종 열사의 분신 사건을 조사한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은 "다이어리 전문을 보면 어디에도 유서 형식으로 쓴 글은 없다. 가족에게 쓴 게 전부"라며 그가 국민에게 남긴 두 통의 유서 존재를 은폐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은 나아가 이남종 열사가 시국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경제적 빈곤 등 개인적 신변을 비관하여 분신한 것'으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장 나쁜 일은 이남종 열사가 마치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한 것처럼 연상시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입니다.

경찰은 2013년 1월 1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이남종 열사가 분신 자결하기 일주일 전, 자신이 가입해 둔 보험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꿨다면서 마치 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한 것처럼 읽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찰 자료 배포 후 이남종 열사의 분신 항거를 불편하게 여기던 측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보험금을 노린 죽음이라고 기정사실화하는 왜곡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발표는 명백한 진실 왜곡이었습니다. 경찰이 말하는 보험은 어처구니없게도 '운전자 보험'이었습니다. 한 달에 2만7000원을 내는 보험으로 차량 사고나 병이 들었을 때 보험금이 나오고 자살할 경우 1원도 돈이 나오지 않는 보험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말 경찰이나 보수언론이 몰라서 실수로 발표하고 기사를 썼을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떻게든 이남종 열사가 외친 마지막 그 한마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국가권력 기관이 개입했던 부정선거에 국민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자 의도적으로 벌인 왜곡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이남종이 아닌 '분신남'이라고 쓴 보수언론

고 이남종씨를 향한 왜곡 보도를 일삼은 <조선일보>. 이미지는 지난 2014년 1월 3일 보도 내용.
 고 이남종씨를 향한 왜곡 보도를 일삼은 <조선일보>. 이미지는 지난 2014년 1월 3일 보도 내용.
ⓒ <조선닷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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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왜곡에는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남종 열사가 분신하고 3일이 지나가던 2014년 1월 2일, 당시 <조선일보>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은 앞서 경찰이 언급한 이남종 열사 보험 수급자 명의 변경 등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남종 열사가 분신한 이유가 '박근혜 부정선거에 대한 특검 요구'임을 밝힌 언론은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JTBC <뉴스9>(현재 '뉴스룸')뿐이었습니다. 이외에 공중파와 종편에서는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이남종이라는 사람이 그날 왜, 무슨 이유로, 그곳에서 자신의 생을 마쳤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왜곡과 은폐로 분신 후 4일이 지나가던 2014년 1월 4일, 이남종 열사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고, 이내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는 그날까지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나머지 보수언론은 그의 이름인 '이남종' 대신 '서울역 분신남'이라는 기가 막히는 표현으로 그를 모욕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는 더욱 그랬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서울역 분신남, 광주 망월동에 안장키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익명의 취재원을 등장시켜 '애초 유족들이 조용히 가족끼리 장례를 치를 것을 원했으나 장례 대책위 등이 그간 치료비와 장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설득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성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서울역 분신 40대 민주열사 칭호에 시민장 추진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이남종 열사가 분신한 이유는 개인적인 부채 때문'이라며 '망월동 묘역 안장 역시 취재 결과 묘역 관계자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논란을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 오보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이남종은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이남종 열사는 분신 직후부터 그 의미를 공격받으며 외롭게 마지막 길을 걸어갔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슬픈 일입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공격받은 이남종이라는 분은 어떤 분일까요?

이남종 열사는 조선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 ROTC 육군 대위로 전역했습니다. 이남종 열사의 어머니에 따르면 이남종 열사는 3형제 중 둘째로 1973년생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결코 남을 원망하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미워할 사람도 아니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릴 적, 아침에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옷을 가져다 드리자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나가 그 분에게 옷을 입혀 드리기도 했고, 명절 때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과일을 사서 나눠줬다고 합니다. 고인의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선생께 "그런 사람이 내 아들 이남종이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남종 열사가 남긴 그 유서, 공개합니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분신한 고 이남종(40, 광주 북구)씨의 노제가 지난 1월 4일 오후 4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치러지는 모습. 노제 현장에 차려진 이씨의 분향소 뒤로 가수 인디언 수니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분신한 고 이남종(40, 광주 북구)씨의 노제가 지난 1월 4일 오후 4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치러지는 모습. 노제 현장에 차려진 이씨의 분향소 뒤로 가수 인디언 수니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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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남종 열사가 만 4년 전 우리에게 남긴 열일곱 줄 분량의 유서를 꼭 읽어드리고 싶었습니다. 2013년 12월 31일 우리에게 이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그때 누구도 제대로 귀 담아 듣지 않았던 그 유서입니다. 경찰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 외에는 없다'며 숨기고 싶어했던 바로 '국민에게 남긴' 그 유서의 전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 없이 이룬 자유 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까?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앞 고가도로에서 분신 한 뒤 2014년 1월 1일 오전 사망한 이남종씨(40)가 작성한 유서(2장)가 2014년 1월 2일 오후 공개되었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앞 고가도로에서 분신 한 뒤 2014년 1월 1일 오전 사망한 이남종씨(40)가 작성한 유서(2장)가 2014년 1월 2일 오후 공개되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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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앞 고가도로에서 분신 한 뒤 2014년 1월 1일 오전 사망한 이남종씨(40)가 작성한 유서(2장)가 2014년 1월 2일 오후 공개되었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앞 고가도로에서 분신 한 뒤 2014년 1월 1일 오전 사망한 이남종씨(40)가 작성한 유서(2장)가 2014년 1월 2일 오후 공개되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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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7년 1월 4일)은 4년 전 이남종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분의 이름 '이남종'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분이 우리보다 먼저 외친 그 정의가 오늘날, 연인원 1000만(주최측 집계)의 촛불로 살아나 불의한 '박근혜 탄핵'과 '특검'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기적같은 용기'를 저는 이남종 열사가 남긴 유서에서 찾고 싶습니다. 이남종 열사는 유서에서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겠다'고,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다'고 절규했습니다. 단언컨대, 그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싸우며, 지난 연말 광화문 광장 어디에서인가 죽어서도 우리와 함께 촛불을 들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이남종'이라는 이름을 한 번만 함께 불러주십시오. 4년 전 우리가 그때 무심히 지나쳤던 그분에게, 그의 마지막 길에 초라하게 참석했던 그 미안함을 지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 분의 영전에 우리가 바치는 한 송이 꽃이 됐으면 합니다.

이남종 열사여. 이제 우리가 당신과 함께 정의를 외치겠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이남종 열사의 4주기를 애도합니다.

지난 2014년 1월 4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고 이남종 씨의 영결식이 열리는 도중 고인이 분신한 지점인 서울역 고가도로에 '국정원 특검실시'라고 적힌 현수막을 기습적으로 내리고 있다.
 지난 2014년 1월 4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고 이남종 씨의 영결식이 열리는 도중 고인이 분신한 지점인 서울역 고가도로에 '국정원 특검실시'라고 적힌 현수막을 기습적으로 내리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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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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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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