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리>의 포스터.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렸다.

영화 <배리>의 포스터.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렸다. ⓒ Black Bear Pictures


퇴임을 앞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여전히 지지율이 높다. 최근까지도 50%를 상회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록 도널드 트럼프의 정권교체라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됐지만, 그가 '행복한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배리>(Barry, 비크람 간디 감독, 2016년 작품)는 바로 그 오바마가 '버락'이 아닌 '배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 그가 통과했던 청춘의 한 시기를 포착한 영화다.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던 바로 그 오바마의 가족사를 둘러싼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속 배리의 대사를 통해 그의 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와이, 인도네시아, 케냐에서 살았고 부모님은 합쳐서 대여섯 번 결혼했어."

컬럼비아 대학교에 다니게 된 배리(데번 테럴 분). 하지만 그를 맞아준 뉴욕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학교생활이지만 배리는 곧 모든 것에 시들해진다. 백인 여성인 샬럿(애냐 테일러 조이 분)과의 연애도 삐걱대기만 한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배리가 자신을 온전히 흑인으로 규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이 그를 오로지 흑인으로 대한다는 인식의 괴리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 배리에게 케냐 나이로비에 살고 있던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진다.

영화는 배리가 연애를 하고, 강의를 듣고, 운동을 하고, 논쟁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선언하는 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배리는 샬럿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주변 시선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건 백인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흑인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배리는 샬럿에게 말한다. "아무도 널 안 쳐다봐. 나를 쳐다보지."

하지만 이를 두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강박적인 반응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핵심은 누구보다도 야심이 많은 그가 자신을 흑인으로 규정하는 세상의 시선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배리에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넌 항상 네 위주로 생각해."

그러나 배리는 자신의 그런 고민을 소중한 사람들과 쉽사리 나누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지도 못한다.

이런 묘사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체성이란 인생이라는 건축에서 토대와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스스로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믿지 못한다면, 발 없이 부유하는 풍선처럼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되고, 끝내는 발을 내디딜 토대가 없으니 이를 박차고 도약할 수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배리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이름을 '버락'이라고 쓰는 순간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리는 자신이 사는 동네 흑인 소년과 농구시합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그의 성장을 상징한다. 이 장면에서 배리가 보여주는 소년에 대한 배려는 곧 자기중심적이던 그가 다른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됐음을 의미하며, "지금은 여기에 산단다"라는 대사는 비로소 그가 할렘이라고 불리는 뉴욕 흑인 동네의 주민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배리>는 기본적으로 오바마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정보와 무관하게 정체성이나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정체성에 관한 이 영화의 조언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고민이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어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수는 있지 않을까.


배리 비크람간디 버락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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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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