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루키' 하나가 가세했다고 갑자기 5위 팀이 1위 팀과 전력이 대등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우리은행 위비는 17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KB스타즈와의 3라운드 원정경기에서 59-41로 승리를 거뒀다. 이미 전반전 스코어가 24-12로 벌어졌고 쿼터마다 한 번의 위기조차 없었던 완승이었다. 지난 15일 신한은행에게 시즌 첫 패를 당했던 우리은행은 이틀 만에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3라운드를 4승 1패로 마무리했다.

반면에 KB스타즈는 '거물 신인' 박지수가 25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4득점 10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했다. 골 밑에서의 존재감은 익히 알려진 대로 대단했지만 4득점이 말해주듯 아직 공격력에서는 만족할 만한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다. 이는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수의 경기감각이 완전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코트에서 끊임없이 박지수를 괴롭힌 대표팀 선배 양지희의 수비에 막힌 탓도 컸다.

신체조건 살리지 못하던 양지희, 우리은행 이적 후 기량 활짝

 양지희는 우리은행 이적 후 WKBL 최고의 토종센터로 성장했다.

양지희는 우리은행 이적 후 WKBL 최고의 토종센터로 성장했다. ⓒ 우리은행 위비


광주 수피아여고 출신으로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에 선발되기도 했던 양지희는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신세계 쿨캣(현 KEB하나은행)에 지명됐다. 양지희는 입단 초기 185cm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로 양지희는 프로입단 후 4년 동안 한 번도 평균4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적이 없다.

그러던 2007-2008시즌 여자프로농구는 한시적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했고 마침 양지희도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하면서 점차 기량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9-2010시즌에는 평균 12.4득점 6.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WKBL을 대표하는 센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양지희는 2010년 4월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양지희가 가세한 후에도 우리은행은 여전히 하위권을 전전했고 양지희는 외롭게 우리은행의 골 밑을 지켰다. 하지만 2012년 4월 신한은행의 왕조를 이끌었던 위성우 코치가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우리은행의 팀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위성우 감독의 지옥 훈련을 소화한 양지희는 골 밑에서 공격을 책임지는 역할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팀플레이에 눈을 떴다.

위성우 감독의 지도와 박해진, 임영희, 양지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맹활약한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WKBL 통합 4연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다. 이 기간에 양지희는 두 번의 블록슛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센터로 명성을 떨쳤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특히 2015-2016시즌은 양지희에게 있어 최고의 전성기였다. 쉐키나 스트릭렌, 임영희에 이어 팀 내 득점 3위(10.31점), 리바운드 2위(6.06개), 블록슛 1위(1.37개), 스틸 3위(1.03개)에 오른 양지희는 2015-2016시즌 정규리그 MVP에 오르며 프로 데뷔 14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섰다. 특히 많은 득점을 하지 않는 수비형 센터의 MVP 수상이었다는 점에서 양지희의 MVP 등극은 더욱 가치가 있었다.

그림자 같은 밀착 수비로 박지수 움직임 최소화

 양지희는 밀착수비로 박지수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양지희는 밀착수비로 박지수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30세가 넘은 나이에 선수 생활 최고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양지희는 이번 시즌 개막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양지희는 일본 전지훈련 도중 허리 부상을 당했고 허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무릎에도 무리가 왔다. 다행히 우리은행은 양지희의 부재 속에서도 1라운드 전승을 달렸지만 우리은행 이적 후 4번이나 전 경기에 출전했던 양지희가 빠진 우리은행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양지희는 11월 16일 KB스타즈와의 2라운드 첫 경기부터 코트에 복귀했다. 이번 시즌 10경기에 출전한 양지희의 시즌 성적은 평균 5.4득점 5.3리바운드 1.4스틸. 현존하는 WKBL 최고의 토종센터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위성우 감독은 몸이 완전치 않은 양지희의 출전 시간을 20분 내외로 제한하고 있다. 개인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지희는 17일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평소보다 많은 25분 50초를 소화했다. 존쿠엘 존스가 상대 외국인 선수를 막는다면 박지수를 막을 선수는 양지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 양지희는 4득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기록만 놓고 보면 사실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양지희의 활약은 기록지에 나타난 것 이상이었다.
양지희는 자신보다 8cm나 큰 박지수를 전담 마크하면서 박지수의 득점을 단 4점으로 묶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밀착수비로 박지수의 슛 시도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박지수는 이날 슛을 단 4개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우리은행에는 양지희 말고도 존스, 박혜진, 임영희 등 득점할 수 있는 선수가 즐비하기 때문에 양지희가 박지수에 대한 수비만 효과적으로 펼쳐 준다면 얼마든지 유리하게 경기를 끌고 갈 수 있다.

WKBL을 대표하는 센터와 장차 WKBL을 주름잡을 센터의 첫 맞대결은 언니 양지희의 근소한 판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프로의 쓴 맛을 봤다고 해서 박지수가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고 양지희 역시 들 뜰 필요는 없다. 아직 2016-2017 시즌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고 양팀은 정규리그에서만 4번의 맞대결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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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위비 양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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