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개그콘서트> 코너 '일대일'에서 어버이연합을 풍자한 개그맨 이상훈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어버이연합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지난 8월 <오마이스타> 인터뷰에서 고소 후 "무대에서 실수를 너무 많이 하는 날 발견했다. 아이디어를 내기는커녕 무대에서 대사조차 안 되는데 힘들더라"는 심경을 고백했다. 그는 이어 코너에서 잠시 내려왔다.

'외압 논란'이 있을 때마다 방송사들은 "절대 외압은 없었다"고 답한다. 하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박근혜 정권 하에서 희극인들은 유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지난 11월 <뉴스룸>이 보도한 것처럼 청와대가 <SNL코리아>의 한 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사례다. 그간 사회적 분위기는 정치 풍자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희극인들은 대중들로부터 정치 풍자를 해달라는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다.

희극인들은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정치 풍자 코너를 신설하거나 과거 불확실한 이유로 폐지한 코너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가 남는다.

LTE뉴스와 민상토론의 부활... 그 내용은?

SBS 스탠드업 코미디쇼 <웃찾사>의 대표적인 풍자 코너 'LTE뉴스'는 '기가찬 LTE뉴스'로,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은 '민상토론2'로 돌아왔다. 정권이 더 이상 개별 TV 프로그램에 손을 뻗기 어려워서일까. 이외에도 <웃찾사>는 폐지됐던 코너 '내 친구는 대통령'을 다시 무대로 올렸고 <개그콘서트>는 '대통형'이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두 코너 모두 제목에서부터 분명히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풍자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이들은 실제로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세부적인 내용을 꽁트로 옮긴다.

새로 신설된 '대통형'은 국무총리(유민상)가 철없고 무식한 대통령(서태훈)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정치 풍자 코너이다. 다수의 대사가 뉴스에 등장한 보도를 빌려 정치권을 우스꽝스럽게 비판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통형'.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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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 벌써 머리 아프다. 높은 자리 올라가니까 머리가 아프네."
국무총리 "높은 데 올라가니 머리가 아프십니까? 그럴 때 먹는 약이 있습니다. 비아그라. 청와대에 한 100알 있습니다."
대통령 "이게 왜 청와대에 있냐고요. 이거 세금으로 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분명 그간 자유롭지 않았던 희극인들의 꽁트를 무대 위에서 보는 쾌감이 있지만 코너 속 풍자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가온 TV평론가는 "보도된 대사를 그대로 읊는 수준의 풍자는 시청자 입장에서 다소 안일해 보인다"고 말했다.

SBS <웃찾사>의 코너 '기가찬 LTE뉴스'도 뉴스 포맷을 빌려왔다.

앵커1 "트럼프 정부가 미국에 들어서면 이에 따라 북핵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 같습니다."
앵커2 "우리나라에 무슨 핵이 있나?"
앵커1 "그거 말고 딴 핵 있잖아요. 딴핵! 딴핵!"

 <SNL 코리아 시즌8>은 겨울왕국을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을 얼음공주 엘사에, 최순실씨를 그의 동생인 안나에 빗댔다.

은 겨울왕국을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을 얼음공주 엘사에, 최순실씨를 그의 동생인 안나에 빗댔다. ⓒ tvN


이가온 평론가는 이어 "코미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최근 JTBC <말하는 대로>에 유병재가 나왔다"고 언급하며 "유병재는 최순실 등의 이름이나 사건을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이를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유병재가 현 시국을 이야기하고 있구나'를 알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 번 더 비틀어 보여주는 풍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성·한부모가정·유방암 환자 비하 논란... 문제 여전해

희극인들만큼 현 시국에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최근 대중들로부터 두 가지 요구를 한꺼번에 받고 있다. 하나는 '용감하고 시원한' 정치 풍자를 보고 싶다는 주문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의 소수자를 향한 희화화를 멈춰달라는 요구다.

외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전자는 정치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나 후자의 요구는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장동민은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한부모가정의 아이를 따돌리는 듯한 내용의 꽁트를 내놓아 큰 논란을 낳았다. 이후 그는 <코미디빅리그>에서 하차했고, 해당 프로그램은 방심위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비판적 꽁트는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변함없이 지속됐다.

 정이랑이 선보인 '김앵란' 캐릭터는 원래 '김영란법'의 내용을 담으려던 의도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정이랑이 선보인 '김앵란' 캐릭터는 원래 '김영란법'의 내용을 담으려던 의도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 tvN


tvN <SNL코리아 시즌8> (아래 <SNL8>)의 크루 정이랑은 지난 3일 방송에서 엄앵란의 유방암 수술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SNL8> 제작진과 정이랑은 인터넷 상에서 배우 엄앵란과 대중들에 사과했다.

<SNL8>을 시작하며 "제대로 된 풍자를 해보겠다'며 '몰카 촬영'이나 최순실 패러디 같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던 제작진의 각오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정이랑이 시즌8 시작과 함께 들고 나온 캐릭터인 김앵란은 김영란 법을 만든 김영란을 캐릭터화한 것이다. 여기에 배우 엄앵란의 목소리와 그가 자주 하는 말을 모방해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김영란법과 전혀 상관 없는 코너인 '불후의 명곡'에 나온 캐릭터 김앵란은 김영란법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결국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 김앵란이라는 캐릭터는, 풍자라는 시도가 사회적 약자 희화화로 미끄러져 내려온 대표적인 경우였다.

한편, <개그콘서트> 또한 '대통형'과 '민상토론2'로 풍자 코너를 보여주고 있지만 기존의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기댄 코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 코너 '빼박캔트'가 보여주는 여성의 이미지는 결코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KBS <개그콘서트> 코너 '빼박캔트'가 보여주는 여성의 이미지는 결코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 KBS


지난 7월부터 방송됐던 코너 '빼박캔트'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를 담고 있다. 신경질적이고 배려가 없으며 남자친구(김장군)에게 걸핏하면 때리고 꼬집는 등 폭력까지 행사하는 여자친구(박소라)를 두고 남자친구는 매번 "정신 바짝 차리자!"고 말한다. 이 코너는 '여성이 감정적' 그리고 그 여성 밑에서 '수난 당하는 남성'이라는 기존의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고 있다. 오랫동안 '빼박캔트'라는 코너에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이 코너는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 이런 패턴은 매주 장소와 상황만 바뀌며 반복하며 기존의 통념을 고착화한다.

'풍자를 허'하고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지 말라'는 이 두 가지 요구는 결국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를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2017년의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과연 이 기본을 지키며 시청자들에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개그콘서트 웃찾사 SNL코리아 코미디빅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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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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