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와 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1988년도 영화 <빅>

영화 <빅>은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이 다름을 이야기한다. ⓒ 20세기폭스코리아


더운 날엔 공포영화와 스릴러 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한다. 반면, 잎이 떨어지는 시점부터는 멜로를 비롯한 따뜻한 영화들이 극장가를 지배한다. 개봉이 날씨와 계절적 요인에 좌우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날씨와 계절적 요인에 반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요새의 필자는 1980~1990년대의 미국 영화에 빠져있다. 패딩을 꺼내입고 나서부터 부쩍 그 시기의 미국 영화들이 많이 떠올랐다. 대공황 탈출 이후 안정된 경제 상황과 강한 군사력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향유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필자가 느끼기에 그 시기의 영화는 감정적 여유와 푸근함이 유난히 넘친다. 특별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반전, 자극적인 장면이 없어도 영화 자체가 풍부하다. 몰입감이 넘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을 알려주는 <나 홀로 집에> 시리즈부터 <백 투 더 퓨쳐> <포레스트 검프> <시스터 액트> 등의 영화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 <빅>(Big, 1988) 역시 마찬가지다. 예상 가능한 내용 전개에, 그다지 자극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관람자의 시선을 강탈한다.

'Big'과 'Grown up'의 차이

 톰 행크스와 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1988년도 영화 <빅>

13살 조시가 빌었던 소원이 진짜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의 주인공 조시는 13살이다. 어느 날 커지고(Big)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고, 소원을 이뤄주는 기계 졸타 앞에 서게 된다. 졸타에 소원을 빈 조시는 정말로 몸집이 커진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몸이 커졌다고 설명해 보지만, 어머니는 조시를 납치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그렇게 조시는 집에서 나오게 된다.

조시는 친구 빌리와 다시 작아지기 위해 졸타 기계를 찾으러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기계를 찾기 위해선 6주의 시간이 필요하게 됐고, 6주간의 삶을 위해 조시는 구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장난감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장난감 회사에서 조시는 두각을 나타낸다. 몸집은 크지만, 시선과 생각은 어린아이이기에, 정확한 데이터로 상품을 기획하는 폴에 제동을 건다. 그렇게 승승장구하게 된다.

몸집은 커졌지만 성장하진 않은. 크는 것과 성장하는 것, 'Big'과 'Grown up'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났다. 겉모습은 많은 돈을 벌고 회사에서 승승장구 어른이지만, 내면은 밀크셰이크와 탄산음료를 좋아하고, 음식을 먹고 아무 데나 버리는 등의 어린이로 그려진다. 체형은 어른이지만, 어른처럼(?) 성장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회사 동료 수잔과의 애정 관계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시는 성장 아닌 성장을 하게 된다.

조시와 수잔의 성장

 톰 행크스와 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1988년도 영화 <빅>

조시는 점차 어른스럽게 딱딱해지고, 수잔은 오히려 잃었던 순수성을 되찾는다. ⓒ 20세기폭스코리아


담배가 성인의 상징이었기 때문일까. 수잔은 처음 등장부터 극 중반까지 항상 담배를 태우고 있다. 파티에선 술도 마신다. 전형적인 어른의 모습이다. 하지만 수잔은 조시와 관계를 진척할수록 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수잔의 손에는 담배가 사라졌고, 조시의 어린이 같은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나이에 맞지 않는 조시의 행동을 이해하고 더 어른스럽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직장에 치여, 삶에 치여 잃었던 순수성을 조시를 통해서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이와 동시에 조시는 아동의 순수성을 잃게 된다. 커피를 마시게 되고, 친구 빌리와의 시간을 점점 줄여간다. 회사의 일에 집중하게 되고, 점점 업무에 치이게 된다. 몸이 커진 후, 후드티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집을 나왔던 조시는 넥타이에 정장 차림의 모습으로 극의 후반을 달려간다. 수잔과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일이 친구보다 중요해?"

조시가 어른 생활에 동기화될수록 친구 빌리는 존재감이 작아졌다. 6주가 흐른 후 빌리는 졸타의 장소가 담겨있는 편지를 받게 되고 이를 조시에게 알리러 조시를 찾아간다. 하지만 조시는 바쁜 업무에 빌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거기서 빌리는 "일이 친구보다 중요해?"라고 말한다. 조시는 여기서 고민을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한다.

직업과 노동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러한 직업을 갖고 노동을 하는지', '자신의 가족과 주변 친구들, 지인보다 그것들이 중요한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빌리의 대사였다. 몸집이 커진 조시가 사고(思考)까지 어른이 되어 가는, 외형적 크기가 인간 개인의 성장 아닌 성장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압축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어른의 의미가 순수성의 결여가 아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톰 행크스와 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1988년도 영화 <빅>

톰 행크스와 엘리자베스 퍼킨스 주연의 1988년도 영화 <빅> 포스터. 지금 다시 봐도 그 감동이 크다. ⓒ 20세기폭스코리아



톰 행크스 미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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