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가 지긋지긋하던 9연패의 터널에서 탈출했다.

김종민 감독이 이끄는 경북 김천 도로공사 하이패스는 11일 화성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5-15, 26-28, 25-17, 28-30, 15-10)로 승리를 거뒀다. 도로공사는 9연패의 늪에서 벗어났고 그 상대가 이번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기업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기쁨은 더욱 컸다.

이날 도로공사는 5세트에서 맹활약하며 팀 내 최다인 22득점을 올린 배유나를 비롯해 주전 선수들이 모두 고른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이효희 세터를 제외한 5명의 공격수가 모두 두 자리수 득점을 올렸다. 특히 최근 도로공사에서는 매 경기마다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전새얀의 활약이 눈부시다.

만년 우승후보 기업은행에서 기회 얻지 못한 전새얀

 전새얀에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도로공사는 '기회의 땅'이었다.

전새얀에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도로공사는 '기회의 땅'이었다. ⓒ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대구여고 출신의 전새얀은 2014-2015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기업은행에 지명됐다. 2014년은 국가대표 쌍둥이 이재영(흥국생명)과 이다영(현대건설), 남자배구를 대표하던 거포 하종화 감독의 딸 하혜진(도로공사), 190cm의 신장을 가진 대형 센터 문명화 등이 쏟아져 나온 해로 대구여고의 에이스 전새얀은 어쩔 수 없이 5순위까지 밀려났다.

기업은행은 쌍포 김희진과 박정아, 국가대표 출신의 세터 김사니를 보유한 만년 우승후보로 평범한 신인이었던 전새얀은 쉽게 경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4-2015 시즌 주로 교체 선수로 12경기에 출전해 8득점을 올린 것이 신인 시절 전새얀의 기록 전부다. 입단 동기인 이재영이 첫 시즌부터 374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의 에이스로 떠오르는 것을 씁쓸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전새얀은 2015-2016 시즌 초반 주전 레프트 채선아의 부진을 틈타 주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 2년 차에 경기 감각도 완전치 않았던 전새얀이 치열한 주전다툼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시즌 중반부터 다시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다. 전새얀은 30경기에서 72득점을 올리며 개인기록을 조금이나마 끌어 올린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도로공사는 고민에 빠졌다. FA로 센터 배유나를 영입한 도로공사는 이에 대한 보상 선수로 레프트 황민경을 GS칼텍스에 내주게 된 것이다. 결국 도로공사는 지난 6월 기업은행에 김미연과 이고은을 내주고 전새얀과 최은지를 영입하는 2: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렇게 전새얀은 프로에 진출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새 팀으로 옮기게 됐다.

도로공사에서는 전새얀에게 운이 따랐다. 포지션 경쟁자였던 문정원과 하혜진이 차례로 부상을 당하면서 김종민 감독은 전새얀을 주전 레프트로 중용했다. 하지만 전새얀의 주전 도약과는 별개로 도로공사의 성적은 계속 추락했다. 10월27일 GS칼텍스를 상대로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둔 이후 내리 9번의 패배를 당한 것. 프로 입단 3년 만에 주전이 됐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트레이드 후 공·수에서 맹활약…작년 득점 이미 돌파

 전새얀은 최근 2경기에서 연속으로 본인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 치웠다.
ⓒ 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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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연패 기간 동안 도로공사는 외국인 선수 왕따 논란에 시달리는 등 분위기가 썩 좋지 못했지만 착실히 경험을 쌓은 전새얀은 점점 경기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전새얀은 지난 7일 흥국생명전에서 팀 내에서 가장 높은 공격 점유율(26.4%)을 기록하며 20득점을 올렸다. 비록 도로공사는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지만 전새얀의 활약 덕분에 선두를 다투는 흥국생명과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새얀은 11일 기업은행전에서 21득점을 폭발시키며 자신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4일 만에 경신했다. 특히 공격 성공률이 무려 48.8%에 달할 정도로 순도 높은 공격력을 과시했다. 도로공사는 전새얀의 기대를 뛰어넘는 맹활약에 힘입어 기업은행을 3-2로 꺾고 길었던 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새얀의 가치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빛난다. 전새얀은 이날 19개의 디그(스파이크를 받아내는 수비)를 걷어내며 기업은행의 공격수를 허탈하게 만들었고 서브리시브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리시브 성공률도 54.4%로 매우 훌륭했다. 이날만큼은 여자부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로 꼽히는 이재영이나 이소영(GS칼텍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공수겸장의 활약이었다.

최근 2경기에서 41득점을 적립한 전새얀은 이번 시즌 12경기에 출전해 32세트에서 76득점을 올리고 있다. 아직 경기당 6.3득점으로 아주 돋보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전새얀은 이미 작년에 30경기 95세트 동안 기록했던 72득점을 넘어섰다. 3라운드가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미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도로공사로서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전새얀과 함께 레프트로 나서는 고예림의 기량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예림은 이번 시즌 후위 공격 1위(46.7%), 퀵오픈 9위(41.2%), 리시브 6위(세트당 2.62개)에 오르며 전새얀과 마찬가지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배구 경기에서 두 주전 레프트의 기량이 비슷하면 팀전력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시즌 3승10패, 승점 11점에 불과한 도로공사는 여전히 6개 구단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8일의 휴식을 앞두고 9연패의 사슬을 끊었다는 점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그리고 도로공사의 투혼 그 중심에는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활약으로 이적 첫 해 만에 팀의 복덩이로 자리매김한 전새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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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전새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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