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방송된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박준영 변호사와 방송인 유병재.

16일 방송된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박준영 변호사와 방송인 유병재. ⓒ JTBC


곽정은 작가는 아동 성추행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치인 이준석은 "32살 이준석을 아느냐"고 물었다. 샤이니 키의 꿈에 대한 이야기는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영화 <밀정>의 허성태 배우나 <소수의견>을 쓴 손아람 작가 역시 두고두고 회자됐다.

<마녀사냥>을 JTBC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던 정효민 PD는 "버스킹이란 소재가 차별점"이라 공언한 바 있다. '거리에서 만난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말로 하는 버스킹'을 표방한 JTBC <말하는 대로>는 분명 차별화에 성공했다. 비단 연예인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 정치인, 방송인 등 각 분야 셀러브리티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형식은 분명 새롭다.

편집도 유려하다.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에 무척이나 가까워 보인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이나 유투브를 통해 2~3분여의 짧은 영상을 통해 젊은 시청자들에게 소구하기 안성맞춤이다. 집회 현장의 시민 발언대나 거리 토크 콘서트에 <마녀사냥>의 현장 연결코너를 덧씌운 듯 한 형식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은 물론 '어떤'이가 '무슨' 화두를 꺼내느냐가 관건일 터다. 그래서 더 16일 방송된 <말하는 대로>는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공개돼 100만 뷰를 찍었다는 유병재의 티저 영상은 둘째치고, 어지러운 현 시국을 두고 '스탠딩 코미디'를 펼친 멀티 플레이어 유병재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라는 출연진의 조합이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시국풍자 영역까지 넘보는 <말하는 대로>와 유병재

 16일 방송된 <말하는 대로>에서 시국풍자를 선보인 유병재. 제작진의 대통령 풍자 자막이 돋보인다.

16일 방송된 <말하는 대로>에서 시국풍자를 선보인 유병재. 제작진의 대통령 풍자 자막이 돋보인다. ⓒ JTBC


"거창한 얘기를 하러 나온 건 아니다."

사실 풍자가, 정치 이야기가 원래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매일매일 뉴스로 접하는 이야기며 조금만 둘러보면 자신의 일상과, 인생과,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야기다. 그렇기에 유병재가 자신의 조카, 어머니, 아버지를 앞세우며 사이사이 끼워 넣는 시국 관련 소재들은 깨알 같은 웃음과 조소를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최근 불거진 사건으로 그분을 불쌍해하더라. 엄마한테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를 냈다. 엄마가 더 불쌍하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누가 누굴 동정하냐고 말이다. 조금 이기적으로 살라고 사람 그렇게 함부로 동정하면 안 된다고, 그분은 우리나라 대표이고 국민들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훌륭한 분 아니냐. 누가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불쌍해하냐."

명백하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겨냥한 발언이다. 어머니와 "불쌍하다"는 표현을 들먹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들과 노년층에게 일침을 놨다고 보면 정확하다. 심지어 그는 어버이연합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한 전력도 유머의 일환으로 삼았다.

"지난 대선 당시 저희 부모님은 (기호) 1번을 그리 좋아하셨다. 아버지께 이유를 여쭤보니 지금 대통령님인 그분이 나와 같은 서강대학교를 나왔다고 좋아하신 거였다. 아들인 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생각하신 거다. 같은 이유로 얼마 전에 대학교를 자퇴했다."


역시나 같은 맥락이다. 비록 "농담이다, 성적 때문에 자퇴했다. 승마라도 배워둘 걸 그랬다"고 정유라씨를 연상시키는 부연하긴 덧붙이기는 했지만, 서강대 학생들이 대통령을 두고 "선배님 하야하세요"라고 했던 시국선언을 떠올리는 유머이기도 하다. 맥락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폭소를 터트릴 코미디가 아니지만 말이다.


유병재의 이러한 스탠딩 코미디의 소재는 다시 조카, 아니 어린 세대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앞으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젊은 층에 정치적인 환기 효과를 바라는 의도까지 읽힌다. 그중에서 이 '받아쓰기' 에피소드는 꽤 직설적이었다.

"조카가 빨래를 발이라고 썼다. 그게 아니라 '종북 좌파 빨갱이' 할 때 빨이라고 알려줬다. 또 그런대는 데인데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다'할 때 쓰는 데라고, 경제개발 5개년 할 때 개는 개헌할 때 개라고 알려줬다. '계엄령' 할 때 '계'가 아니라. '동생이 언니한테 일해라 절해라 하면 안 된다' 이건 맞다고 알려줬다. 일도 하고 절도 했으니까."

그리고, 의외의 적절한 게스트 박준영 변호사

 <말하는대로>에 출연한 박준영 변호사.

<말하는대로>에 출연한 박준영 변호사. ⓒ JTBC


<말하는 대로> 제작진은 유병재를 통해 '토크버스킹'의 영역을 풍자코미디로까지 확장했다. 기존 다채로운 소재들에서 조금 더 주제를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무한도전> 못지않은 시국 풍자 자막까지 곁들이면서 그런 의도를 자유자재로 드러냈다. "내가 이러려고…."와 같은 박 대통령 발언의 인용이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유병재에 이어 마지막을 장식한 박준영 변호사는 영리한 선택으로 보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95일여간 5억 원 이상을 후원받은 재심 전문변호사로, '수원 노숙자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최근 17년 만에 무죄 판결받은 '삼례 3인조 강도 사건'을 변호한 재심 전문 변호인이다. 그는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왜 재심이 중요한지, 사법적 차별과 인권유린이 왜 없어져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인종차별과 인권에 대해 논하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는 대로>는 시국풍자에 이어 인권과 차별, 사회구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현재까지 왕성하게 내는 박 변호사를 통해 좀 더 너른 주제와 유병재의 날 선 단어들을 중화시키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 억울함이 일어났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어떻게 해결되고 어떻게 결말지어 지는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제작진은 자막과 진행자인 유희열, 하하의 멘트를 통해 박준영 변호사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능수능란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라는 기사 속 자신에 대한 표현을 예능에서 그대로 말하는 '순수한' 변호사를 '못친소' 급이라고 놀려대는 상황이 그러하다.

마침 이 박준영 변호사가 출연한 <말하는 대로>가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직후인 17일 오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피고인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준영 변호사가 수년간 매달린 사건이자, 제작 중인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재심 전문 변호인의 활약은 물론 사법 피해자들의 아픔과 재심 제도의 활성화가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이미 일정 정도 반향을 일으킨 <말하는 대로>의 향후 성공은 어떤 게스트를 섭외하느냐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재담은 덜해도 좋다. 진심 역시 편집이나 진행자들의 응원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게스트에 대한 미화는 금물일 것이다. 16일 방송과 같이 적절한 시의성과 화제성을 담보한 인물이 어떤 화두를 던지느냐가 결국 성패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이 신선하고 트렌드에 맞는 형식을 적절히 도입한 <말하는 대로>가 <마녀사냥>과 같은 JTBC 예능의 또 다른 의외의 히트상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말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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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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