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시와 영화계의 갈등,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의 보이콧이 있었다.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용관 전 위원장,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에 대한 검찰구형, 태풍 차바로 인한 해운대 '비프빌리지' 붕괴로 예년보다 6만명의 관객이 줄어든 올해 BIFF. 그래도 영화제를 찾은 영화팬들의 발걸음과 성원은 그 어느 때 못지않게 뜨거웠던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였다.

올해는 지난 5월 열린 69회 칸영화제에서 공개 되어 호평 받았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토니 에드만>(마렌 아덴 감독), <퍼스널 쇼퍼>(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패터슨>(짐 자무쉬 감독), <루이14세의 죽음>(알베르트 세라 감독) 외에도 최근 일본 내에서 천만관객을 기록 하기도 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위플래쉬 감독의 신작 <라라랜드> 등이 상영돼 영화팬들의 주목이 쏠렸다. 라브 디아즈의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는 480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적지 않은 관객들이 해당 영화를 보러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299편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없었지만, 기자가 인상깊게 보고, 또 SNS을 통해 영화팬들이 언급한 BIFF 화제작 리스트 10편을 선정하여 정리한다.

[하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감독)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영화사 진진


올해 부산을 찾은 영화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 중 하나였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PRESS 배지를 받은 덕분에 게스트로 인정되어, 일반 관객들에 비해서 비교적 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국내 개봉이 확정된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달리, BIFF에는 영화제 기간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선택 할수밖에 없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 목수로 일했지만,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 다시 재취업교육을 받아야하는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복지제도의 허점을 고발하는 영화다. 평생 영국 노동계급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던 켄 로치의 장기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둘] <너의 이름은>(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 영화 역시 표를 정말 구하기 어려운 BIFF 최고의 화제작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지난 9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관이 집대성된 역작으로 평가받는 <너의 이름은>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 아래, 서로 몸이 뒤바뀌어버린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 아름답고 환상적인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판타지에 충실한 이야기 전개 덕분에,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장면 하나하나에 눈을 뗄 수 없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내년 1월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으며, 개봉 이후 재관람을 계획하고 있다.

[셋] <라라랜드>(다미엔 차젤레 감독)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 판씨네마(주)


지난해 "그 템포가 아니야"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신작이다. <위플래쉬>로 향후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감독으로 인정받은 덕분에, <라라랜드>는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이라는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음악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인만큼, <라라랜드>의 주제 또한 '음악'이다. 배우가 꿈인 여자와 재즈 음악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남자의 만남은 아름답지만, 그 끝이 보이기 때문에 애잔 하고도 씁쓸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을 보는듯한 환상적인 미장센과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며, 영화와 재즈에 대한 감독의 애정어린 헌사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위플래쉬>에 이어 음악과 영화의 환상적인 앙상블이 돋보이는 다미엔 차젤레의 <라라랜드>는 올 12월 극장 개봉을 통해 정식으로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이 영화 역시 개봉 이후 재관람을 계획하고 있다.)

[넷] <루이 14세의 죽음>(알베르트 세라 감독)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 ⓒ 알베르트 세라


앞서 언급한 세 영화들과 달리, <루이 14세의 죽음>은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극장 정식 개봉을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년) 출연 이후 누벨바그 아이콘으로 영화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장 피에르 레오가 극중 루이14세로 등장하여, 명연기를 펼치긴 하지만, 그가 침대에 누워 꼼짝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참고 견디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원한 앙트완 장 피에르 레오의 나이든 모습을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아직 국내 정식 수입이 논의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내년 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고, 유명 영화평론가, 기자들이 선정한 '사사로운 리스트' 상영을 기대해볼 법도 하다.

[다섯]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라브 디아즈 감독)

그래도 <루이14세의 죽음>은 2시간 상영이지만, 라브 디아즈의 <슬픈 미스터리의 자장가>는 무려 480분(8시간 상영)이다. 중간 인터미션(쉬는시간) 20분을 제외하곤 꼼짝없이 8시간을 극장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지난달, 쉬는 시간도 없이 5시간 17분 상영을 자랑하던 <해피아워>(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며칠 간격으로 2번이나 봤던 기자지만,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관람은 그야말로 고행에 가까웠다. 하지만 1896년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치고, 그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8시간의 장대한 대서사시는 일제 식민지배를 겪었고, 지금도 완전히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을 선사한다. 8시간 러닝타임이 고역이긴 하지만, 관람할 기회가 된다면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여섯] <타앙-경계의 사람들>(왕빙 감독)

왕빙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쉽게 <타앙-경계의 사람들>을 보지는 못했다. 스케줄 관계상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와 <루이 14세의 죽음>을 연속해서 보는 바람에(?) 이 영화는 놓쳐야 했다. 개막식날부터 폐막식까지 BIFF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해도, 영화제 기간 상영 영화가 300편 가까이 되는 탓에, 보고 싶은 영화를 모두 볼 수는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왕빙의 카메라는 주류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담는다. 이번 <타앙-경계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버마 북부 산악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 탕족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의 일상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나 탕족 난민들의 하루하루를 가만히 관찰하는 왕빙의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이상의 놀라운 감정을 선사한다. 왕빙의 영화는 국내 개봉이 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역시나 내년 한국영상자료원의 '사사로운 리스트' 상영을 기대해야한다.

[일곱] <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주앙페드로 로드리그쉬 감독)

올해 BIFF 상영작 중 가장 호불호가 엇갈리는 '괴작'이다. 트위터 상에는 이 영화를 본 관람객들의 '악평'이 즐비하다. 종교영화의 색채를 띄고 있지만, <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은 동성애를 다룬 퀴어 영화이다. 하지만 남자들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황당무계한 일을 겪으면서, 점점 성인 '안토니오'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험담을 보여주기도 한다. 몇 번을 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황당한 영화이지만, 요즘 한국 영화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괴짜의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지는 흥미로운 영화다.

[여덟] <사라예보의 죽음>(다니스 타노비치 감독)

올해 BIFF에서 본 영화 중, 69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마'로사>도 좋았고, 구로사와 기요시가 처음으로 프랑스 합작으로 제작한 <은판위의 여인>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두 작품을 제치고 <사라예보의 죽음>을 택한 것은 순전히 개인 취향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페르디난드 대공 서거 100주년을 맞은 사라예보 호텔 유럽을 주무대로, 1914년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에 빗대어, 호텔 내부에서 벌어지는 직원들의 파업,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알레고리적으로 그려냈다. 유럽의 모든 비극은 사라예보에서 시작되었고, 사라예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열린 6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아홉] <앙뚜>(문창용, 전진 감독)

지난 9월 열린 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티벳 불교에서 과거생에서 출가 수행자였다가 다시 인간의 몸으로 환생한 것이 증명된 사람을 일컫는 '린포체'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다소 특별한 접근법으로 '선택받은 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린 나이에 '린포체'로 임명된 앙뚜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다른 린포체들과 달리 자기만의 사원도 없고, 오히려 자신이 '린포체'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과연 자신이 진짜 린포체가 맞는지 절망감에 빠지는 어린 앙뚜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은, 그의 나이든 스승이다.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긴 했으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미생' 린포체 앙뚜와 앙뚜가 훌륭한 린포체가 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스승의 헌신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열] <꿈의 제인>(조현훈 감독)

 영화 <꿈의 제인>

영화 <꿈의 제인> ⓒ 부산국제영화제


가출 소녀 소현(이민지 분)의 시선에서 바라본, 꿈과 현실을 절묘하게 오가는 판타지 미스터리 영화다. 어디까지가 소현의 꿈이고, 현실인지 쉽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 어느 곳에도 쉽게 마음 붙일 곳 없던 소현이 그나마 의지가 되는 곳은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 분)이 이끄는 가출팸(가출 청소년 공동체)이다. 주연을 맡은 구교환, 이민지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로, 두 배우 모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배우상에 이어,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꿈의 제인>은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6회 서울프라이드영화제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꿈의 제인 너의 이름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