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니게 난리가 났다. 생쥐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실 그놈의 전모를 다 본 것은 아니다. 얼핏 쥐꼬리 같은 걸 봤을 뿐이다. "분명 쥐꼬리를 봤는데, 어디로 간 걸까?" 빗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쑤시고 뒤지던 그는 끝내 놈의 꼬랑지도 발견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한바탕의 소동, 그러나... 

 "록 해머를 좀 구해주세요." 앤디 듀프레인의 부탁을 들은 레드. 그것으로 감옥 벽을 뚫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록 해머를 좀 구해주세요." 앤디 듀프레인의 부탁을 들은 레드. 그것으로 감옥 벽을 뚫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 워너브라더스


가구도 별로 없는 안채 거실에는 쥐가 숨을 만한 곳도 별로 없다. 에어컨 뒤나 차탁 밑에나 숨을 수 있으려나, 다른 곳은 숨으려야 숨을 데도 없다. 그곳도 이미 들쑤셨는지 에어컨도 한 자나 되게 앞으로 당겨져 있고 차탁 역시 한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쥐는 흔적도 없었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들쑤시던 그는 자신이 본 게 쥐꼬리가 아니었던가 보다 하며 긴가민가 했다.

오래된 시골집인 우리 집은 쥐가 살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한겨울의 추위를 막기 위해 원래의 흙벽에 나무를 대고 단열재를 댄 후 다시 벽을 만들었으니, 벽과 벽 사이에는 제법 공간도 있다. 천장 역시 마찬가지니 쥐들이 다니기엔 문제가 될 게 없다.

봄과 여름, 그리고 초가을에는 쥐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다. 집 안에 쥐들이 먹을만한 게 별로 없으니 쥐들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이 깊어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고구마니 뭐니 하며 집 안에 먹을 걸 쌓아두니 자연 쥐들이 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장에서는 때로 쥐들의 운동회가 벌어질 때도 있다. 찍찍대며 우당탕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노라면 심란하다.

제 놈이 가봐야 어디로 가겠나. 문만 닫아두면 도망가려야 갈 수도 없으니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다. 며칠 지나면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픈 쥐가 어쩔 수 없이 나타나겠지. 그때 그놈을 잡으리라 작심한 우리는 안채 거실문을 닫아두고 사랑채로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에 쥐가 숨어들었던 안채 거실을 살펴봤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 쥐가 있기는 있었던 걸까? 그런데 책꽂이 앞 방바닥에 자잘한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지 뭔가.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책꽂이 뒤 벽을 갉아 구멍을 내고 달아난 생쥐.

책꽂이 뒤 벽을 갉아 구멍을 내고 달아난 생쥐. ⓒ 이승숙


 집 안에 들어온 생쥐가 벽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도망갔다.

집 안에 들어온 생쥐가 벽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도망갔다. ⓒ 이승숙


거실 한쪽 벽은 긴 송판으로 만든 책꽂이가 차지하고 있다. 송판 양옆에 벽돌을 쌓아 올린 다음 또 송판을 한 줄 쌓는 식으로 해서 책을 꽂아 두었다. 어젯밤에 들어온 생쥐는 수색작전을 피해 책꽂이에 숨어 있었던가 보다. 황급히 책을 뽑았더니 벽에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지 뭔가. 전기 콘센트 옆에 아기 주먹이 쑥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이구, 조막만한 쥐에게 우리가 당했다. 바닥만 살폈는데 그놈은 책 뒤에 숨어 있었던 거다.

앤디 듀플레인, 쇼생크 감옥에 갇히다

쥐를 찾는다며 빗자루며 파리채로 이리 쑤시고 저리 뒤질 때 그놈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숨도 안 쉬고 가만히 있었을 테지. 그러다가 세상이 고요해지자 살며시 동정을 살핀 후 조심조심 벽을 갉았을 거다. "빠각빠각"  온 신경을 귀에 모으고 행여 누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석고보드를 갉았을 그놈을 생각하니 영화 <쇼생크 탈출>이 떠올랐다.

은행의 고위 간부였던 '엔디 듀프레인'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아니, 그곳은 바닥이 아니라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은 그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종신형을 받았을 것 같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잔인하게 죽였으니, 종신형도 어쩌면 잘 봐준 것인지도 모른다.

감옥에서는 모든 게 다 평등해진다. 많이 배운 것도 소용없고 높은 직위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 듀프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숱한 죄수들 속의 한 사람일 뿐, 그의 재능, 즉 금융 업무에 탁월한 능력을 써먹을 길은 없었다.

 이 작은 곡갱이 겸 망치로 굴을 파서 탈출구를 만들었다.

이 작은 곡갱이 겸 망치로 굴을 파서 탈출구를 만들었다. ⓒ 워너브라더스


그러나 역시 배운 자는 달랐다. 광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감옥의 벽이 단단한 암석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치밀하고도 집요한 탈옥 계획이 시작된다.

돌을 다듬는 작은 쇠망치가 다 닳아서 뭉툭해지도록 그는 조심스럽게 벽을 파나갔다. 한쪽 끝은 날카로운 곡괭이고 다른 한쪽은 평평하고 무딘 쇠망치다. 이들은 탈출하는 데 쓰일만한 도구는 아니었다. 그 망치로 벽에 구멍을 뚫자면 한 600년은 걸릴 것 같은, 그런 작고 보잘것없는 망치였다. 

600년은 걸릴 일, 마침내 자유

쇠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이란 말은 고사성어 속에서나 있는 말이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돌을 깨고 쪼는 작은 쇠망치 하나로 어떻게 500m나 되는 굴을 팔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듀프레인은 해냈다. 탈옥은 꿈도 꿀 수 없는 조건인데도 그는 굴을 팠고, 마침내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처음 그가 인기 여배우의 포스터를 구해달라고 동료 죄수 '레드'에게 부탁할 때, 설마 그런 용도로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감옥 벽을 뚫은 구멍을 가리기 위해 뇌쇄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배우의 포스터를 붙여 놓으리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견고하기 짝이 없는 감옥, 규율을 어기면 독방에 갇히고, 심지어 간수에게 맞아서 죄수가 죽어 나가기도 하는 그곳을 탈출할 계획을 짜다니. 육백 년을 파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단단한 벽에 굴을 파서 탈출했으니, 그는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일을 실행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멕시코의 지후아타네호 해변에서 자유를 누리는 앤디 듀프레인.

멕시코의 지후아타네호 해변에서 자유를 누리는 앤디 듀프레인. ⓒ 워너브라더스


'리타 헤이워드'에서 시작한 포스터가 '마릴린 몬로'를 거쳐 '라켈 웰치'에 이르기까지 장장 2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는 그 긴 세월을 조심스레 굴을 팠고, 마침내 해냈다. 500야드(약 460m)를 파냈으니, 작은 망치 하나로 대단한 역사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축구장 길이의 5배에 이르는 냄새나고 오물이 흐르는 하수구 속을 통과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왔던 저 생쥐도 지난밤 내내 갉고 또 갉았으리라. 행여 사람의 기척이라도 나면 심장을 발발 오그라뜨리며 겁에 질려 있다가도 평온이 찾아오면 또 조심스럽게 벽을 갉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 한 몸 빠져나갈 구멍이 되었을 때 뒤도 안 보고 쏜살같이 탈출을 했을 것이다.

아가리를 딱 벌린 검은 구멍을 들여다본다. 지난밤에 생쥐가 판 구멍이다. 벽을 뚫고 도망간 생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쇼생크 감옥을 탈출한 듀프레인이 푸른 바닷가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생쥐 그놈도 살아있다는 기쁨을 누리며 돌아다닐 것이다. 놈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우리의 근심은 여전하다. 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쇼생크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영화 <쇼생크탈출> 포스터.

영화 <쇼생크탈출>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쇼생크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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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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