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코앞이다. 양극화 시대 고단하고 삭막한 삶이라지만 가족과 함께 모여 조상을 기리고 음식을 나누며 잠시라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게 명절 아니던가. 지금 이 한가위가 유난히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케이블방송 업계 1위 티브로드에서 설치, 수리 기사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조 탄압에 혈안이 된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서울과 전주에서 7개월 넘게 길거리 노숙농성을 이어왔다. 지금 두 사람은 곡기를 끊고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명절을 앞두고 밥을 굶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명절을 빼앗아가버리곤 했다. 불평등이 화두다. 한가위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기를 바라며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농성투쟁에 맘보태는 이들의 기고로 일곱 차례 연재한다.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했다.
7일 오전 7시부터 12시간 동안 국회 앞 티브로드 해고자 단식 농성장에서는 '필리버스터 연대 발언'이 이어진다. 아래 내용은 김은선 상임이사의 발언록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말] |
하루가 멀다하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나갑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에어컨 실외기를 달다가 사망했습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노동자가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패밀리 레스토랑 취사부에서 일하던 또 한명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공단에서 질소가스가 누출되어 노동자들이 사망했습니다. 수은주가 37도를 훨씬 웃도는 날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노동자들이 사망했습니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어 나가야 하겠습니까? 산재 사망사고 1위 국가(OECD 중)라는 오명을 우리는 언제쯤 벗을 수 있겠습니까?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 나갈 때, 정부와 기업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기 어느 의원회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계실 안아무개 의원 생각이 갑자기 납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로 사망한 청년 노동자의 가방에선 점심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일하다 사고를 당해서인지, 컵라면 한 개가 유품으로 나왔습니다. 그 때 그 의원은 트위터에서 무어라 했습니까?
"그 노동자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이 가슴이 아프다. 조금만 더 여유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했을 텐데." 그가 트위터에 떡하니 쓴 말입니다. 이게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여유가 없는 사람은 위험한 일을 해도 되는 것입니까?
왜 스크린도어를 지하철 차량이 운행하는 시간대에 고쳐야만 하는 것입니까? 안전조치를 취하고, 지하철 차량이 운행하지 않는 시간에 고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입니까?
또한 서울메트로 규정에는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에 2인 1조가 투입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지만, 그 청년 노동자가 고용되었던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서는 적정 인력을 고용하지 않아 혼자서 일하더라도 업무를 다하지 못할 만큼 많은 업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점심도 컵라면으로 때워가며 일했겠습니까? 더구나 비용을 절감하고자 고등학교 재학중인 현장실습생으로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채워 왔던 것입니다. 또한 업체 운영이 불투명했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번 구의역 참사는 여기 이 자리에 있는 티브로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지와 너무도 유사한 처지에 놓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준 예로써 근본적인 대책과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부분임에도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의 발언은 극히 위험스럽고 개탄스러운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보고도 못 본 채 하는 것인지, 정말 안 보이는 것인지 직접 묻고 싶을 뿐입니다.
죽어가는 노동자가 정말 안 보이십니까?
노동자들의 일하는 조건과 사회의 안전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하다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정부와 기업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학생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처럼 노동자를 부리는 제왕이 되어 일회용 취급하면서 노동자야 죽던 말던 자신의 부와 권력을 상승시키는 하나의 부속품 취급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의 망언처럼 노동자들이 개돼지로 보이는 것 아닙니까?
수십 년을 태광 티브로드 옷만 입고 일해 왔습니다. 케이블 설치기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때로는 동네 홍반장처럼 고객집 못도 박아주고, 이삿짐도 날라주면 그렇게 일해 왔습니다. 인터넷 설치하러 방문한 고객집에 어려움이 있을 때 발 벗고 나서며 짬짬이 도와주기도 하면서 일해왔습니다.
휴일도 주말도 없이 일해왔습니다. 눈이 오는 날도 아무런 장비 없이 전봇대를 올라갔고, 비가 오는 날도 수십층 아파트 옥상에서 오늘은 죽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일해 왔습니다. 때로는 주택가 담장에 처진 철조망도 건넜고, 주택과 주택사이를 마치스파이더맨처럼 건너 뛰어 가며 일해 왔습니다. 그렇게 일한 직장에서 해고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노동조합 만들고 처음으로 명절 상여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몇 푼 안 되는 떡값 좀 받나 보다 했는데 덜컥 업체가 바뀌어서 해고가 된 것입니다.
간접고용이라는 나쁜 제도가 수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해 온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서로가 진짜 사장이 아니라며 발뺌 하면서 길거리로 내몬 것입니다. 그렇게 민족 대명절인 설을 앞두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이제 추석을 앞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노동자들이 무엇을 잘 못했습니까? 이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멀리 전주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또한 국회의원들 만나서 자신들이 왜 해고가 되었는지 묻고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며칠째 길거리에서 먹고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선택했습니까? 간접고용이라는 제도를 이들이 원해서 만들었습니까? 이들에게 물어나 보았습니까? 노동자들을 오로지 수단화하며 자기 자본의 배만 불린 결과 아닙니까? 이들의 가족은 또 무슨 잘못입니까? 휴일에 아빠 얼굴 못 본 죄, 주말에 아빠랑 놀이공원 한번 못가본 죄, 아빠랑 저녁때 밥 한끼 따뜻하게 못 나누어 본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또한 7개월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농성장으로 나가는 아빠를 가슴앓이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어떻겠습니까? 짐작이나 해 보셨습니까? 하루 하루 일터가 아닌 농성장으로 나가는 가장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을, 아내의 심정을 짐작이나 하시나 말입니다. 이 노동자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죽기를 각오한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기댈 언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이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국회 앞으로 왔습니다. 그간 10일 사이에 제가 대여섯 번은 왔나봅니다. 그러나 이 앞에서 곡기를 끊고 단식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찾아오는 국회의원 거의 못 보았습니다.
분명히 국회의원들은 업무를 보러 이 앞을 매일 드나들 터인데도, 이 노동자들이 도대체 왜 길거리에서 수십일 단식하며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 둔 탓인지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이 눈에 보이기는 하네요. 그들의 이야기는 들어 주겠죠? 우리도 선물을 들고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야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것입니까?
티브로드가 계열사로 소속된 태광그룹의 오너가 이호진 전 회장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부당한 내부 거래 등으로 지난 2012년 2월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그는 감옥에 있어야 함에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병보석이 뭡니까? 나 지금 아파서 감옥에 있으면 죽을 것 같으니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죽을 정도로 아파서 풀려난 사람이 병원에 누워 있지 않고 가족과 강남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렌트카를 타고 강남 일대 번화가를 오갔다고 합니다. (이 전 회장 측은 지난 4월 제기된 의혹에 대해 불가피한 사유로 비지정 병원을 다닌 건 사실이지만 외식이나 번화가 출입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함 - 편집자말)
이게 말이 됩니까? 하루 하루 생계가 다급한 노동자 수십 명은 길거리에서 이제나 저제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은 그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풀려나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말입니다.
정의가 살아 있다면, 높으신 분들이 자주 말씀하시는 것처럼 정의 사회로 만들려면, 죄를 지은 사람은 감옥으로 가고, 노동자들은 일터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고 노동자들께 드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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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 해고 노동자분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얼마나 참담하십니까? 힘내시라는 말씀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여러분의 투쟁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이곳 농성장에서 문화제를 대신에 영화제를 할 때, '파업전야'를 상영했었습니다. 198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수십년 전 상황이지만 노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싸우고, 탄압하는 과정은 2016년 오늘과 동일하더군요.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고 용역깡패에 맞서 싸우고 처참하게 끌려 나오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동료 노동자들이 새롭게 무기를 들고 기계를 멈추고 뛰어 나오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한편 감격스러웠습니다.
오늘 태광 티브로드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그림은 수십년 전 그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길을 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노동자들도 자신의 행동에 반신반의 했습니다. 불안해했습니다. 사회가 바뀔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용역 깡패에 맞아 거의 초죽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도했던 몇몇 노동자들이 해고가 되고, 구사대에 막혀 정든 공장에 가지 못할 때, 지켜만 보던 동료 노동자들에게 배신감도 느꼈더랬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토록 친했던 노동자들이 구사대가 되어 노동조합과 반목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투쟁한 노동자들 곁에 무관심한 척 지나가던 동료 노동자들이 함께 하던 것처럼, 지금 태광 티브로드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러분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처럼 오늘 우리의 투쟁은, 여러분의 투쟁은,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영향을 미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태광 티브로드 자본에 더 이상 노동자를 탄압하는 정책을 만들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건강한 노동자로 성장시키고, 지역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과 우리 동네 케이블 기사들의 일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공유할 것이며, 조직하겠습니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악질 자본 태광이 동네 곳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지역주민들과 함께 태광 티브로드 압박 작업에 함께 하겠습니다.
국회 앞으로 온 지 8일째가 되면서 점점 시민사회단체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7일)은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필리버스터가 진행됩니다. 내일은 51명의 해고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모아 51인 동조단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수많은 분들이 비록 국회 앞으로 달려오시지는 못했지만 티브로드 해고노동자들을 일터로 복직시키기 위한 투쟁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나를 믿고, 동지를 믿으며 묵묵히 한 발 한 발 지금까지 투쟁해 오신 것처럼 싸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옆에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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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브로드 단식 농성 기획 기사 모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단법인 희망씨 상임이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