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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 우리 사회를 강타한 '마음 아픈 일'이 있다면, 소위 '깔창 생리대'소식이다. 여중생이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 신발깔창이나 일반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해왔다는 일이다. 이런 일을 뉴스로 접한 후, 누구나 마음 아파할 순 있지만,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다. 돈을 내기도 어렵지만 어떻게 전해주어야 할지도 막막해서 더 어렵다.

하지만, 지난 9월 1일 기자가 만난 안성시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행동을 했고, 3달째 안성여고 학생 48명에게, 꾸준히 생리대를 지원해오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반인숙(안성시민 중 담당자)씨의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젊은 아빠들이 생각보다 많이 참여해 놀랐다"

안성에 사는 두 자녀의 엄마인 반인숙씨. 그녀의 사무실에서 "시민들이 이렇게 참여하는 걸 보면서, 아직 세상이 살만하구나를 실감했다"며 웃는다.
▲ 반인숙씨 안성에 사는 두 자녀의 엄마인 반인숙씨. 그녀의 사무실에서 "시민들이 이렇게 참여하는 걸 보면서, 아직 세상이 살만하구나를 실감했다"며 웃는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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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
"뉴스에서 '깔창생리대' 소식을 접하고, 이 일을 먼저 제안한 사람은, 안성 숭인동에 사는 두 자녀의 엄마이자 경기도의원인 김보라씨다. 김보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학교에서 생리대를 마련해 비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학교보건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그 법이 시행되려면, 적어도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동안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를 시민들이 해결해주자'며 이 프로젝트를 네이버 밴드에 올렸다. 그걸 공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둘 참여하게 됐다."

- 몇 명의 시민이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현재는 40여 명의 안성시민이 십시일반 모금에 참여해, 7월부터 매월 48명(1인당 1만 원씩)의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다. 안성지역 시민단체(안성시민연대) 이름으로 통장(기부금 영수증 처리가 되는 통장)을 내고, 내가 담당자가 되어, 매월 생리대를 구매하여, 48명의 여학생에게 보내고 있다."

- 참여한 시민의 남녀비율과 연령대는?
"남녀비율은 반반이다(여성비율이 많을 거라 짐작한 기자는 이 부분에서 적잖이 놀랐다). 신세대 아빠들이 동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연령대는 주로 40~50대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도 있다. 모두 부모의 심정으로 이일에 동참하고 있는 듯하다. 나 또한 대학생(딸과 아들) 자녀를 둔 부모다." 

- 대상자를 찾기 어려웠을 텐데?
"안성여고에 문의했더니, 안성여고 보건실에서 대상소녀들을 조사해 찾아줬다. 한 학교에서도 이렇게 많을 줄 몰랐지만, 이 인원도 다가 아니라는데 놀랐다."

- 남자인 내가 몰라서 그러는데, 1만 원이면 가능한가?
"요즘 마트에서 생리대 30개입이 7000원~10000원 정도다. 달거리를 하면, 하루 6~7개가 사용되고, 많게는 10개가 사용되기도 한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다."

-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있는가?
"없다. 이 일의 시작이 지역 도의원의 마음속이었고, 뜻을 같이한 시민들이 십시일반 보탰고,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통장을 개설했고, 시민 중 한 사람인 내가 담당하여 일을 해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일이 아니니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 이 일을 하면서 당신의 마음이 달라진 게 있는가?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땐, 설마 얼마 안 되는 그 돈이 없어서 못했을까 싶었다. 다음엔 그저 안타까웠다. 막상 이일을 시작하면서, 대상소녀들이 생리대를 편하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민감한 생리대문제와 소녀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대상자에게 전해주는 게 어려웠다. 아하! 이래서 소녀들이 생리대문제가 생기면 '속앓이'를 하는구나 싶었다. 지금은 생리대를 전해주는 것보다, 소녀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전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 그렇다면 당신의 '복지와 봉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는가?
"그렇다. 복지도 봉사도 베푸는 자의 입장이 아닌, 대상자의 입장에서 해야겠구나, 무조건 베푼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나의 위안을 삼으려고 봉사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 이 일을 추진하면서 보람은?
"이렇게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을 내어 함께 하시는 시민 분들이 많아서,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만하구나 싶었다."

-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안성여고에도 대상자가 많지만, 안성관내 학교가 좀 많은가. 여러분들도 많이 동참하시면, 좀 더 많은 소녀들에게 생리대가 돌아갈 것이다. 많은 후원 부탁드린다."


태그:#생리대, #깔창생리대, #생리대문제, #김보라의원,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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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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