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퀄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과 유사하다.

<이퀄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과 유사하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개인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채 인류의 생산 효율성과 안정적 존속만을 추구하는 사회 '선진국'. 과학 저널 기업에서 일하는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 분)는 언제부턴가 조금씩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병원을 찾는다. 그는 SOS(감정 통제 오류, Switch-on-Syndrome) 1기 판정을 받고, 동료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 또한 자신처럼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숨기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사일러스와 니아는 점점 가까워져 남몰래 데이트를 즐기는 비밀 연인이 되지만, 주위의 감시가 조여오면서 결국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화 <이퀄스>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먼 미래의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로 옮겨 놓은 듯한 이야기다. 두 남녀를 제약하는 현실의 장벽은 너무나도 높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벽 덕분에 이들의 사랑은 더욱 굳건해진다. 사일러스와 니아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저 '둘만이 감정을 느끼니까'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로맨스의 기원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관객을 대한다. 대신 영화는 커져가는 이들의 사랑에 끊임없이 불안감을 주입하며 두 사람을 낭떠러지 끝까지 몰아세운다. 그렇게 <이퀄스>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연인의 태도'에 집중한다.

 <이퀄스>의 미래 디스토피아는 그저 소비될 뿐이다.

<이퀄스>의 미래 디스토피아는 그저 소비될 뿐이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초반부,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선진국'의 건물들과 하나같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SF 영화 <아일랜드>(2005, 마이클 베이 감독)가 떠오른다. 감정을 통제하고 여기서 일탈하는 구성원을 격리해 비밀리에 처분(?)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아일랜드>의 남녀 주인공이 스펙터클한 반전 속에서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투사로 변모했다면, <이퀄스>의 사일러스와 니아는 그저 내내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나갈 따름이다.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고 무표정한 <이퀄스>의 세계가 폭넓게 다뤄지지 못하고 로맨스를 부각하는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건 그래서다. "자신도 감시하라"며 극단적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선진국의 방침은 '인류의 안정적인 성장'이란 대명제를 빼면 달리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전사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보니 '감정이 억압된 사회' 자체가 다소 억지스럽게 다가오고, '결함인'들이 격리되는 보호 감호소, 섹스 없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의무 임신' 등 장치들도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두 주인공의 비밀 연애가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꽤 오랫동안 수월하게 지속되고, 이들을 감시하는 '안전부'조차 딱히 긴장감을 자아내지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전개는 서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로맨스 장르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의 '자원 낭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퀄스>는 감정의 소중함에 대해 역설한다. 메시지는 나쁘지 않다.

<이퀄스>는 감정의 소중함에 대해 역설한다. 메시지는 나쁘지 않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럼에도 영화는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라는 대사와 "우주 탐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진국의 모토를 대비시키며 시사점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일러스가 동시에 니아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SOS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시험대에 오르는 두 주인공을 통해서는 "뭘 줘야 할 지도 모른 채 그냥 다 주는" 사랑이란 감정의 가치를 묻는다. 어쩌면 혼자 걷고 밥먹고 잠드는 일이 익숙해져 가는 스크린 밖 이쪽 세계에서도,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누군가라도 내심 'SOS'를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불편하고 소모적일지언정 '감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퀄스>의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는 31일 개봉.

이퀄스 크리스틴스튜어트 니콜라스홀트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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