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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
 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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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 최초로 노인들을 위한 '실버영화관'이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생겼다. 55세 이상 영화관람료는 2000원, 그 이하는 7000원으로 경제활동을 못하는 노인들도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단, 55세 이상 어르신과 자녀가 함께 오면 똑같이 2000원의 요금을 받는다. 아낀 영화비로 부모님들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라는 취지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극장에서 부가적으로 하는 사업으로는 추억더하기 카페와 허리우드 식당, 이레 이발소 등이 있다. 추억더하기 카페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 못지않게 문화를 즐길 수 있다. DJ가 신청곡을 받아 LP판으로 음악을 들려준다. 서빙하는 사람은 70대 노인이다.

사회는 자꾸 고령화되어 가는데 노인들을 위한 문화가 없는 게 현실이다. 노인들이 사기성, 미끼성 공연에 노출돼 피해자가 되는 일이 속출한다. 김은주 대표는 돈을 쫓아 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극장 개관부터 지금까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가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가장 확실한 미래가 '늙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노인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자기의 미래가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려고 하면 객석은 빈자리 없이 꽉 찬다.
 영화가 시작되려고 하면 객석은 빈자리 없이 꽉 찬다.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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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비 2000원으로는 극장 운영이 많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월세가 2000만 원이거든요. 영화비 2000원 받아서 답이 안 나와요. 옛날에는 아주 큰 적자였다면 지금은 조금 적자, 계속 적자인 상태예요. 아마 내년되면 적자를 조금 면하지 않을까 해요. 옛날엔 하루 관객이 100명, 200명 정도 오셨는데 지금은 1000명 정도 오세요. 영화관 운영하면서 집도 팔아봤고 차도 팔아봤어요. 대출도 많이 해서 금융신용도도 낮아요. 그래도 저는 '아무것도 셈하지 말고 가던 대로 가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셈하는 순간, 제가 하고 싶은 게 사라지니까요."

- 어르신들을 위해 공연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보통 어르신들을 부양해야 할 존재로 보잖아요. 어르신들이야말로 국가를 위해서 가장 많이 희생했는데 젊은 세대들은 말로만 고맙다고 해요. 그분들을 위해 진정으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뭘까? 집에서 나와야 건강을 찾거든요. 나와서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추억도 느끼는 문화가 있으면 집에 돌아와도 하루가 쓸쓸하지 않죠.

허리우드 극장에서는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연도 보여드려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추억의 연예인들, 최주봉, 전원주, 김세레나씨를 초청해서 공연하면 100% 만석이 돼요. 관객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공연하는 분들도 '내가 이 공연, 다시 하리라'하고 적은 개런티 받고도 다음에 또 오세요. 194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그해에 가장 흥했던 영화들... <벤허>, <십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카사블랑카> 등을 상영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원하는 시간대 보고 오셔서 영화 싸게 볼 수 있죠. 

제가 만든 추억더하기 카페, 허리우드 식당, 이레 이발소 같은 경우 70대 어르신들을 채용해요. 60대는 아직 다른 데 가서 일 더 하실 수 있으니까 배제하고요. 추억더하기 같은 경우 75세인 할아버지가 서빙을 해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는 서빙하다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대신 안전하게 요기하실 수 있는 잔치국수, 도시락을 드리고 있어요. 여기에는 DJ도 있어요. LP판으로 음악도 신청할 수 있어요. 어르신들이 밖에 나와서 영화도 보시고, 카페 가서 커피도 마시는 모습 보면 저에겐 그게 행복인 거죠."

- 많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하는 이 길이 옳구나 여겼던 게 관객들이 저한테 자꾸 제안들을 해요. 한 번은 되게 스트레스 쌓인 날이 있었어요. 항상 웃는 얼굴이다가 그날은 표정이 어두우니까 딱 3번 봤던 관객이 절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를 했죠.

"제가 오늘 돈 못 막으면 카드빚을 못 내서 상황이 안 좋아집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얼마에 빌린 건데?" 하시더라고요. 3000만 원이라고 말하고 근심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다녀오니까 그분이 자리에 안 계시더라고요. 한참 있다가 나타난 그분이 저에게 30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더라고요. 일 년 안에 갚아도 되니까 편하게 쓰라고... 오히려 자기가 고맙대요. '1억 원이면 못 줬을 수도 있는데 3000만 원이라서 다행'이라고요. 그 돈은 몇 개월 있다가 다 갚았어요. 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 어르신들의 문화를 위해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요?
"저는 돈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지자체가 협조해서 그 지역 어르신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와줘야겠다고 열린 마음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공연 한 번 할 때 500만 원이 든다면 전 다 달라고 안 해요. 그럼 저의 노력이 없어지거든요. 관객의 입장료가 극장의 수입원이 돼야 하니 우리는 계속 관객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성장하는 거죠. 지자체가 50% 지원해준다면, 나머지 50%는 극장의 몫입니다."

- 영화관 입구에 있는 디지털아트사진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전 제일 싫은 게 어르신들한테 죽는 날 뻔히 아는데 굳이 왜 영정사진 찍게 할까... 어르신들이 영정사진 찍자고 하면 안 찍기 뭐하대요.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 같아서 창피해서 그냥 찍는대요. 찍고 나면 몇 달 동안 우울하대요.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대신 어르신들께 옛날 추억의 사진을 찍게 하자... 영화관 들어오는 입구에 디지털아트 사진관을 만들었어요. 사진을 찍으면 디지털로 변환이 돼서 그림처럼 바뀌어요. 그건 아트라서 주름 같은 게 안 보여요."

- 기억에 남는 어르신이 있나요?
"말기 암에 걸려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던 한 어르신은 이 극장을 우연히 들렀다가 다음부터 힘을 얻어 자살할 생각을 버리고 매일 같이 찾아오세요. 또 외국으로 이민 간 어르신 중 한분은 한국에 오면 필수 코스로 실버영화관을 찾으세요. 이곳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고국의 향수를 달래줘서 힐링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이런 분들도 계세요. 부부 사이가 안 좋았던 한 노부부였는데 극장을 찾고부터 부부 사이가 좋아져서 자신들이 어디 놀러 가니깐 이 기간에는 특정 영화 틀지 말라고 부탁했었어요."

- 대표님은 자신의 노년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엄청 많이 하죠. 우리의 가장 확실한 미래는 늙는다는 거죠. 어떻게 늙을까? 늙어가고 있는 분들에게 어떻게 해줘서 같이 갈까, 이걸 생각해야 되거든요. 내 시작이 결국 나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어르신들에게 최고의 문화공간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누군간 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 누군가가 제가 돼야죠.

이 사업의 수혜자들이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이게 바로 사업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우리 노인 문화가 이렇게 재밌었네, 노년이 즐겁네 하는 것들이요.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어르신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고령사회에서 그런 것들이 중요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지금 확신하고 있어요. 제가 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 힘들어도 견딘다고 말이에요. 지금 힘든 건 경쟁력 있는 거거든요. 이 사업은 힘들기 때문에 뒤에 올 자가 없어요.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너무 불안하지도 않아요. 고령사회고 이분들이 열광하는, 진심 담긴 공연을 계속해줄 거예요. 전 계속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m.post.naver.com/snsmedia?isHome=1)> 9월호에 먼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송해, #전원주, #노인문화, #낙원동, #노인들을 위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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