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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거 큰일났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어지럽고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동행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도 비운 병 갯수를 같이 먹은 걸로 계산했거나,
남에게는 '걷기 전에 과음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자기 관리하지 못한 제 죄가 더 크지요.
부랴부랴 여객선터미널로 갑니다.



여수에서 금오도로 들어가는 길은 3개의 코스가 있습니다.
첫째. 돌산읍 신기선착장에서 금오도 여천선착장으로 가는 코스로 가장 가깝습니다.
운임이 싸지만, 여천에서 비렁길 시작점인 함구미까지 버스 타야 하는 번거로움과
여수에서 신기까지 가는 버스가 그리 많지 않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둘째, 여수 백야도 선착장에서 개도를 거쳐 함구미 선착장으로 곧장 가는 항로가 있습니다.
이것도 여수시에서 백야도 선착장까지 한참 버스 타고 가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셋째가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 함구미 선착장으로 곧장 들어가는 코스로 운임이 비싸고
운항 거리가 멀지만 여수 시내에서 가까워 번거롭지 않고 좋습니다.



우선 터미널 앞 진미식당이라는 곳에서 해물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합니다.



해물해장국은 오래 전 주문진 수산시장 건너편 북청해장국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먹어 보았는데
지금에서야 비로소 국물의 담백함과 우거지의 부드러운 맛을 알 것 같습니다..
주문진에서는 곰치국과 모둠 생선구이 때문에 해물해장국이 밀리는 모양새입니다.
돈 되는 것만 팔겠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요.



우리를 태워다 줄 페리입니다.



해는 떠오르고



수리하기 위해 어선들이 도크로 올라 왔습니다.



아침 해를 안고 달리는 어선, 오늘 만선을 기원합니다.
배를 타고 섬이나 육지 해안선을 보면 수면 위로 검게 착색된 것은 기름때일까요?
또는 다른 뭘까요? 조선 시대에도 저랬을까요?
바닷물은 육지에서 한참 나간 후에나 부유물 없이 깨끗해집니다.



새벽에 배를 타니 몇 년 전 녹동항에서 마량면 조약도 당목항로 출발하려는 배를 세워 타고
들어가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타고보니 배 안엔 나 혼자 뿐이었다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아마 도서를 운항하는 연안여객선들은 보조금을 받지요?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르게 날이 화창합니다.



함구미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정돈 잘된 작은 마을입니다.



월요일 아침이라 휴가철인데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타고 온 배는 종착지인 직포항으로 가기 위해 배를 빼고 있습니다.



'비렁길 아래 기암절경 해상유람 5000원'
비렁길은 벼랑길을 의미하는데
시원하게 바다를 보며 걸을 순 있지만 정작 기암절벽을 볼 순 없지요.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차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직포에서 백야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게 되어
가까이서 보는 건 아니지만 비렁길 산책과 유람선 관광, 1타2매를 하게 됐습니다.



비렁길 초입입니다. 비렁길 내내 윗사진처럼 표지판을 잘 세워놓았습니다.



돌이 많은 섬입니다. 둘레길을 만들며 길섶에는 이런 돌담장과 돌을 깔아놓은 오솔길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돌의 요철이 느껴져 트래킹화에 인솔(바닥창)을 하나 덧까는 게
좋을 듯합니다. 초입 가게에서 얼음 생수와 생수 하나씩 사들고 올라갑니다.



비렁길의 50% 정도는 이와 같이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어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
이날은 바람이 한 점도 없어 오히려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미역널방 근처 낚싯배



미역널방(바위)





산소, 터 한번 자알 잡았습니다.



송광사 절터 뒷산







엊저녁 술로 숨은 차오르고 진흙길에 꽂히는 햇살은 마른 먼지를 일으키는 듯하고
다행히 하나 있는 약수는 마르지 않고 물이 흐르는데 물바가지는 밑이 뚫려 있습니다.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원효대사가 드셨던 해골바가지 물이 이처럼 달았을까요?

달게 마시고 보니 그놈 기상이 우람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쪼그리고 받아먹었나? 빨아 먹었나? 바로 전 한 일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아무리 허겁지겁 고맙게 해갈을 하긴 했지만 그거 참 고약스럽습니다. 귀두(龜頭)라니...



걸어온 길



두포마을이나 직포마을 방파제와 마을 풍경이 거의 비슷하고
섬 돌출부를 한바퀴 돌면 대략 4 km입니다.





보성 득량면 강골마을에 가면 이와 같이 양반댁 사랑채 쪽에 담장 밖 빨래터와 연결되는
구멍이 있는데 이를 통해 마을에 떠도는 소식과 소문을 접할 수 있었다 합니다.
소통 창구 역할을 한 거지요.
물론 담장 밖 빨래터(소리샘)는 양반 댁에서 만들어 준 것이고요.
이런 게 쌓이면 다 빅데이터지요. 그게 별 건가요?



마침 그 담장 아래 샘이 있어 인기척에 붉은 게들이 놀라 흩어집니다.



요즘 지은 가옥 담장에도 소리통이 있군요. 불과 6 km남짓 걸었나?
마치 굴러가듯 갈증에 허걱대며 구멍가게 냉동 쇼케이스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포장지에 덮혀있는 만년설을 털어내고 깨물어 먹습니다.



그참 희한합니다.
벼랑길 그러니까 절벽 아래 바닷물까지는 한참인데 이 꼭대기에 어구창고가 있습니다.
지붕은 날아가지 않게 마닐라삼 로프로 꽁꽁 묶어두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걸 뭐라한다? 촛대바위.



이게 뭐입니까? 층층나무?



직포까지 기어와서 시킨 콩국수, 두툼한 생선구이를 시킨 손님들의
후식 빙수 대접인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주문한 콩국수.



눈꽃 산을 헤치니 콩가루와 국수 면발이 나타나더라는... 동행은 영광분이라
이걸 보고 미소를 짓길래 '오랫만에 고향 맛을 접하는 흐뭇한 미소인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천만에 만만에, 그분도 처음 접하는 듣도 보도 못한 퓨전 콩국수랍니다.

불과 10 km 남짓 걸었을 뿐인데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햇볕에 머리는 이미 반숙이
돼가려 하고 있습니다. 마침 이곳 직포에서 백야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잠시 후
12시 20분에 출발한답니다.  허겁지겁 쓸어넣고 매표소에서 신분증을 내고 표를 끊는데
직원이 큰 소리로 하시는 말씀. "한 분은 경로시네요~"
'이누무시키, 아직도 한참 며딸이나 나맜는데~~' 씩, 씩.

그거 하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나이랍시고 중도에 포기하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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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 닥다리로 가는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오도, #비렁길, #함구미, #해물해잔국, #미역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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