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순항 중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순항 중이다. 극과 극으로 갈린 평가 사이에서, 평론가와 대중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CJ엔터테인먼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화평론가는 손가락에 꼽을만하다. 이동진이라는 이름은 시네 필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하지만 국내 영화평론가가 이동진만 있는 건 아니다. 이동진이 TV에서 얼굴을 비치며 활동할 동안, 20자 평으로 명성을 쌓아온 은둔자도 존재한다. 이동진과 달리 '악명 높은' 평론가로 오해받는 박평식은 지금껏 대중에게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일반 대중들은 그를 '소금쟁이', '스노비스트(snobbism+ist)'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식이 형'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꽤 엄정한 평론가로 유명하다. 근래 이런 인식은 대중들에게까지 퍼져나가 한 영화 관객 평에서는 "평식이 형이 8점 줬다"가 베스트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것은 순전히 그의 반골 정신이 이루어낸 성과로 보였다. 시적인 20자 평들은 물론이며, 미디어에 자신의 정체를 잘 오픈하지 않으면서 청룡영화상 수상을 거부하는 자세까지. 마니아들이 좋아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많이 갖춘 평론가다. 그러나 대중 전반적으로는 박평식류의 평론가들을 깎아내리는 인식 역시 존재한다. '영화평론가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싫어한다'든가, '반 대중적인 경향을 지닌다'는 편견이다. 이 기사는 박평식 평론가를 옹호하는 데 지면을 할애할 예정이다.

평론가, 박평식

 크리스토러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는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는 당시 팬들과 평단 모두에 호평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박평식 평론가의 별점과 한줄평이 도마 위에 올랐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우선 박평식의 프로필을 보자. 그는 1950년생으로 영화평론가 중에서도 원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천재 감독이라 불렸던 하길종의 제자였던 걸로 유명하다. 현재 <씨네21>에서 20자 평론 담당자 중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예심 위원으로 활동하며 가끔 길게 쓴 평론이나 에세이도 기고한다. (그의 긴 평론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가 영화 마니아들 사이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유명세를 치른 계기는 <다크나이트> 때문이다. 당시 영화 팬들은 물론이며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평 일색이었던 <다크나이트>에 그가 준 평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7점과 함께(당시 평론가 중 최저점이었다) "동전 던지기는 진부해"라는 평을 남긴 후, 이 영화에 열광했던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영화 <다크나이트> 때 갈렸던 평가. 대체로 점수가 후했지만, 박평식의 7점이 김혜리와 함께 가장 낮은 점수였다.

영화 <다크나이트> 때 갈렸던 평가. 대체로 점수가 후했지만, 박평식의 7점이 김혜리와 함께 가장 낮은 점수였다. ⓒ 다음


그의 평이 다소 거만하다는 측과 자신만의 잣대가 분명하다는 측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의도치 않게 올라갔다. <다크나이트> 평점 논란이 끝나자마자 그가 1점을 준 작품들이라든가, 바느질하듯 한 땀씩 새긴 평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그가 10점 준 영화가 없다는 사실도 이슈로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심지어 9점을 준 영화도 10개에 불과하며 8점을 준 영화들도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박평식 평론가에게도 편향성은 존재한다. 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에 평점이 후하다는 점, 기독교 색채를 띤 영화에 평점을 대체로 잘 준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블록버스터나 신파 등 대중의 기호를 노린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평점이 짜다. 그런데도 그의 평점이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작품 그 자체가 지닌 심미적 완성도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오히려 이 점으로 호평을 받는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하다) 대중들은 보통 이 부분을 꼬집으며 박평식(을 포함한 여러 평론가)을 비판한다.

(지금은 삭제된) <대학내일> 에디터가 쓴 글이 평론가를 향한 대중의 인식을 잘 반영한다고 본다. 모든 평론가는 스노비스트이며, 그들이 지식을 지녔다는 우월감에서 대중과 평론가 사이에 권력을 수립했다는 논지의 글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코드에서 벗어나 있으며 SF영화를 볼 때 과학 상식조차 고려하지 않고 평을 쓴다고 독설했다. (이는 앨런 소칼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과학을 오용했다고 지적한 지적 사기 사건의 연장선으로도 보인다) 그는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라 말하며 평론가들을 깎아내렸다.

평식이 형은 <인천상륙작전>에 3점을 줬을 뿐인데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향한 평론가들의 평점. 전반적으로 낮게 책정된 가운데 박평식 평론가의 코멘트가 눈에 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향한 평론가들의 평점. 전반적으로 낮게 책정된 가운데 박평식 평론가의 코멘트가 눈에 띈다. ⓒ 다음


이런 인식과 일맥상통하는 틀에서 <인천상륙작전>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다. 여러 평론가들이 <인천상륙작전>을 비판했고, 박평식 역시 "겉멋 상륙, 작렬"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별 한 개 반, 10점 만점에 3점이라는 박평을 남겼다. 그리고 여러 평론가들이 누리꾼과 일부 언론의 뭇매를 맞을 때 박평식 역시 함께 욕을 먹었다.

본질은 광적인 매카시즘에 기반을 둔 반공 논리다. 문제는 평론가들이 대중과 괴리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평론가들은 모두 빨갱이다'라는 필터링조차 없는 흑백논리에서 나온다. <인천상륙작전>의 만듦새에 대한 비판은 진보 언론만이 아니라 몇몇 보수 언론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극우 단체(자유경제원)나 매체(<미디어펜>) 그리고 누리꾼들은 <씨네21>이 <한겨레> 계열사라는 사실을 빌미로 평론가들이 '좌편향적'이라 비난했다.

똑같이 6.25와 동족상잔을 다뤘지만 <고지전>과 <공동경비구역 JSA>, 후하게 치자면 <의형제>에 내려진 평을 보자.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국제시장>에 내려진 평을 비교해보자. 영화평론가들이 진영논리가 아니라, 내러티브 비평 측면에서 플롯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론가들은 작품을 자신의 방식대로 오역하는 자들이며 영화를 사람들이 보는 시선과 대조적으로 오역해야 좋은 평론가로 불릴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각자가 받아들인 바가 다른 것을 오역이라 친다면 평론가들은 독특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평론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대중은 자신들이 원하는 영화평만 평이라 믿으며 아닌 것은 지적 허영이라 믿는 셈이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는 죽었다"라고 선포한 이후, 독자가 텍스트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났다. 수용자 미학은 작품을 작가나 의도와 분리한 후, 독자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기도 했다. 현대에는 작품이 어떻게 쓰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평론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졌다. 미국의 문학 평론가인 헤럴드 블룸은 대비 비평을 선언하며 평론가의 역할을 "산문시인"이라 말했다. 즉, 작품들은 이전에 쓰인 작품들을 (자신의 식대로) 오역하며 발전해왔으며 평론은 패러다임을 직접 깨부수는 시와 달리 그 작품을 논리적으로 오역하는 "산문시"이다.

평론가들은 작품을 자신의 방식대로 오역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영화를 작품과 대조적으로 오역할수록 좋은 평론가로 변한다. 박평식의 '소금 정신'이야말로 영화에 필요한 것들이다. 평론가들은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대중들이 생각하지 않는 시선에서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평론가라는 이유 자체만으로 욕을 먹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평론가를 넘어선 평론가가 되려면, 그들을 논리적으로 공격하면 되는 법이다. 진영 논리로 그들을 몰아세우는 행위는 그들의 낭만 시인 기질을 깎아내리는 짓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순항 중이다.

<인천상륙작전>을 평론가들이 혹평한 건 이념때문이 아니다.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건 평론가가 아니라, 평론가를 공격하는 그들일지 모른다. ⓒ CJ엔터테인먼트



#박평식 #영화평론 #스노비즘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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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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