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제도'로 안착되면 그것은 힘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제도는 국민 대부분의 동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가 갖는 관성이다. 힘이 한번 집중되면 그 제도는 바뀌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되고, 그것이 관습을 낳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그렇다. '좋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이란 관습을 낳았다. '학문 탐구의 장(場)'이었던 대학이 대기업 취직을 위한 '취직의 장(場)'으로 바뀌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 취직을 위한 대학'이라는 관습을 지적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주인공 '란초'를 통해 던지는 시사점은 우리 교육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인도의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 대사 하나하나가 뇌리에 박히는 이유다.

"난 이렇게 잘나가는데, 란초는 얼마나 썩어있는지 보자"

 영화 <세 얼간이>는 이 세 가지의 묵직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 <세 얼간이>는 이 세 가지의 묵직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 필라멘트 픽쳐스


영화는 차투르가 란초의 절친한 친구 라주와 파르한을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라주와 파르한, 차투르는 주인공 란초와 함께 인도 최고의 대학 임페리얼 공대를 졸업한 인도의 수재들이다. 차투르가 라주와 파르한을 소환한 이유는 단 하나, 학창시절 늘 자신보다 높은 성적을 유지한 란초에게 면박을 주기 위해서다. 대기업에 취직해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차투르는 라주와 파르한에게 "42억짜리 집이야" "람보르기니야"라며 자신이 얻은 부를 자랑한다. 차투르가 란초에게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란초의 '교육은 취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즐기는 것이다'라는 모토 때문이다. 란초는 이런 모토를 가지고도 차투르를 항상 이겼다.

사실, 차투르는 노력파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다. 그럼에도 차투르가 란초를 못 이겼던 이유는 바로 '암기 우선의 공부'에 있다. 차투르는 모든 것을 암기했다. 이해하는 것보다 암기하는 것을 추구했다. 차투르의 단점은 스승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민낯을 보였다. 힌두어를 잘 못 하는 차투르는 도서관 사서와 연설문을 만들었다. 도서관 사서가 연설문의 단어를 설명해 주려고 하자 "상관없다. 그냥 다 외우면 된다"라고 한다. 란초가 연설문에 있는 '헌신'이라는 단어를 몰래 다른 단어로 바꿔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외우고, 결국 망신을 당한다.

란초도 노력파다. 하지만 차투르와는 다른 노력파다. 란초는 항상 생각하고,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긴다. 대학 선배가 란초의 방 앞에서 소변을 보자 전등을 뽑아 전기선을 들이민다. '염분이 있는 물은 전도체가 된다'라는 지식을 활용해 선배에게 전기충격을 선사한다. 이뿐만 아니라 '진공청소기를 이용한 분만기'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해 만드는 발전기' 등을 만들어 낸다. 배운 것을 그때그때 활용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단순 암기로만은 힘든 게 사실이다. 평소에 배운 것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이렇게 대비되는 공부방법과 생활스타일을 가진 두 학생이 훗날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어 있는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증을 놓지 못하게 했다. 사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차투르의 삶은 성공한 삶이기 때문이다.

"공학자들은 그동안 많은 걸 발명했는데, 아쉽게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기계를 못 만들었다. 그게 있었다면 이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을 텐데"

임페리얼 공대에는 란초와 비슷한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조이다. 조이는 졸업을 앞둔 시점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졸업과제에 매진하지 못한다. 그렇게 제출 기한을 놓치게 생겼다. 총장을 찾아가 사정을 한다. 하지만 총장은 그런 조이의 아버지께 전화해 "당신의 아들은 이상한 헬리콥터나 만들고 있어 이번에 졸업을 못 한다"라고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헬리콥터는 바로 최근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연구분야 중 하나인 드론이다. 좋은 기업 취직에 상관없는 것이었기에, 그 당시 드론은 상업성이 떨어지는 발명품이었기에 '이상한 헬리콥터' 취급을 받았고, 조이는 자살을 결심한다.

조이의 아버지께 직접 전화해 직언을 퍼붓는 것을 봤듯이, 임페리얼 공대의 총장은 매사에 빈틈없다. 그의 셔츠는 찍찍이, 넥타이는 똑딱이로 되어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이것은 그의 학교 운영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항상 학생들에게 '경쟁'이란 개념을 주입시키고, 2등은 기억도 하지 말라고 한다. 성적도 대자보로 써 붙여 공개한다. 학생들이 대학생활 내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란초는 조이의 자살이 이러한 학교 시스템 나아가 교육제도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총장에게 지적한다. 조이의 사인에 대해 의사들은 조이를 기관지와 경정맥 압박에 의한 사망이라고 할 것이지만, 사실 조이는 학교와 교육 시스템이 주는 정신적 압박에 의해서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것이다. 청소년을 비롯한 전 세대에서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이 많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자살'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니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

 란초는 항상 생각하고,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긴다.

란초는 항상 생각하고,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긴다. ⓒ 필라멘트 픽쳐스


란초가 항상 기계와 과학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이유는 바로 란초의 열정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란초는 자신의 사랑이 기계(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1등 자리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집에서 정해준 길을 따라 공대에 입학한 파르한에게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파르한이 대학 시절 내내 가방에 간직만 하고 붙이지 못한 편지를 헝가리로 붙인다. 그 편지는 헝가리에 있는 유명 사진작가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다.

파르한은 란초가 붙인 편지에 대해 답장을 받고, 기업 취직을 포기한다. 사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집을 찾아가 아버지를 설득한다. 파르한네 집에는 에어컨이 파르한의 방에만 있을 정도로 공학자 파르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파르한의 아버지는 아들이 유명한 공학자가 되어 성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파르한이 졸업을 앞두고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하니, 노발대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파르한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님이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파르한의 아버지가 "니가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라고 하는 장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뜨끔하게 한다.

하지만, 파르한은 아버지를 설득한다. "제가 취직을 포기하고 사진을 찍으면, 취직했을 때보다 더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겠죠. 하지만 전 더 행복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물질적인 것이 성공의 기준이 아님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임을 넌지시 던져준 것이다. 결국 파르한의 아버지는 파르한의 결심을 허락해주고, 파르한은 사진사가 된다.

남들이 하는 것 vs 하고 싶은 것

 파르한은 란초가 붙인 편지에 대해 답장을 받고, 기업 취직을 포기한다.

파르한은 란초가 붙인 편지에 대해 답장을 받고, 기업 취직을 포기한다. ⓒ 필라멘트 픽쳐스


인생은 한 번, 사람의 몸은 하나인지라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 제도권에 있는 관습을 따라 선택하면 '남들만큼은 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대학과 연봉이 높은 기업 취직. 어찌 보면 그렇게 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그것이 실패했을 때 따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선 사실 선뜻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단한 용기를 가져야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잘못된 교육제도와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의 대단한 용기, 즐기는 것이 곧 재능이 되어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 영화 <세 얼간이>는 이 세 가지의 묵직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인도 영화지만 대한민국 현실과 너무 비슷해, 우리 사회와 겹쳐서 영화를 보다 보면 러닝타임 171분이 금방 간다.

세 얼간이 교육제도 인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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