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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게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겨준 '채식주의자'
 한강에게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겨준 '채식주의자'
ⓒ 창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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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책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았다. 한국 문학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이 작품엔 한국적인 필력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심오하기도, 외설적이기도 하지만  비 일상을 써내는 방법에서 나는 한국 고유의 향기를 맡았다. 한국적인 심상이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뻤다.

채식주의자는 3편이 이어지는 단편 소설로, 하나의 장편 소설로 보아도 이상하지는 않다. 내용은 주인공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고 그에 따른 주변 사회의 반감으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육식을 강요하자 자살기도까지 하였고, 그 이후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매부의 권유로 포노그래피도 찍고 추후에 거식증까지 걸리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이야기로 그에 따른 영혜의 남편, 매부, 누이의 시각이다.

처음 남편 시점의 단편 '채식주의자' 는 영혜에게 내 자신이 이입되는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사회가 자신을 억제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을 길렀다. 그것이 좋았고, 그리 하고 싶었다. 남이 나를 어찌 보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내 주위 사람들에게 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 의지를 꺾었다. 거기서 나는 영혜에게서 공감의 선을 끊었다.

내 의지가 남에게 폐가 된다면 그 의지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에게 육식을 강요한 아버지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것을 계기로 가족이 다 모이고 5살 조카도 있는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 것은 도를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일부는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19년 쌓아온 나의 인격이 그녀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번째 단편 '몽고반점'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다루는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감정은 내가 미국 드라마 'Hannibal'을 봤을 때와 비슷했다. 미학을 추구하는 점에서 그리 느낀 것 같다.

사진가가 피사체를 사랑하듯이 매부가 영혜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침울한 1편과 3편에 비해 '몽고반점'은 굉장히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나무불꽃'은 다른 의미로 차분했다. '몽고반점'이 색채가 강하면서 차분했다면 '나무불꽃'은 우중충한 날씨가 잿빛을 연상시켰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분위기를 끌어내리는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정이 간 영혜라는 인물이 고통에 시달릴 때 나는 안타까움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한강 선생님의 시점 전환력에 대한 칭송을 하고 싶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나'였다. 주인공은 남편으로 나왔지만, 내가 감정 이입이 된 상대는 영혜였다. 그녀가 답답해 하면서 나도 답답했고, 세상은 불만스러웠다.

두 번째 '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연인'이었다. 나는 영혜에게 이성적으로 끌렸고, 나 또한 매부처럼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감정이 생겼다.

세번째 '나무불꽃'에서는 내 '아이'였다. 질환인지 무엇인지 모를, 사경을 넘나드는 영혜에 대해 나는 슬픔을 느꼈다. 그녀가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그 부분을 읽을 때 이전 시점이 전혀 간섭이 안된 그런 완벽한 시점 전환에 나는 감탄스러웠다.

나는 줄곧 1인칭 주인공 시점이 가장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된다고 생각하여 편독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각색의 시점으로 바라본 영혜는 그 누구보다도 친밀한 가상 인물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번역본이 더욱 기대된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2007)


태그:#채식주의자, #고등학생,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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