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여름 시즌 선보이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서 섹스어필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 옵션이다. 시작은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의 해안가 휴양지, 청춘 남녀들의 질펀한 파티다. 한 커플이 무리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서 섹스를 한다. 어떤 여자는 돌연 옷을 훌훌 벗어던지곤 한밤의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절정의 순간, 그들은 죽는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다. 물리고 뜯겨 피를 한껏 뿜으며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멀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스타덤에 올린 역사적 작품 <죠스>(1975)가 그랬고, 가깝게는 식인 물고기를 소재로 한 <피라냐>(2010)가 그랬다.

영화 <언더 워터> 또한 여성과 바다, 상어에 대한 이야기다. 휴가 차 멕시코에 온 미국 대학생 낸시(블레이크 라이블리 분)가 인적 드문 해변가에서 서핑을 하던 중 상어에게 공격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지극히 익숙한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시선은 앞에 말한 장르적 클리셰를 철저히 외면한다. <언더 워터>에서 여성은 쓸데없이 옷을 벗지도 않고 섹스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죽지도 않는다.

 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다시 말해, <언더 워터>는 결코 남성의 판타지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영화다. 낸시 역을 맡은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극중 낸시가 남성 캐릭터에게 의존하지 않고, 카메라 또한 남성 관객에게 의존하지 않을 뿐이다. 비키니에 래쉬가드를 입고 지퍼를 한껏 올리는 낸시의 행동들은 서핑을 위해 더할나위 없이 적확해 보인다.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 또한 노골적이지도 은근하지도 않은 채 그저 덤덤할 뿐이다. 해변까지 자신을 태워준 남자 가이드, 근처에서 서핑을 하던 두 멕시코인 청년은 그저 배경처럼 존재할 뿐. 낸시는 그저 혼자 서핑을 즐기고, 그러다가 혼자 상어와 마주한다.

상어와의 사투 속에서, 낸시는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상어에게 공격당한 뒤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래 시체를 피난처로 삼고, 이내 암초를 향해 헤엄쳐 그 위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다. 차고 있던 귀걸이로 다리의 상처를 직접 꿰메고, 리쉬(Leash, 안전을 위해 서핑보드와 발목을 연결하는 끈)를 이용해 허벅지를 질끈 묶어 지혈을 한다. 입고 있던 래쉬가드를 찢어 임시로나마 드레싱을 하는가 하면 부서진 서핑보드 조각으로 한낮 작렬하는 햇빛을 가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낸시는 그렇게 생존한다.

 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영화 <언더 워터> 속 한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후 육지를 고작 200여 미터 앞에 둔 채 죽음과 가까워져 가는 낸시의 고독은 아릿하다. 낸시는 해안가에 나타난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멀리 지나가는 배에 대고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이는 번번히 소리없는 메아리로 남는다. 이런 상황 속 자그마한 암초 위에서 그와 함께하는 건 날개 다친 갈매기 한 마리 뿐.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2013)에서 호랑이와 단둘이 남은 파이처럼, 낸시는 갈매기를 벗 삼아 삶에 대한 희망을 이어간다. 그렇게 상어에 맞서 고래 시체에서 암초로, 또 부표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낸시의 사투는 고독을 딛고 홀로 한계를 벗어나는 여성의 드라마틱한 성장기다.

<언더 워터>는 제작에 앞서 2014년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올해 최고의 시나리오'로 선정된 작품이다.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는 영화화 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제작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시나리오들을 선정한 목록. <위플래쉬>(2014)와 <스포트라이트>(2015)가 각각 2012년과 2013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2016년 7월 13일 개봉.

언더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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