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그라운드 위의 러시안 룰렛이라 불릴 정도로 냉혹한 승부차기가 펼쳐졌지만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었다. 선수들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호세 페케르만 감독이 이끌고 있는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8일 오전 9시 5분, 미국 이스트 러더퍼드에 있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8강 페루와의 맞대결에서 승부차기 끝에 4-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올랐다.

골키퍼 오스피나의 놀라운 순발력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양팀 선수들은 조금도 양보 없는 중원 싸움을 90분이 넘도록 계속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2분에 페루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코너킥 세트 피스로 만들어냈다. 크리스티안 쿠에바가 올려준 오른쪽 코너킥을 센터백 크리스티안 라모스가 솟구쳐 헤더로 골을 노렸다.

하지만 아스널 FC 소속의 콜롬비아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가 날아올라 그 공을 기막히게 쳐냈다. 대회 규정상 연장전 없이 승부차기를 곧바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페루 입장에서는 4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그리고 11미터의 냉혹한 외나무다리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거기서도 콜롬비아 골키퍼 오스피나의 순발력은 탁월했다. 콜롬비아의 세 번째 키커 다이로 모레노까지 실수 없이 성공시켜서 마지막 점수판이 '콜롬비아 3-2 페루'가 됐다.

페루의 세 번째 키커는 미겔 트라우코였는데 그의 왼발 인사이드 킥이 가운데로 날아갔을 때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는 한쪽 방향을 선택하고 뛰어올랐다. 그 순간 오스피나는 마치 최고의 골잡이들이 구사하는 아름다운 발리 슛 장면처럼 다리를 쭉 뻗어서 발끝으로 그 공을 차버렸다. 콜롬비아의 4강행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괜찮아 '트라우코', 울지 마 '쿠에바'

곧바로 보기 드문 장면이 그라운드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중앙선에서 기다리던 페루의 동료 선수들이 모두 걸어나가 고개를 숙이며 걸어오고 있는 미겔 트라우코를 마중한 것이다. 그들은 따뜻한 가슴으로 트라우코를 감싸안으며 위로했다. 관중석에서도 이 아름다운 위로의 장면을 격려하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축구장이 아름다운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어서 콜롬비아의 네 번째 키커 세바스티안 페레스의 오른발 슛이 정 가운데로 날아가 꽂혀서 점수 차이는 4-2로 벌어졌다. 페루의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부담스런 승부차기 마지막 장면이 이어졌다. 페루의 네 번째 키커는 유능한 공격형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쿠에바였다. 그의 오른발 킥은 정확도가 높아서 페루의 공격적 세트 피스를 맡길 정도였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크리스티안 쿠에바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오른발 인사이드 킥이 너무 높게 날아가 골문 위를 넘어갔다. 양팀 승부차기 다섯 번째 키커는 등장하지도 못하고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

크리스티안 쿠에바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이 다가와 위로했지만 쉽게 멈추지 않는 눈물이었다. 이 때 한쪽에서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던 콜롬비아 골키퍼 다비드 오스피나가 다가와서 쿠에바를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승리의 주역 하메스 로드리게스도 울고 관중석에서도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들은 곧 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눈밑을 닦을 수 있었다. 축구장에서 가장 냉혹하다고 하는 11미터 외나무다리 승부차기가 이렇게 따뜻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선수들과 관중들 모두 공감한 명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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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8강 결과(18일 오전 9시 5분,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이스트 러더퍼드, 미국)

★ 콜롬비아 4(승부차기)2 페루

◇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4강 대진표
콜롬비아 vs [칠레 - 멕시코 경기 승리 팀]
미국 vs [아르헨티나 - 베네수엘라 경기 승리 팀]
축구 승부차기 콜롬비아 페루 코파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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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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