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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한 故 엄명환
▲ 영정사진 리허설 때 촬영한 故 엄명환
ⓒ 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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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이미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는 것은 상당한 아픔이 따른다. 게다가 아주 따뜻한 정만 깃들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마치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시간을 부려놓고 허망하게 빠져나가 버리는 공사장 빈 리어커처럼 좌절만 처벅거리며 굴러 가야만 하는 자의 슬픔이기도 하다. 

2014년 1월 겨울, 세상 흐름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가면 갈수록 불평등과 반인권적으로 세상 가장자리로 밀려나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들, 행복한 삶의 주류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비주류로 밀려나는 정말 미치고 환장 할 시대적 아픔, 그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담아내고 그들의 희망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진작업을 위해 만들어지게 된 페이스북 그룹 사회다큐사진집단 '비주류사진관'.

명환씨와의 첫 만남은 그해 3월, 명환씨가 그룹에 가입을 하며 페이스북으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늘 꽁지머리를 하고서는 웃음만 가득한 개구장이 얼굴, 기동전사 건담시리즈 로봇을 모으는 취미, 페이스북 그룹에 간간히 포스팅 되는 그의 사진 등은 마치 만년 숲속에서 노동하는 시간보다 춤 추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의 억눌린 몸짓처럼 다가왔다.

그러던 중 2014년 8월 10일, 비주류사진관은 1박2일 일정으로 송전탑 투쟁 현장이었던 밀양 위양리 논바닥에 설치된 사랑방에서 여름 모꼬지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날 서울에서 온 몇 멤버들 속에서 명환씨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명환씨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비주류사진관 현장 사진전 1회‘밀양展’때 소속 멤버들과 기념사진
▲ 비주류사진관 비주류사진관 현장 사진전 1회‘밀양展’때 소속 멤버들과 기념사진
ⓒ 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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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명환씨는 술도 못마시고 담배도 안피우고서는 나를 말로써만 위안을 담은 밤을 건네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밀양 위양리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논 바닥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었고, 사전 리허설 촬영으로 명환씨가 앉게 되었다. 당시 난 명환씨가 생각하는 가장 명환씨 같은 얼굴 표정을 부탁했다.

저 얼굴, 길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그 하세월 동안이나 지금이나 명환씨가 풀 수 없었던 답답한 갈증을 얼굴에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숱한 바람과 다투었을 명환씨, 그러나 늘 의연하게 세상 가장 희미하고 어둑한 깊이에 두레박을 내리는 동네사람처럼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던 내 친구이기도 하다.

명환씨 1주기를 맞이하면서 나는 화사한 꽃들보다 아름다운 해 그림자보다 눈물만 진득한 세상보다도 명환씨의 환한 얼굴만 기억하련다. 그게 명환씨를 위한 나의 작은 소임이 아닌가 싶다. 편히 쉬시오. 

덧붙이는 글 | 오렌지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오렌지가 세상을 떠난 1주기에 맞춰 사진전, 추모문화제, 오렌지 인권상 시상 등을 준비하면서 오렌지를 기억하는 글을 연속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태그:#비주류사진관, #오렌지, #반올림, #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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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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