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랑 배트맨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어린 시절 순진한 궁금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슈퍼맨이랑 배트맨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어린 시절 순진한 궁금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먼저 어린 시절 기억 속 우스개 하나.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쯤 그 아이는 자신의 여섯 살 인생에서 가장 큰 궁금증들을 겨우 여덟 살인 내게 묻곤 했다.

"형, 마징가Z랑 태권V랑 싸우면 누가 이겨?"
"슈퍼맨이랑 배트맨이랑 붙으면 누가 이겨?"

동심에서 나온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해주던 형제.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건 뭔가? 그 궁금증이 동생 하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1대1로 맞붙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이야기다.

만화를 영상으로 옮기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준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레미 아이언스(알프레드 역), 밴 애플랙(배트맨 역), 헨리 카빌(슈퍼맨 역) 등 인기 배우들이 힘을 합쳤다. 거기에 천문학적 자본이 투여된 이른바 '영웅들'의 맞짱. '감독-배우-아끼지 않은 제작비'란 삼박자를 고루 갖췄기에 영화 속엔 분명 눈요깃거리만이 아닌 원작을 넘어서는 '철학적 성찰'이 담겼으리라 예상했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에는.

설득력이 없는 두 슈퍼영웅의 싸움

사실 타락하지 않는 순정한 '힘'이 있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인간 세상에선 어떤 힘도 순결할 수 없다. 고통받는 피지배자들을 향해 있던 순정한 청년의 힘. 그것이 이뤄낸 혁명이 어떻게 변질돼갔으며 그 변질이 어떤 몰락을 불렀는지를 우리는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포함한 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자들에게서 이미 확인했다.

그것이 스스로 만든 것이든 타자의 합의로 모아준 것이든, 한 인간에게 집중된 '강력한 힘'은 비극적 결말을 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추정은 인간만이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인 만화 속 '히어로'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인간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슈퍼맨. 배트맨은 그가 만약 인류에게 등을 돌린다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 고민한다.

인간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슈퍼맨. 배트맨은 그가 만약 인류에게 등을 돌린다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 고민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이러한 '힘에 관한 탐구와 성찰'을 기대한 것은 과도한 바람이었다. 영화는 그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공식만을 충실하게 따라갈 뿐이었고, 이전에 수도 없이 봐온 상상 속 슈퍼영웅들의 기상천외하고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반성 없이 답습하고 있었다.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슈퍼맨이 어느 순간 인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제거하려는 배트맨의 대사는 영화의 맥락 안에서 설득력을 획득하지 못했고, "배트맨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도 많다"는 슈퍼맨의 답변 역시 '공자 말씀'에 지나지 않기에 싱겁기 짝이 없다. 다툼의 원인이 불분명하니 싸움과 화해의 결과까지 유치한 것은 정한 이치.

기둥 줄거리가 이처럼 부실하니, 초반에 트릭처럼 깔아놓은 몇몇 장치와 암울하고 무거운 도입부 영상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적 연관성을 잃고 만다. 뿐인가. 등장하는 동독 출신의 사이코패스 악당 렉스(제시 아이젠버그 분)도 슈퍼영웅을 다룬 수많은 영화에서 수백 번은 거듭 봐온 식상한 캐릭터다.

이전과는 '무언가 다른' 슈퍼맨과 배트맨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배트맨 대 슈퍼맨>. 참담하다 불러도 좋을 그 실패가 감독의 역량 부족 탓인지, 능력 밖의 일임에도 '절대적 힘'에 관한 성찰을 보여줄 수 있다는 할리우드의 자기과신 때문이었는지 판단하는 건 오로지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뜬금없지만 반가웠던 원더우먼의 등장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40대 남성관객들을 추억에 빠뜨린 원더우먼.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40대 남성관객들을 추억에 빠뜨린 원더우먼.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마무리하며 여담 한두 개 더해보자.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 동안 영화관 속 40대 이상 남성관객들이 가장 눈을 크게 뜨고 영사막을 바라보는 건 마지막 5분이다.

유년시절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원더우먼이 슈퍼맨과 배트맨 못지않은 용기와 힘으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코흘리개 시절 추억까지 돌려준다. 복장도 그 옛날보다 훨씬 세련돼졌다.

그리고, 동생에게.

네가 38년간 간직한 해묵은 질문, "슈퍼맨과 배트맨 중 누가 더 강할까"에 대한 할리우드식 답변을 얻으려면 극장에 가봐라. 이제 내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슈퍼맨 배트맨 대 슈퍼맨 원더우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