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일, 시저>의 포스터.

영화 <헤일, 시저>의 포스터. ⓒ UPI코리아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이자 연예 산업의 한 갈래입니다. 예술가의 비전을 시청각적 매체를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예술이지만, 고액의 제작비를 저렴한 티켓 값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산업이 되어야만 하죠. 그러니 독창성과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효율적인 제작 시스템과 상업적 고려 역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영화 <헤일, 시저>의 감독 코엔 형제는 영화라는 존재가 가진 모순과 역설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듭니다. 영화의 배경으로 1950년대 초를 선택한 이유도 이 시기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마지막 영광을 누리던 시절이기 때문이죠.

주인공 에디 매닉스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중역으로, 이 황혼기의 스튜디오가 문제없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아이템 개발부터 최종 상영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 언제 어디서든 돌발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요. 예측 불가능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매닉스의 몫이죠.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메이저 영화사의 중역 에디 매닉스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메이저 영화사의 중역 에디 매닉스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UPI코리아


그런데, 그의 모습은 업계 바깥의 사람들이 보기엔 별 소득 없이 진흙탕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연꽃은 흙탕물에서 피어나는 법이죠. 이 무질서하게만 보이는 난리판 속에서 감동적인 명장면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스타가 성장하고, 명감독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합니다. 매닉스의 악전고투는 그런 식으로 보상받게 되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은 비단 50년대 할리우드에서만 벌어졌던 일은 아닙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영화 제작 현장에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편의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고려가 충돌하는 가운데 숱한 타협과 재조정을 거쳐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반드시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영화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하는 일에 비해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계속 이 일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발생하는 문제들을 처리하면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의 보람과 희열 때문입니다. 그 작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머리가 터져 나가도록 신경 쓰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빠지는 것도 마다치 않습니다.

코엔 형제가 직접 쓴 이 영화의 각본은 절묘한 균형 감각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겪는 외부 세계의 사건과 그의 내적 고민이 탄탄한 뼈대를 이루고 있고, 새롭게 밝혀지는 수수께끼들과 예상 밖의 결과들, 그리고 향수를 듬뿍 담아 풍자적으로 그려낸 50년대의 영화계 모습 등도 서로 튀지 않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연출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재현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세계적으로 익히 알려진 배우들이 그간 쌓아온 자신들의 이미지를 풍자적으로 비틀어 빚어낸 캐릭터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주요 배역 중 유일하게 신인급인 앨든 아이렌라이크 역시, 서부극 액션 배우 출신이지만 새로운 젊은 스타 역할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향수 일으키는 그때 그 영화 현장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이제는 흘러간 장르가 된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의 매력을 잘 보여 준다. 뮤지컬 스타 버트 거니 역할을 맡은 채닝 테이텀의 매력이 돋보인다.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이제는 흘러간 장르가 된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의 매력을 잘 보여 준다. 뮤지컬 스타 버트 거니 역할을 맡은 채닝 테이텀의 매력이 돋보인다. ⓒ UPI코리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르 영화들은 지금은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 사라진 스타일의 영화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TV를 통해서나 봤을 법한 그런 작품들이죠. 코엔 형제는 각 장르의 개성과 매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해 관객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불과 60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최근 10년 사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필름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코엔 형제를 포함한 몇몇 감독들의 노력으로 이 영화처럼 필름으로 촬영되는 경우가 여전히 있긴 하지만, 업계 전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완전히 없어졌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됐죠.

앞으로도 시장 상황의 변화나 급속한 기술적 발전이 계속되면, 우리가 아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영화 만들기는 그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어떤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후대에는 2010년대의 넘쳐나는 히어로 무비들을 풍자적으로 오마주 하는 영화도 나올 수 있을 테고요. 그래도 한 가지 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는 사실 말이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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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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