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싶남>속 남성은 '여성의 마음에 들어야' 높은 순위를 얻는다

<가싶남>속 남성은 '여성의 마음에 들어야' 높은 순위를 얻는다 ⓒ KBS


2014년 MBC <무한도전>에서 '홍철아 장가가자' 프로젝트가 중단된 적이 있다. 노홍철의 기준에서 여성이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냐는 이유로 거센 반발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노홍철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키가 크고, 나이가 어리며,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여성을 원했다. 이에 여성을 상품으로 본다거나 외모 지상주의라는 비판이 일며 해당 프로젝트는 결국 사과로 끝을 맺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는 면에서 노홍철이 그와 같은 여성을 선호한다고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정제되지 못한 예능 화법으로 조금 거칠게 다뤘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예능적 재미 측면에서 보자면 해당 특집은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노홍철 취향에 부합하는 여성만이 가치 있는 여성이라는 내용으로 제작됐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뭔가 불편하다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사람이 '갖고 싶은 남자다' 혹은 '완벽한 남자다'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사람이 '갖고 싶은 남자다' 혹은 '완벽한 남자다'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KBS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외모나 신체조건, 혹은 능력 등이 가지고 함부로 재단하며 비교를 하는 행위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칭송받고 그렇지 못하면 무시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던지는 행위는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그런데 여성에게 쏟아지는 시선 자체에는 문제의식이라도 있지만, 남성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도 사실이다. KBS 2TV 예능 <가지고 싶은 남자>(이하 <가싶남>>는 그런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홍철아 장가가자' 프로젝트처럼 한 개인의 취향을 부각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사실은 편파적인) 기준을 가지고 남성들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가싶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 이를테면 에릭남이나 헨리 등은 여성의 호응도가 높은 멤버들이다. 이들과 함께 외모나 능력 등이 뛰어난 일반인들도 다수 출연한다. 그들은 첫 회부터 여성들이 둘러싼 방에 들어가 그들이 쏟아내는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받는다. 그들이 시키는 일은 춤이든 노래든 해야 하며, 그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최선의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뿐 아니다. 그들은 제작진이 만든 수학문제를 풀며 증명해야 하고, 일상생활 매너를 평가받기 위해 몰래카메라 실험을 '당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측정한다는 명목에 그들은 여성의 구미에 맞는 문자 보내기 테스트를 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하는지를 평가당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에게 전제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비교다. 다른 출연자보다 더 여성을 만족하게 하는 행동을 해야 하고 적절한 대답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특권(?)을 주기 때문이다.

TV 속 <가싶남>은 외모는 물론 매너도 좋아야 하고, 여성의 심리를 잘 헤아려야 하며 요리도 잘해야 하고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런 완벽한 남자를 찾는 과정이 <가싶남>의 목적이요, 존재 이유인 것이다.

<가싶남> 아닌 <가싶녀>였다면?


 남성의 잣대로 여성이 재단 될 수 없듯, 남성도 여성의 잣대에 맞춰 재단될 수 없다.

남성의 잣대로 여성이 재단 될 수 없듯, 남성도 여성의 잣대에 맞춰 재단될 수 없다. ⓒ KBS


한 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만약 <가싶남>이 아닌 <가싶녀>였다면, 이 프로그램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설령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비난의 목소리를 피해갈 수 있었을 거라 보기 힘들다. 그간 우리 방송에서 여성을 상품화한 프로가 얼마나 많았던가.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 아닌 이상 남성 역시 함부로 단정짓고 평가받을 대상이 아니다. 

요즘 사회의 모든 것이 경쟁이라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기타 경연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특정한 능력, 이를테면 노래나 요리 같은 재능을 평가한다. 그 재능은 프로의 세계로 가기 위한 필요 요건이다. 이와 달리 타고난 외모나 성격, 혹은 개개인의 고유 특성 등을 가지고 남편과 남자친구 감으로 재는 행위는 전혀 다르다. 전자가 '실무 능력 평가'라면 후자는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 분명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취향을 강요하고 이러 이러한 사람이 '갖고 싶은 남자다' 혹은 '완벽한 남자다' 라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공개적으로 사람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것일까. 그들의 기준은 결혼정보 회사의 점수표만큼이나 사람을 단지 '상품'으로 소비하려는 비참한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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