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로리데이>의 한 장면.

영화 <글로리데이>의 한 장면. 네 명의 청년은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 필라멘트픽쳐스


흔히 철이 들었을 때 어른이 됐다고들 한다. 과연 그 철이란 무엇일까.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힘이 생긴다'는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사회구성들은 힘써 어른이 될 필요가 있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글로리데이> 속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네 명의 친구들은 불안하다. 상우(김준면 분)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군대를 택했고, 지공(류준열 분)과 두만(김희찬 분)은 부모의 바람에 따라 대학 진학을 다시 준비한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용비(지수 분)는 여전히 반항기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친구들을 이끈다.

이런 인물들에게 가장 하기 쉬운 말이 바로 철 좀 들라는 말일 것이다. 다만 영화 속 이들에게 어른들이 던지는 그 말은 의미가 좀 다르다.

우린 죽이지 않았다

 영화 <글로리데이>의 한 장면.

영화 <글로리데이>의 한 장면. 이들은 기성세대가 강요하고 유혹하는 말에 갈등하기 시작한다. ⓒ 필라멘트픽쳐스


입대를 앞둔 친구를 위해 모처럼 포항으로 여행을 떠난 네 명의 친구들. 여기까진 숱한 보통의 청소년과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어려움에 부닥친 누군가를 도우려 했고, 그로 인해 비극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93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를 지배하는 감성은 '억울함'이다. 자신들이 벌이지 않았던 일에 엮이면서 네 인물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부모에게, 공권력에게,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스무 살을 넘기며 흔히 겪을 법한 가벼운 성장통 내지는 반항에 대한 결과가 '너무도' 좋지 않다.

살인혐의라는 주홍글씨가 이들 앞에 다가왔을 무렵 어른들이 나선다. "조금만 타협하면 없었던 일이 될 거야"라는 구체적인 조언은 이들을 갈등하게 하고 고뇌하게 한다. 제목처럼 '찬란한 날'이어야 할 이들에게 2016년 현재 그 자체가 가혹한 형벌이 되는 지점이다.

"우리가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아프게 다가온다. 앞서 현실적 조언을 자녀들에게 내뱉던 극 중 부모들의 언어가 절묘하게 기성세대 혹은 우리네 선배, 동료의 말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했던 일을 "안 했다"고,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고 하라는 부류의 말을 우리가 얼마나 숱하게 들어왔던가. 솔직해져 보자. 어른들이 자주 던지는 '철 좀 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혹시 적당히 타협하고 진실에 눈감으라는 유혹이 아니었는지.

모두가 공범이다

 영화 <글로리데이>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최정열 감독 및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글로리데이>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최정열 감독 및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노기획 제공


그 조언을 받드는 순간 모두가 공범이 된다. "인생사가 다 그런 것"이라는 말이 혐오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글로리데이> 속 인물들이 갈등하는 이유는 손쉽게 체념할 수 없고, 진실에 눈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의 순수성을 이들이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마음을 품고 자라온 이들이 보이는 행동이 때로는 거칠어 보이고 말 그대로 '철없어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야구 연습을 빠지는 두만이나 재수 공부를 땡땡이치는 지공 등이 세상을 향해 대체 어떤 잘못을 했던가. 그저 부모의 욕망에 충실하지 않았을 뿐이다.

<글로리데이>는 기본적으로 청춘영화 내지는 성장영화의 골격을 지니고 있다. 인물의 내면 갈등 해소 과정이 있으며 사건 전후 각 인물이 급변하는 전형적인 흐름이다. 그런데도 신파적이거나 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는 연출의 시선이 단순히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각 청년의 내면까지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약 4개월에 걸친 오디션 기간에 최정열 감독은 각 인물에게 맞는 배우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여기에 더해 그간 언론을 통해 "내 부끄러운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말해왔다. 그의 반성은 곧 거짓에 대한 외면을 당당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 내 무수한 '어른'들의 태도에 닿아있다.

<글로리데이>는 바로 그 지점을 뼈아프게 찌른다. 동해안 해변을 내달리는 네 청년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그린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을 기억하자.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이들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해 뒤돌아있다. 이들이 우리에게 웃으며 던지는 질문 하나.

'찬란한 청춘을 지킬 것인가, 스스로 버릴 것인가?'

부모 혹은 법으로도 이들은 구조될 수 없었다. 난파된 이 땅의 청춘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사실 우리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시스템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우리 가치관의 저속함을 반성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매우 갑갑하고 우울한 영화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그렇지 않다. 각 캐릭터마다 배우들의 장기와 유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는 내내 몇 번은 미소 지을 수 있는 작품임을 덧붙인다.

영화 <글로리데이> 포스터 제공 : 필라멘트픽쳐스
배급 : 엣나인필름
제작 : 보리픽쳐스
감독 : 최정열
출연 : 지수, 김준면, 류준열, 김희찬 등
러닝타임 : 93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16년 3월 24일

영화 <글로리데이> 포스터. 무거운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그려낸 영화이다. ⓒ (주)엣나인필름



덧붙이는 글 제공 : 필라멘트픽쳐스
배급 : 엣나인필름
제작 : 보리픽쳐스
감독 : 최정열
출연 : 지수, 김준면, 류준열, 김희찬 등
러닝타임 : 93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16년 3월 24일
글로리데이 지수 류준열 김준면 김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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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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