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화장실 콩쿨>의 주인공인 아빠 상민은 3년차 기러기 아빠지만, 갑작스레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요구받는다.

애니메이션 <화장실 콩쿨>의 주인공인 아빠 상민은 3년차 기러기 아빠지만, 갑작스레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요구받는다. ⓒ 씨앗


한 남자가 있다. 그와 멀리 떨어진 타국에 그의 '토끼 같은 딸내미'와 '여우 같은 아내'가 있다. 아내는 딸의 잠재력을 믿으며 타지에서 조금 더 머무르다 오겠단다. 그러던 중 회사 본부장은 남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한다. 남자는 가족을 위해 본부장을 찾아 나선다. 이 안타까운 상황은 올해 초 개봉한 단편 애니메이션 <화장실 콩쿨> 이야기다.

전체 줄기만 본다면 조금 예스러운 풍경이기는 하다. 요즘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저성과자'라는 명분으로 해고하는 것을 정부가 권하는 사회다. 그뿐만 아니라 기러기아빠와 권고사직은 이미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졌다. 영화를 만든 이용선 감독도 처음엔 시의적절치 못한 소재를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화장실 콩쿨>을 통해 무엇보다도 '외로운 사람'을 그리고 싶었단다. 이 목표를 이룬 것만으로도 <화장실 콩쿨>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화장실 콩쿨>에는 재치가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중간중간 감독의 유머 감각이 극을 이끌어 뜻밖의 '케미'를 만들어낸다. '웃픔'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용선 감독은 올 1월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진행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내 작품의 베이스는 항상 어두운데 <화장실 콩쿨>에서 처음으로 유머 코드를 쏟아 부었다"고 밝혔다. <화장실 콩쿨>에서 이 조화가 가장 잘 녹아난 장면은 단연 추격신이다. 주인공과 본부장의 추격신은 극의 큰 줄기다. 두 사람의 갈등이 1대1 또는 선과 악의 대결로만 그려졌다면 뻔한 전개가 됐을 테지만, 감독은 본부장을 여러 상황에 놓아 다양한 관계를 설정했다. 이는 부당함을 희화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 간 딸과 아내는 유학을 연장하고 싶어하지만, 혼자서 집을 지키는 아빠 상민의 처지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미국에 간 딸과 아내는 유학을 연장하고 싶어하지만, 혼자서 집을 지키는 아빠 상민의 처지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 씨앗


본부장은 회사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는 무자비한 상사이고, 비서에게는 불륜을 저지른 나쁜 형부이며, 인턴 직원에게는 정규직 전환의 열쇠를 쥔 고위직이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본부장을 쫓는다. 이에 대응하는 본부장의 모습은 가관이다.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도 그는 내연녀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지 않는다.

감독은 해고통보를 일삼는 본부장의 나쁜 면을 강조하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따스함을 우스꽝스럽게 부각했다. '직원들에겐 냉정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지' 내지는 '해고? 아몰랑, 내 사랑이 중요해'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이런 희화화는 주인공이 놓인 상황에 대한 치명적인 웃픔을 만들어낸다. 지난 1월 23일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열린 GV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캐릭터는 한 번에 떠올랐어요. 우리 주변에서 너무 잘 보여서…. 바로 떠오른 게 참 슬펐죠."

혼자임에 익숙해진 외로운 사람(주인공)은 처음 접한 어려운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과 반려자를 거부한다. 당장 내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가 결국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갖추는 계기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끝끝내 주인공의 힘듦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그는 그 사람들 덕분에 간당간당한 삶을 지탱한다. 그래서 더욱 웃프다.

지금도 어디선가 수많은 '화장실 콩쿠르'가 열린다. 꽉 막힌 '콩쿠르'를 뻥 뚫기는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의 움직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더 솟아나길 바라기보다는, 그를 외롭게 만드는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길 바란다. '화장실 콩쿠르'를 탁 트인 공간으로, 아름다운 소리로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화장실 콩쿨>의 포스터. 이용선 감독은 작품에 웃음과 슬픔,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담았다.

<화장실 콩쿨>의 포스터. 이용선 감독은 작품에 웃음과 슬픔,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담았다. ⓒ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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