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좀 보세요. 젊은 사람들도 오를 수 없는 급경사예요. 이곳에 임도를 허가했어요"
김범구 주민대책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하천변 양쪽을 따라 150가구가 모여 있는 산자락 아래 대형 굴삭기가 서 있다. 굴삭기 방향이 산자락으로 향해 있다. 굴삭기가 길을 내려는 곳은 경사도가 거의 직각에 가깝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공사 예정구간은 직선으로 하천변을 따라 400여m에 이른다. 이미 400m 구간이 끝나는 지점은 산 중턱이 깊게 파여 있었다.
"산 위로 길이 나면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릅니다. 마을 앞산이 움푹 파여 경관도 흉물스럽게 망가질 게 뻔하고요." (곽종원 마을 이장)가파른 급경사에 임도 개설 허가한 '금산군'
마을 주민들은 최근 20여 년 사이 세 번의 큰 산사태로 하천이 범람해 마을 주민이 대피하는 피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절대 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주민들은 공사를 막기 위해 한 달째 산을 지키고 있다. 지난 2일에도 수십 명의 주민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공사를 막겠다며 길목을 지키고 있다.
주민들의 염려에도 사업주가 길을 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 위쪽으로 약 1.7km 임도 끝에 있는 야산 14만 제곱미터(약 30여만 평)의 소유주는 A씨다. A씨는 지난 2011년부터 이곳에 호두나무를 심고, 관광 농원을 조성하겠다며 마을 앞으로 문제의 사설임도(길이 1.7km, 폭 3m)를 개설하겠다고 신고했다.
금산군(군수 박동철)은 자체평가를 통해 100점 만점에 78점을 부여하고 임도개설을 승인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마을주민들은 이중 마을 앞 400m 구간을 문제 삼았다. 폭 3.5m에 달하는 기존 마을 안 도로를 쓰면 되는데 굳이 산허리를 잘라 산사태 위험을 높이는 몹쓸 임도를 내려 하느냐며 반대했다. 군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충남도 평가위원들, 만장일치로 '임도개설 불가'
그 사이 2013년, 개인이 임도를 개설하려면 임도 설치 타당성 평가를 받도록 법령이 바뀌었다. 금산군은 2014년 2월, 대학교수, 시민단체, 기술사 등으로 구성된 '충남도 임도타당성 평가위원회' 평가를 받았다. 도평가위원회는 산림경영, 산림보호 및 관리, 산림휴양자원이용, 농산촌마을 연결 필요성(배점 50점)과 경사도, 토질 등 적합성(50점) 항목에 대해 50점대의 낮은 점수가 나와 임도 개설 타당성이 없다고 판정했다.
특히 5명 위원이 만장일치로 산사태 등 재해에 취약하다며 '불가'의견을 냈다. 78점을 주고 임도개설을 허가한 금산군의 평가가 엉터리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금산군은 같은 해 3월, 도평가위원회 평가 결과에 따라 임도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그러자 사업주인 A 씨는 법이 바뀌기 전 이미 허가를 받았다며, 바뀐 법을 적용해 허가를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며 금산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0월, 대전지방법원은 사업주인 A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금산군은 패소 이후 항소를 하지 않았다.
금산군 관계자는 "행정소송의 경우 검찰의 지휘를 받아 항소 여부를 결정하는 데 검찰에서 항소 포기의견으로 지휘해 항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을주민(제 3자에 의한 재심청구)들도 재판 이후 사업주가 공사를 하지 않자 공사를 포기한 것으로 보고 항소를 하지 않아 지난해 10월,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지역 주민들 "관광 농원은 핑계...속셈은 석산 개발"
하지만 사업주는 지난해 말부터 마을 앞 공사를 재개했다. 주민들은 "사업주가 형이 확정되기만을 기다린 것"이라며 항소를 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대책위를 구성, 연일 공사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호두나무 수종 갱신이나 산삼농원 조성은 핑계일 뿐 석산으로 개발하려는 속셈이라고 보고 있다. 주민관계자는 "산림경영이나 농원조성이 목적이라면 기존 도로를 이용하면 돼 굳이 1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새 길을 낼 필요가 없다"며 "대형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오갈 도로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석산 개발을 할 수 있도록 값어치를 높여 산을 다른 사업주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사업주인 A씨는 "수종을 개량하려면 대형 트럭이 오가야 하는데 마을 안길은 좁고 위험해 새로운 도로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는 400m 급경사 구간에 대해서는 "허공에 2m 50cm 정도로 콘크리트 날개처럼 시공하고 하천변까지 옹벽을 쌓아 올릴 것"이라며 "이러면 산사태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급경사 구간에 한해 기존 도로를 사용하는 안에 대해서도 "기존도로를 넓히기 위해서는 남의 땅을 더 사야하고 마을 분들이 오고가 사고위험도 있다"며 "별도 독립된 통행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업주 "짐작만으로 반대, 난감하다"
A씨는 석산 개발 의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느냐, 차후문제"라며 "농원을 하려고 하는데 짐작만으로 반대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허공에 콘크리트로 날개를 붙이고 대규모 옹벽 공사를 하면 이게 어떻게 임도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어 "A씨의 산은 오래전부터 석산 개발을 하려는 업자들이 눈독을 들여온 곳"이라며 "A씨가 금산읍으로 가는 지방도와 접하는 곳에 있는 개인 집을 비싼 값을 들여 사들이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석산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산군 관계자는 "행정처리는 임도개설 가능 여부만을 놓고 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사업주가 이후 석산 개발을 할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석산 개발 허가신청을 해온 게 아니어서 판단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당장 산사태 위험이 있는데도 금산군이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편파 행정이고 직무유기라며 항의하고 있다.
금산군 산림정책과 관계자는 "사업주와 마을주민 간 중재를 시도해 대화가 오가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중재 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임도 개설로 인한 재해 위험성은 없는지를 점검,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