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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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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취임했다. 최 전 부총리에 이어 유 부총리도 경제 낙관론을 펴고 있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 가계부채는 무서운 속도를 자랑하며 증가하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했다.

"저금리, 주택시장 정상화 등으로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확대되는 모습이지만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유 부총리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외면했다.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과연 그럴까. 지난해 12월 발간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2014년 3분기 이후 계속 늘어나 전년 동기 대비 10.5%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3분기에만 35조 원이 늘어나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 963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 기준 1166조 원으로 203조 원(17.4%) 이상 늘어났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00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부동산 규제완화와 대출금리 하락,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른 집단대출의 증가를 꼽았다. 문제는 이를 유도한 정부의 책임이 쏙 빠져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세적 하락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겠다며 전월세 대란을 방조한 책임은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출한도 규제 완화는 수많은 국민에게 '내 집 마련의 마지막 기회'라는 은밀한 암시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가계부채의 9%를 차지하는 92조 원으로 증가했다. '전월세 난민들의 주거권'을 담보로 그토록 소원하던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곳곳에서 위험신호 보내고 있는데 정부는 자화자찬만 반복

통계에는 빠져 있는 대부업체 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도 눈여겨봐야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대부업체를 이용한 대출은 12조34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조1800억 원(10.6%) 증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회사를 3곳 이상 이용한 다중채무자도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기준 다중채무자는 344만 명, 규모는 348조 원으로 전체 가계 대출의 29%에 달한다. 또한 다른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비공식적 가계대출인 전세금도 약 370조 원이나 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사회는 한국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심지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는 한국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이라 평가했다.

물론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가계부채 종합대책'를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지난해 상반기 고정금리로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은 '안심전환대출'을 시행했다.

그 결과, 총 32조 원의 주택담보대출이 고정금리고 전환됐고, 원리금 상환 비율이 24.2% 높아졌다. 하지만 이자만 내는 대출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여전히 높아 핵심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대출원리금 상환 비율 추이(왼쪽)와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현황(오른쪽)
 대출원리금 상환 비율 추이(왼쪽)와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현황(오른쪽)
ⓒ 김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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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출 원리금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해 안심전환대출을 포기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행 첫달인 지난해 5월 72건에 불과했던 중도상환 건수는 점차 증가해 지난해 10월엔 1850건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중도상환 금액도 같은 기간 53억 원에서 4890억 원(누적기준)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3697건, 전체 상환 규모의 58.98%가 소득 1~3분위에 속하는 저소득층에 집중돼 있었다.

안심전환대출이 가계부채 문제를 일정 부분 개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소득 중산층과 정부 관료들만 안심하게 만든 대출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에 이어 유 부총리도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가계부채 규모는 늘었지만 질적 구조가 좋다"고 자화자찬했다.

지뢰밭이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100만 원을 벌어 24만 원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다. 실제로 코픽스(COFIX) 금리는 지난해 11월 연 1.57%, 12월 연 1.66%로 두달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가계대출자의 이중고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부가 기본적인 신뢰조차 못주고 있다는 점이다. '빚내서 집을 사라'는 정부의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만 키웠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일단 '빚을 내서 집사라'고 한 적 없다며 발뺌했고, 작년 12월 '여신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전격적으로 규제강화 방침을 내 놓았다.

그런데 유일호 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LTV와 DTI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정부의 반복되는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가 국민들에게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물론 대안은 있다. 부채와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는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 단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방법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가계부채 상환 여력이 없는 저신용·저소득·다중채무자의 신용채무는 과감히 탕감하는 등 선제적 채무조정을 통해 가계부채의 총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혼용무도의 시대,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시대다. 각종 악재 속에 반전의 기회는 있을까? 결국 사람이 문제다.

덧붙이는 글 |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로 활동중이고, the scoop에 기고했습니다.



태그:#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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