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40만 원, 5회의 촬영만으로 완성된 <피아노 레슨>으로 장편 영화에 입문한 신연식 감독. 그는 이후 300만 원의 제작비로 3시간에 달하는 긴 호흡을 내쉰 <좋은 배우>를 선보이며 영화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거칠었던 만듦새는 <페어 러브>,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 <조류 인간>을 거치며 매끈함을 더해갔다. 그리고 올해 여러 단편이 모여 장편이 흐름을 형성한 옴니버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을 내놓았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타임 투 리브(A time to leave)', '맥주 파는 아가씨', '리메이닝 타임(A remaining time)', '프랑스 영화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맥주 파는 아가씨'는 신연식 감독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에 쓴, 첫 번째 영화 시나리오라고 한다. '프랑스 영화처럼'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반면에 '타임 투 리브'와 '리메이닝 타임'은 최근에 쓴 각본이다. 세상에 나온 때가 다른 만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교집합은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배우'라는 공통점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녀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의 한 장면

▲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의 한 장면 ⓒ 콘텐츠판다


'타임 투 리브'와 '리메이닝 타임'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시간을 말하고 있다. '타임 투 리브'는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네 딸이 등장한다. '리메이닝 타임'은 연인이 우연히 만난 점쟁이에게 앞으로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타임 투 리브'가 선택적 죽음을 하는 사람을 보여주며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멈추게 하려는 모습이 담겨 있다면, '리메이닝 타임'은 타인의 말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시간을 통하여 함께 나누는 시간에 대한 담론을 유쾌하게 건넨다.

'맥주 파는 아가씨'와 '프랑스 영화처럼'은 걸그룹 씨스타에서 활동하는 가수 김다솜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맥주 파는 아가씨'에선 세상의 풍파에 찌든 인상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고, '프랑스 영화처럼'에선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인으로 분한다.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상이한 색깔의 연기를 보여주는 김다솜에게선 홍상수 영화에서 자주 만나던 한 인물의 다양한 얼굴이 겹쳐진다. 그녀는 '맥주 파는 아가씨'에선 진심을 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자였고, '프랑스 영화처럼' 속에서는 도통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 인물로 행동한다. 한 명의 배우를 놓고 감독이 벌인 흥미진진한 연기 실험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의 한 장면

▲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의 한 장면 ⓒ 콘텐츠판다


여러 감독이 참여한 가운데 하나의 소재와 목표를 잡고, 러닝타임 등에서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 만들어지는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이다. 한 명의 감독이 전체 에피소드를 구성한 <프랑스 영화처럼>은 일반적인 옴니버스 영화의 공식과 거리가 멀다. 상영시간은 어느 편은 길고, 어느 편은 엄청나게 짧다. 어떤 이야기에선 부분적으로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등의 형식을 강행했다.

'타임 투 리브'는 여러 면에 귀를 기울이는 감독의 관심사와 가족 드라마의 역량이 엿보인다. '맥주 파는 아가씨'는 초기작인 <좋은 배우>의 연극적인 면이 숨 쉬고 있다. '프랑스 영화처럼'의 "프랑스 영화처럼 살든지, 이태리 연극처럼 살든지, 러시안 소설처럼 살든지"라는 대사를 떠올린다면 기대가 한층 커진다. 두 대목이 영화로 옮겨졌기에 남은 연극의 무대를 영화로 옮기는 '이태리 연극처럼'을 만나고 싶어진다.

'리메이닝 타임'은 한국어와 영어가 마구 섞인 언어유희가 일품이다. 소이와 스티브 연의 화학 반응도 대단하지만, 점쟁이를 연기한 전경수는 예상치 못한 연기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신연식 감독이 만드는 장편 코미디 영화를 상상해보는 맛이 괜찮다. 시간과 관념이 혼란스럽게 얽힌 '프랑스 영화처럼'은 감독이 어린 시절에 영향을 받았던 카뮈 등의 정서가 배어있다. 반복되는 시간을 다루며 부조리의 현재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인간관계의 부조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지금의 신연식을 이해하게끔 한다.

불균일한 <프랑스 영화처럼>의 에피소드 속엔 신연식 감독의 과거의 관심사와 현재의 고민, 미래의 가능성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신연식의 영화 세계를 여행하는 영화팬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다.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 포스터

▲ <프랑스 영화처럼> 영화 포스터 ⓒ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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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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