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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광. 석. 그 이름만으로도 짠하고 아련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의 음악을 들으며 학업의 무게와 사춘기의 방황을 견디던 학창 시절이, 그의 울림 넘치는 목소리와 진실 묻어나는 가사 속에서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버티던 청년들이 있었음이다.

쓰러진 이들은 '일어나'를 들으며 삶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서른 즈음에'를 따라 부르며 기울어가는 청춘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부부들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눈물로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고단한 지난 시절과 삶의 분투를 위로받은 탓이다.

그렇듯 보통 사람들의 모질고 신산한 삶을 아름답고 처연한 멜로디와 가사로 길어 올려 우리네 지친 영혼의 안식처로 다가온 김광석은 20년 전 1996년 1월 6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 살아남은 자들을 슬프게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방송 활동에는 관심도 없고 숱한 소극장 공연으로 팬을 만난 사람, 그 진정성 가득한 노랫말과 담백한 목소리로 우리를 웃고 울린 사람, 죽어서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한 전설로 남은 사람이 바로 김광석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의 노래에서 고단한 삶의 위안을 얻으며, 그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그렇게 김광석은 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왜일까. 왜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일까. 단지 아름다운 노래이기 때문일까. 아니, 그의 노래가 삶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삶을 이야기하고, 그 슬픔과 아픔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랑 노래까지도 덧없는 신기루 같은 사랑 타령이 아니라 삶에 뿌리박은 이야기로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 우리 삶이 여전히 너무도 고단하기 때문에 그를 잊지 못한다. 유치원도 가기 전에 시작되는 입시라는 '지옥문'을 통과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끝없는 스펙을 쌓고 또 쌓아도 3포를 넘어 이제 5포세대로 불리며 알바와 비정규직의 '지옥도'를 따라가는 운명 앞에 선 작금의 청년 학생들도, 갈수록 도를 더하는 노동유연화의 광폭한 흐름 속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이라는 '지옥선'을 울며 겨자 먹기로 저어가고 있는 중년들도, 일생을 백 미터 달리기처럼 질주하자 노인 빈곤율 50%라는 '지옥불'이 생의 종착지로 기다리고 있는 장년과 노년들도, 그 모두에게 김광석의 노래는 여전히 위로인 탓이다.

이 악물고 살아낸 그 세월이 다름 아닌 '세월호'가 되어 가라앉고 있음을 목도하며 온갖 '지옥들'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광석의 진솔한 삶의 노래가 아직도 생생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이다. 다름 아닌 '헬 조선'이 우리 삶의 터전이기에 더더욱 광석의 노래는 우리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그는 늘 있었지만, 이제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철학으로! 익숙한 노래에 철학의 옷이 입혀졌다. 아니, 노래가 철학의 안내자 역할을 하며 대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하고 이끄는 화두가 되었다. 애초부터 그가 삶을 노래하는 철학자였던 탓일까.

11명의 서양 사상가와 만난 김광석의 노래

<김광석과 철학하기> 책표지.
 <김광석과 철학하기> 책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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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철학자 김광식 교수가 쓴 <김광석과 철학하기>(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에서 철학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온 것이다. 내친 김에 그는 역사의 대철학자들이 자기 사상을 그의 노래 속에서 설명하고 변주하는 축제를 벌인다.

이 철학 파티의 설계자인 철학자 김광식이라는 이름부터가 김광석과 일종의 착시감을 낳는다는 점은 밀어두자. 사실 김광석은 삶의 애환과 통찰을 담은 일상적이지만 깊이 있는 노랫말로 이미 '노래하는 철학자'가 아니었던가! 가객 광석을 운명적으로 만난 철학자 광식은 그의 노래를 플레이어에 걸어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것도 '행복을 위한' 철학으로.

그래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김광석과 철학이 만나는 행복을 위한 철학콘서트'라고 불렀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11명의 서양 사상가가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철학 콘서트'로 호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리에서'와 더불어 '행복의 철학'을 말하고, 플라톤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나와 '이상의 철학'을 논한다. '쾌락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광석의 노래 '나무'를 타고 오며, '이성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광석을 만나고, 흄이 '사랑했지만'을 불러 '의심의 철학'을 설파한다.

또한 칸트가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비판의 철학'을 쓰는가 하면, 헤겔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속에서 '자유의 철학'을 강의하자, 마르크스가 '타는 목마름으로' 이른바 '혁명의 철학'을 열창한다. 초인의 철학자 니체가 광석의 '슬픈 노래'를 부르길 마다하지 않는다.

나치와의 연루라는 아픔이 있는 하이데거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래하며 '죽음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롤스가 '그녀가 처음 울던 날'로 불려나와 '정의의 철학'을 논한다. 끝으로 철학자 김광식이 김광석의 노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을 통해 자신의 '몸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김광석의 노래가 철학을 만나는 일, 즉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초유의 시도다. 책의 출발지는 서울대와 서울대 평생교육원에서 저자가 여러 학기 강의한 내용이다. 광석의 노래를 통한 철학 강의는 폭발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끈 감동의 드라마였다고 한다.

거기에 KBS 2TV 'TV 특강'에서 '행복을 위한 철학 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새해 벽두에 1주일간 강연한 내용이 더해졌다. 책 곳곳에서 광석의 노래 외에도 다양한 영화나 신화 및 음악, 책과 이야기가 불려나와 풍성함을 더한다. 저자가 진짜배기 '문화' 철학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수업에 참가한 대학생들의 고민과 상담도 많이 포함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괴로움과 삶의 단면이 '행복의 철학으로 가는 계단'에 세심하게 잘 포개지고 있다. 청년들에게 책은 광석의 노래를 가지고 친구처럼 내 삶 속으로 들어와 같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특급 '철학사용설명서'가 될 법하다.

혹은, 이 책 하나면 '철학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소리 대신, 광석이 노래하는 삶이 다름 아닌 우리네 삶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주요한 길잡이나 화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삶이 철학의 출발점이고, 또한 바로 그러하기에 철학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유용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를 책 곳곳에서 제대로 풀어내서 보여준다.

'지식과 문화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 내공과 '지적 근육'의 두께와 무게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책은 재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철학이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노래하며 거리를 질주한 청년의 축제였던 '68혁명'의 슬로건을 빌어 독자에게 고한다. 어둡고 불안한 현실에 절망해 무릎 꿇지 말라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고 "불가능을 상상하라"고. 그리하여 행복의 길로 나아가라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행복은 가르칠 수 있는가'라고 묻고, 그럴 수 없기에 저마다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 깨우침을 위한 방법에 이르는 길과 노력이 책 전체에 고르게 퍼져있다. 책은 결국 '행복을 위한 콘서트'이고, 방법은 광석의 노래가 안내하는 철학이다.

노래와 철학, 쉬운 조합은 아니지만 흥미롭고 색다른 조합이다. 우리는 삶을 어루만지는 음악을 들으며 행복할 수 있다. 삶이 힘들어도, 아니 힘들기에 그렇다. 광석의 노래는 슬픔이 묻어나지만 진솔하게 삶을 읊조려 지친 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위로와 행복도 함께 나눈다. 그렇다면 그의 노래가 길을 열어주는 '철학'을 통해서는 왜 아니겠는가.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으로 가는 철학'의 가능성을 유쾌하고 신나게 보여준다. 어두운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행복의 철학으로 걷어내며 활짝 웃자고 한다. 행복의 문으로 이어진다면 철학이 달갑지 않겠는가. 그래서 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행복 철학"의 안내도를 따라가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한 소풍이었다. '행복의 문'도 문이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알라딘과 예스 24 및 교보문교 홈페이지 리뷰에도 올립니다



김광석과 철학하기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

김광식 지음, 김영사(2016)


태그:#김광석과 철학하기, #김광석, #행복의 철학, #김광식, #68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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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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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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