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11시 10분. 내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급하게 달려간 곳은 동네 미용실이었다.
"죄송한데, 지금 머리 자를 수 있을까요?"되돌아갈 마음의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질문을 던졌다. 자정에 문을 닫는다곤 하지만, 영업 끝물에 찾아가 머리를 잘라달라는 건 민폐인 것 같았다. 들어오라는 흔쾌한 대답. 짜증 섞인 기색이 하나 없었다.
나도 알바를 하기 때문에 마감 즈음에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앞 손님의 커트가 끝날 때까지 찬찬히 미용실을 둘러보다가 시선이 텔레비전에 머물렀다. SBS <힐링캠프>를 보며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자리를 옮겨갔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텔레비전의 내용도 이야깃거리 중 하나였다. 수의학과를 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한 여학생이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라는 말을 했다. 동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 찰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고졸이야. 공부는 진짜 안 했어.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까지 안 갔어. 근데 이 일 잘하잖아. 나는 내 일이 정말 좋아." 한층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행복해.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어서 행복해. 아까 그 사람도(빚도 갚고 아기도 생긴 부부 사연자) 빚 있을 때도 행복 했다잖아. 돈 많고 적은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야. 요즘엔 행복지수가 중요하지."'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 기준은 뭘까?' '올바른 기준일까?' 무한경쟁의 궤도 속에서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며 나의 행복기준을 그들에 맞춘다. 정작 돌아봐야 할 나는 내버려둔 채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뒤돌아본다.
그래서, 우위에 있으면 행복할까. 또 다른 비교대상을 찾아 나설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정해둔 가치가 그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아니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겉치레가 아닌 올바른 잣대로 진정한 행복을 찾으면 좋겠다.
자정이 다 되도록 저녁식사도 못 하셨다는 미용실 아저씨는 뒤늦게 온 손님도 웃으며 맞았다. 짧아진 머리로 가게를 나서며 아저씨의 행복 철학을 얻어간다. 고된 하루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