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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겉그림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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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하고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로 지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삶을 좀처럼 알거나 느끼거나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낳거나 돌보지 않으면 아이들을 마주할 길이 없으니 겉으로 스치는 모습만 훑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자가용을 몰아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은 들길 한복판을 고속도로로 몇 시간을 달린다고 하더라도 들이나 논이 무엇이고 시골은 어떠한 삶터인지 알 수 없어요. 들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살지 않고서 자가용으로 휙 지나친다면 들도 시골도 모르지요. 마을에서 아이들이 복닥거리며 오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더라도 아이들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흐름을 함께 누려야 비로소 아이를 알 만하고, 아이를 입히고 재우고 씻기고 먹이고 할 뿐 아니라, 함께 놀고 함께 꿈꾸며 함께 생각하고 삶을 슬기롭게 물려주거나 가르치는 하루일 때라야 비로소 아이를 살짝 알 만하기 때문입니다.

형이 앞에서 끌면 동생은 뒤에서 밀었다

'유로화 이전 라인 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독일 화폐는 마르크였다. 이 화폐의 최고 단위는 1000마르크였는데, 그 지폐의 얼굴을 장식한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그림 형제였다.' (48쪽)

'그림 형제도 마음이 어지럽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산책을 했다. 마음이 무거우면 숲으로 갔다. 숲에는 그런 힘이 있다.' (55쪽)

손관승 님이 쓴 <그림 형제의 길>(바다출판사, 2015)을 읽으면서 '아이'란, 또는 '어린이'란 어떤 숨결인가를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우리가 아는 그림 형제는 야코프 그림하고 빌헬름 그림 두 형제라고 합니다.

'그림(Grimm)'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는 형제는 이들 둘 말고 여럿이 더 있으며, 여러 그림 형제 가운데에는 '두 그림 형제'가 빚은 <그림 동화집>에 그림을 그린 동생도 있다고 해요. 형 야코프는 내내 혼자 살며 아이가 없고, 동생 빌헬름은 짝을 맺으면서 아이를 셋 두었다고 합니다.

두 형제는 아직 '독일이 아닌 독일(하나가 아닌 여러 연방이 저마다 독립된 얼거리로 지내던 나라)'에서 살면서 옛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일을 했고, 도서관 사서로 일했으며, 오래된 책을 손으로 옮겨서 필사본을 빚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이 함께 빚은 <그림 동화집>은 바로 '독일 아닌 독일'이지만, 여러 연방으로 나뉜 나라에서 예부터 어른이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물려주던 이야기를 엮은 꾸러미입니다.

그림 형제 기념관 전경
 그림 형제 기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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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머물렀던 카셀 전경. 두 그림 형제 막냇동생이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 형제가 머물렀던 카셀 전경. 두 그림 형제 막냇동생이 그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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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을 거쳐서 "그림 동화집(메르헨)"으로 옮겼는데, 그림 형제가 그러모은 이야기는 '옛이야기'입니다. 한국말로는 '옛이야기·옛날이야기·옛말'이거나 그냥 '이야기'예요. 어머니 말을 안 들은 개구리 이야기라든지, 나무꾼 이야기라든지, 범하고 할머니 이야기라든지, 달이랑 해 이야기라든지, 예부터 한겨레에도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들려주고 물려준 이야기가 있어요. 그림 형제 두 사람은 바로 이 같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일을 한 셈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옛이야기)를 그러모아서 '독일다운 독일'이 되기를 바랐다고 해요.

'그는 오직 도서관에서만 행복했다. 야코프에게 여행이란 곧 옛 필사본을 복사할 수 있는 도서관에 가는 길을 의미했다.' (82쪽)

'병약한 빌헬름에게 고대 문헌을 파헤치고 민간에 전승되어 오던 옛 노래를 편찬하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형이 앞에서 끌면 동생은 뒤에서 밀었다.' (103쪽)

<그림 동화집> 첫판 모습.
 <그림 동화집> 첫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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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구슬땀으로 빚은 <독일어 사전> 모습.
 그림 형제가 구슬땀으로 빚은 <독일어 사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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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이야기밥을 얻어서 먹습니다. 한쪽에서는 몸으로 밥을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음으로 밥을 먹어요. 몸으로 먹는 밥으로는 몸이 무럭무럭 크면서 튼튼하게 설 테며, 마음으로 먹는 밥으로는 마음이 슬기로우면서 야무지고 똑똑하게 거듭나게 할 테지요.

어버이가 할 몫이란 바로 아이들한테 밥을 주는 일이라 할 만해요. '몸밥'이랑 '마음밥'을 함께 주지요. 어버이 아닌 둘레 어른도 이러한 일을 함께 맡아요. 어버이가 자리를 비운다든지, 어버이가 아이들을 이끌고 나들이를 가면, 둘레 어른은 이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면서 주전부리도 주고 나들이밥도 줍니다. 새로운 마을에서 내려온 새로운 이야기도 들려주고요.

'그림 동화는 이데올로기나 프로파간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먹이가 된 시절도 있었다. 나치 정권은 <빨간 모자>를 사악한 유대인 늑대로부터 보호하는 독일인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나서 연합군은 그림 동화가 나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독일에서의 출판을 금지했다.' (143쪽)

'파리 출장을 통해 야코프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겠다는 최종 결심을 굳히고 본국에 돌아온 후 사직서를 보낸다. 일이 싫은 게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사람들 밑에서 간섭받기 싫었을 뿐이다.' (186쪽)

독일에서 출판 금지 되기도 했던 '그림 동화'

다른 '그림 형제' 가운데 하나인 루브티히 에밀이 그린 삽화.
 다른 '그림 형제' 가운데 하나인 루브티히 에밀이 그린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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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집>에 막내 남동생 루드비히 에밀이 그려서 넣은 삽화.
 <그림 동화집>에 막내 남동생 루드비히 에밀이 그려서 넣은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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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림 형제는 옛이야기를 모았고, 막냇동생은 그림을 그려서 <그림 동화집>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두 그림 형제는 옛이야기를 모았고, 막냇동생은 그림을 그려서 <그림 동화집>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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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라는 곳에서 이야기를 그러모은 그림 형제가 이 다음으로 한 일은 '말'을 찾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이때에도 아직 독일은 여럿으로 나뉜 나라이기에 '독일다운 독일에서 쓸 말'을 살폈다고 해요. 이 일은 거의 형 야코프가 맡아서 했고, 형 야코프 그림이 이룬 '독일말 새롭게 세우기'는 독일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문법과 문학과 어학'을 처음으로 갈고닦은 밑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그러모으면서 삶을 돌아보는 길을 걸은 그림 형제로서는 더없이 마땅한 삶길이요 꿈길이었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모든 이야기는 말로 빚기 때문입니다. 책에 적는 글이 아니라 입으로 읊는 말로 이야기를 나누지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시골마을 작은 보금자리를 이루며 아이들을 낳고 돌본 여느 어버이라면 '책을 읽지' 않고 '책을 모릅'니다. 오직 삶으로 삶을 짓고, 오직 사랑으로 사랑을 가꾸면서 아이들을 돌보아요. 그렇기에 그림 형제는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동안 '독일말'을 새삼스레 헤아렸을 테고, 이러한 마음이 이어지고 깊어지면서 '독일말 새롭게 세우기'로 나아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독일어 문법>은 점차 연구가 확장되어 1837년까지 거의 20년에 걸쳐 총 4권으로 발간된다. 야코프는 이로 인해 언어학자로서 새로운 학문의 경지를 이룩하게 되고, 독일어 문법과 독어독문학의 창시자가 된다.' (210쪽)

늘그막에 이른 그림 형제 모습.
 늘그막에 이른 그림 형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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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림 형제는 또 다른 새로운 길로 갑니다. 이야기(동화) 다음으로 말(독일말)이라면, 이제 사전(독일말 사전)입니다. 이야기를 묶어 책이 되고, 말을 세워서 문법하고 어학이 된다면, 바야흐로 이야기와 말을 알뜰살뜰 가다듬어 사전을 빚는 동안 시나브로 '삶을 노래하는 길'이 마무리될 테니까요.

'그림 형제는 자신들의 필생의 업으로 삼았던 <독일어 사전>을 온전히 마무리짓지 못하고 눈감았다. 그토록 소망했던 독일 통일도 지켜보지 못했다.' (281쪽)

'그림 형제가 구상을 가다듬고 생각을 공표한 후 마지막 항이 출판될 때까지 122년의 세월이 흘렀다. <독일어 사전>은 1971년 연표까지 합해서 모두 33권이었다. 최종 모두 3만 3872쪽에 이르렀다.' (282쪽)

그림 형제 연구실 모습. 두 형제는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책상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림 형제 연구실 모습. 두 형제는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책상을 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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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걸어온 길이라면 '이야기(동화)·말·사전'을 이룩한 아이들 벗님으로 살아온 나날이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예전에 독일에서 쓰던 '가장 높은 돈'에 그림 형제 모습이 멋지게 깃들 만했구나 싶어요. 한 나라나 겨레를 이루는 바탕은 바로 이야기하고 말에 있다고 할 만하고, 독일은 이 대목을 슬기롭게 헤아렸으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낳은 사랑이고,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숨결은 곧 새로운 보금자리하고 마을하고 나라를 세우는 바탕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는 새로운 아이를 낳지요. 새로 어른이 된 사람(아이)들은 새로운 꿈으로 새로운 삶을 지을 만하고, 새로운 삶이 우뚝 서면 이곳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흐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어버이와 어른은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고 아름답게 돌볼 수 있어야 해요.

한국에서도 한겨레가 예부터 곱게 누리고 즐긴 이야기가 차곡차곡 서면서, 한겨레가 예부터 기쁨과 사랑으로 주고받은 말이 튼튼하게 설 뿐 아니라, 한겨레가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아름답게 나눌 말을 담는 사전(한국말 사전)이 알차게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그림 형제의 길>
(손관승 글 / 바다출판사 펴냄 / 2015.11.30. / 1만 65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그림 형제의 길 -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함께 걸어간 동화의 길

손관승 지음, 바다출판사(2015)


태그:#그림 형제의 길, #손관승, #그림 형제, #인문책,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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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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