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집자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2000년도 당시 고등학교가 비평준화로 분류되어 성적순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중학교 때와 달리 성적의 위협을 느꼈다. 뭔가 불안한 마음에 고1 겨울방학 때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다. 평소 다니지 않았던 단과(과목별) 학원도 여러 군데 다니며 평소 나답지 않게 너무나 성실한 생활을 했다.

그렇게 성실한 겨울방학을 보내고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쳤다. 성실히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올 줄 알았는데,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당시 국어를 맡았던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체벌을 가하겠다고 말했다. 난 당시 성적이 이전보다 몇 점 오른 상태였는데도 체벌을 받아야했다. 성실히 겨울방학을 보냈건만,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선생님의 폭력이었다.

잔혹한 영화

성실한 노동 뒤에 참혹한 현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성실한 노동 뒤에 참혹한 현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성실한나라의앨리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수남(이정현 분)은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한국의 여성이다. 학창 시절에는 자격증 공부에 매진해 수십 개의 자격증을 획득했고, 졸업 후 취직을 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성실한 그녀의 삶에 착한 남자가 끼어들었고, 그들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두 사람의 성실한 삶의 태도와 달리 불쑥 찾아왔다.

수남의 남편 규정(이해영 분)은 청각장애인이다. 결혼 전에는 보청기를 끼며 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점점 그의 청력이 나빠진다. 수남은 의사를 찾아가 남편의 청력이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는데, 의사는 2천만 원짜리 인공 와우 수술을 권한다. 규정은 수술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수남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남편의 청력을 고쳐야 한다며 수술을 강행한다.

수술 후 수남과 규정은 수술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단칸방에 두 사람이 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그들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며 미래의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그들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규정이 프레스 기계에 물건을 자르는 작업을 하는 중에 청력이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있지만 일을 강행하다가 손가락이 잘린다. 규정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지만, 회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붙일 수 있게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그냥 수남의 주머니에 손가락을 넣어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만 한다.

결국 규정은 손가락을 붙일 수 없게 되었고 회사에서 잘린다. 산업재해로 인정돼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지도 못한다. 규정이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자, 수남은 쓰리잡(세가지 직업)을 뛰며 몸을 혹사시킨다. 오직 성실하게 노동을 하면 지금의 불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이후 영화의 전개는 잔혹하다. 수남은 악착같이 일하지만, 사회의 모순 앞에 더 궁지에 몰린다. 궁지에 몰리게 된 수남은 결국 돌일 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잔혹한 현실

롯데백화점 알바노동자는 유령인가 기자회견

▲ 롯데백화점 알바노동자는 유령인가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영화 속 수남과 같이 현실에서 국민들은 매우 열심히 살아간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의무를 다하는 1등 국민이다. 하지만 역시 영화 속 수남처럼, 우리네 삶은 처절하다.

얼마 전 부산 롯데백화점에서 일을 하다 휴식 도중 사망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었다. 10년 동안 백화점에서 일을 했지만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백화점 기획전이 매주 열릴 때마다 행사장을 전전하며 일을 했던 알바노동자였는데, 백화점은 입점 업체의 관할에 개입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힘들다. 사망한 백화점 알바 노동자 또한 영화의 수남처럼 남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10년 동안 일한 노동자였다. 열심히 일해봤자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지 못했고, 사망 후 국가는 그를 구제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2015년 한국 사회는 '헬조선'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다. 즉, 성실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사회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의 행복을 위해서 국가에 성실히 봉사하고 노동하며 법과 의무를 지켜가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싸늘한 사회적 폭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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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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