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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문화재단이 개최하는 백일장이 올해로 30회째를 맞았다.1986년부터 인천에서 매년 열고 있는 이 백일장은 지금까지 13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 백일장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제 중년이 됐다. <사진 : 새얼문화재단>
 새얼문화재단이 개최하는 백일장이 올해로 30회째를 맞았다.1986년부터 인천에서 매년 열고 있는 이 백일장은 지금까지 13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 백일장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제 중년이 됐다. <사진 : 새얼문화재단>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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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 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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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대표하는 민간 문화재단으로 성장한 새얼문화재단(아래 새얼)이 최근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새얼은 유신 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1975년 탄생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고, 한 세대의 주기를 30년으로 본다. 공자는 인생 40년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는 불혹(不惑)이라 했고, 소설가 조셉 콘래드는 "인생 40년이면 황망한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 앞에 멀리 나타나는 지평선 같이 앞날이 보이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40년을 새얼은 어떻게 보냈을까?

새얼은 1975년 10월 23일 근로자 자녀를 위한 장학회로 출범했다. 그때는 자동차보험제도가 미비한 상황이었기에 운수노동자가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가장이라면, 그 자녀들은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우공이산 40년, 장학생만 5천여 명

1975년부터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새얼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모두 5792명, 지급한 장학금은 25억1700여 만 원에 이른다.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새얼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새얼은 1983년 8월 22일 '장학재단'에서 '문화재단'으로 조직을 확대·개편했다. 이때부터 새얼은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인천에서 다양한 문화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새얼의 정신을 말할 때, 첫 번째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두 번째는 '해불양수(海不讓水)'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愚公移山)'는 고사 성어는 새얼의 사업 방식을 의미한다. 새얼은 한 번 시작한 사업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해마다 가을에 개최하는 '가곡과 아리아의 밤'은 올해로 32회째다. 1년에 한 번 전국의 역사유적을 찾아가는 '역사기행'과 '새얼 전국 학생·어머니백일장'은 올해 30주년 행사를 치렀다. 그동안 백일장엔 학생 11만5000여 명과 어머니 1만3000여 명이 참가했다.

조찬 포럼의 효시로 평가받는 '새얼아침대화'는 매달 둘째 주 수요일 오전 7시에 열리는데, 내년 5월이면 360회(30주년)을 맞는다. 정치·경제·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와 논객들을 강사로 불러 격조 높은 강연을 펼치는 토론의 장이다.

계절의 전령사로 지식 담론의 최전선을 감당하고 있는 계간 '황해문화'는 지령 89호를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이어오고 있다.

새얼이 걸어온 40년의 역사는 인천의 역사가 됐다. 권력의 부침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 없이 산을 옮기는 마음으로 쌓아온 지난 세월이 오늘의 새얼을 만들었다.

현재 새얼을 후원하는 회원은 1만1971명에 이른다. 이들이 매달 5000원 이상의 회비를 납부해 운영되고 있다. 적립한 기금은 55억 9100여만 원에 달한다.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새얼은 조촐한 기념식도 하지 않았다. 지역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얼문화재단, #새얼백일장, #새얼아침대화, #우공이산, #해불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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