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남의 일도 내 일처럼 그려내는 감독, 노덕이 돌아왔다. 그는 전작인 <연애의 온도>(2012)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뜨뜻미지근 공감 로맨스로 우리를 웃기고 울렸다. 이번에는 어리숙한 평기자 하나를 눈앞에 데려다 놓고 우리를 구워 삶는다.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의 주인공 허무혁(조정석 분)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별거 중인 아내의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말단 방송기자 주제로 비리를 고발하려다 광고주를 건드리고 만다. 장기 휴직을 권고받은 그는 새 일자리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모두 허사다. 이러다 딱 죽겠다 싶은 그때, 무혁에게 한 줄기 빛이 드리운다. 흘려듣고 무시했던 살인사건의 용의자 제보 전화. 이제 그것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다.

반신반의하며 찾은 제보자는 살인자의 집으로 무혁을 안내하고, 무혁은 그곳에서 살인자를 연상하게 하는 것들과 맞닥뜨린다. 공포와 흥분은 무혁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그의 아주 사소한 의심은 어떠한 검증도 없이 확신으로 변모한다. 무혁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단독 보도로 회사의 '아이돌'이 되고, 복직과 승진, 부인과의 재결합이라는 부상을 얻게 된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내는 감독의 '위트'

 주인공 허무혁이 회사의 '아이돌'이 되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주인공 허무혁이 회사의 '아이돌'이 되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얼마 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아주 사소한 오해로부터 탄생한 오보(誤報)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무혁은 고뇌한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의 특종을 부추기기 바쁘다. 오보(誤報)를 바로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큰 수렁에 빠지게 되는 무혁, 그는 결국 진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불상사를 맞게 된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진실을 만들어 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언론, 눈에 보이는 자극만을 쉽게 믿어버리는 대중,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인 무혁. 이 묘한 삼각관계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는 이처럼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언론과 대중, 이 두 존재가 만들어내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괴물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냥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짓이 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특종 생성 과정'은 빠른 템포로 펼쳐지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곳곳에 감독의 위트가 포진하고 있어 경쾌하다. 어리숙한 무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한 편의 촌극을 연상시키지만, 마냥 웃어 넘길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어서 짠하기도 하다. 먹고 살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아 그저 '웃프다'. 이미 괴물에 기생하기 시작한 언론과 대중은 멈추지 않는다.

톱 스타 없이도 고루 빛나는 배역

소위 말하는 '톱 배우'의 등장은 없지만,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는 그렇기에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특출난 것도, 모난 것도 없는 고만고만한 인물들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불어넣고,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의 녹진한 연기는 캐릭터와 극에 활력을 선사한다. 주인공 허무혁 역을 맡은 배우 조정석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주역들이 등장하니,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배역의 크기와 관계없이 곳곳에 좋은 배우들을 고루 캐스팅한 감독의 안목이 돋보인다.

언론과 대중의 손에서 사실은 왜곡되고, 거짓과 진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믿는 것이 곧 진실'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를 향해 감독은 구구절절 날선 비판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아주 강한 '한 방'을 날린다.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한 순간, 철저하게 다른 노선을 택한 영화는 일견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사실'이 왜곡되는 과정은 이토록 허무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괴물이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의 포스터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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