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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시인이 마구간에서 다정이와 반갑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 시인이 마구간에서 다정이와 반갑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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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채찍'보다 말로 설득하다

홍 시인에게 다정이를 분양해 준 전 주인은 단단히 일렀다. 그러면서 '당근과 채찍'으로 당나귀 길들이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나귀에게 두 번 지면 평생 끌려 다니거나 인연이 끊어지게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바짝 잘 길들이십시오."

홍 시인은 집으로 데려온 지 4개월이 지난 뒤부터 다정이를 본격 훈련시켰다. 홍 시인이 다정이를 강가로 데려가 고삐를 풀어주자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로, 천방지축 언저리를 뱅뱅 돌면서 날뛰었다. 홍 시인은 그때마다 전 주인이 가르쳐준 채찍의 유혹을 느꼈지만, 그는 계속 다정이에게 다가가 말로 타이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나는 네 등을 타고 유람하는 그런 호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너는 밥값은 해야 한다. 그리고 바보 숲 농원의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해야 네가 편케 살 수 있다." 

그의 읍소가 주효했음인지 다정이는 곧 홍 시인의 말에 수긍하며 잘 따랐다. 이제는 다정이를 데리고 강둑으로 가면 제 놈은 풀을 뜯고, 홍 시인은 그 곁에서 책을 보는 등,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진 뒤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한 번은 다정이를 앞세우고 강으로 가는데 그놈이 갑자기 꼼짝하지를 않더란다. 그럴 때 대부분 마부들은 어서 가라고 채찍질을 하기 마련인데, 홍 시인은 잠시 기다리자 5미터 앞 풀숲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더라고 했다. 다정이는 사람보다 더 오감이 발달하여 풀숲의 그 장끼를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로 멈춘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까닭을 전혀 알지 못한, 아니 무시 한 채, 짐승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모양이라는 얘기도 했다.

홍일선 시인이 책가방을 메고 다정이와 강둑으로 산책을 가고 있다.
 홍일선 시인이 책가방을 메고 다정이와 강둑으로 산책을 가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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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에게 배우다

나는 홍 시인의 나귀 교육 이야기를 좀 더 젊은 나이에 들었더라면 학생들에게나 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슬기롭고, 더욱 너그럽게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중심이요, 다른 동물을 배려하거나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려치 않고, 자기 독단에 따른 행동하는 일이 잦다.

그래서 심한 경우는 사제간 부자간 감정의 골이 매우 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근원적으로 교사나 부모로서 자질부족이다. 사실 교사나 특히 백성의 지도자는 아무나 해선 안 된다. 아랫사람에 대한 관용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포용력, 그런 기본을 갖춰야 할 것이다. 

홍 시인은 다정이와 강둑으로 갈 때는 한 손에는 책, 그리고 이따금 다른 한 손에는 막걸리 병도 들고 가는데 그때마다 강둑에서 다정이와 반주를 한다고 한다. 그 놈도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홍 시인은 강둑에서 다정이에게 만해나 백석의 시도 들려주는 데, 그때마다 제 놈이 알아듣는 듯 두 귀를 쫑긋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내가 둘러본 바보 숲 농원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선율도 흘러나왔다.

여강 강변에서 정용국(왼쪽), 홍일선(오른쪽) 두 시인이 다정이의 몸을 긁어주고, 날벌레들을 쫓아주고 있다.
 여강 강변에서 정용국(왼쪽), 홍일선(오른쪽) 두 시인이 다정이의 몸을 긁어주고, 날벌레들을 쫓아주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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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

나는 마무리로 홍 시인에게 꿈을 물었다.

"제가 김영현 아우에게 다정이를 거저 얻었습니다. 한 신문사 한 달 고료로 다정의 몸값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장차 우리 다정이가 예쁜 새끼를 낳으면 저도 마음씨 좋은 농부에게 처음 두 마리는 나눠주려고 합니다. 이즈음 저는 다정이를 통해서 제 삶의 기쁨과 보람 얻고 있습니다. 주는 만큼 받는 게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따릅니다. 제 여생을 가능한 다정이 같이 살아가면서 애환을 같이 나눌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정이에게 마차를 한 대 마련하여 거기다가 바보 숲 농원에서 생산한 달걀, 된장, 이웃에서 생산한 땅콩, 오이, 가지, 쌀, 서리태 등 잡곡들을 가득 싣고 수원으로, 서울로 갈 겁니다. 그리하여 도시민들에게 정직하게 생산된 우리 농산물을 맛보여드리고, 때로는 홀로 사시는 어려운 분에게는 거저 나눠드리기도 하고요.

그리하여 다정이가 이끄는 마차가 잃어버린 우리들의 농심(農心)을 되찾게 하는 하나의 불씨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는 도시도 농촌도 모두 다함께 잘 살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아울러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초고속 어지러운 세태에 시속 4킬로미터의 느림의 미학을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보여드리며, 저 자신 그런 유유자적을 즐기려 합니다. 다만 다정이가 온통 시멘트요 아스팔트인 문명화된 길에 잘 적응할지 그것이 가장 염려됩니다."

모든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이를 알고 있다. 다정이가 나에게 다가와 내 몸 냄새를 맡으며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모든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이를 알고 있다. 다정이가 나에게 다가와 내 몸 냄새를 맡으며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 김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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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차 한 대 값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마차는 천차만별로 고급 승용차 한 대 값보다 더 비싼 호화마차도 있지만, 당신은 매우 실용적인 것으로 350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단다.

나는 어서 다정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아울러 홍 시인은 마차를 마련하여 여주의 품질 좋은 곡식과 채소, 바보 숲 농원의 자연산 달걀이 도시민에게 마차로 배달되는 그의 소박한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뜨거운 뙤약볕 아래 여주장을 떠났다.

여주장에 팔려나온 강아지들
 여주장에 팔려나온 강아지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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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 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 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뜨릴 젠 딴은 대단한 나귀새끼군!"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태그:#당나귀, #홍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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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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